약국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하)

약국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느냐는 물음은 곧 약국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느냐는 물음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책임과 원인이 어디에 있든 바뀌어야 하는 주체는 약국이니까요. 바뀌기 위해서는 현실과 지향점, 그리고 방법이 필요합니다. 오늘은 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현실

약국이 못하고 있는건 딱 두가지입니다. 조제료 값을 못하고 일반약 판매시 편의점보다 나은게 없습니다. 억울한 마음이 들 수도 있겠지만, 아예 틀린 말이 아닙니다.

감기약 조제하고 줄 때 할 말이 별로 없습니다. 진통제 집어가는 환자에게 할 말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식후 먹으라고 하고 보냅니다.

침묵보다 더 나쁜 상담도 있지요. 장기복용약 끊고 영양제 먹으라고 합니다. 세상 어느 치료지침을 찾아보아도 근거가 없습니다. 앞에서는 별 말 안하지요. 집에 가서 가족들한테 “오늘 약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라고 하면, 그 집 자식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서 신나게 약사 욕을 합니다. 같은 약사도 변호하기를 포기하고 같이 욕합니다.

내가 환자 입장이라면, 고작 이런걸 위해서 날도 더운데 처방전 들고 약국까지 걸어갈 의미가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집 앞에 편의점 있는데 거기서 일반의약품 사고싶을겁니다.

이건 어디에 쓰는 약, 이건 어떤 효과가 있는 약, 이건 속쓰릴 수도 있으니 식후에 먹을 약. 이거 약사 말고도 할 사람 많습니다. 어디에 쓰고 어떤 효과라는 말은 원래는 의사가 할 말입니다.

거칠게 말하면, 무엇을 위한 불편인지, 무엇을 위해 조제료를 주는지 모를 일들을 환자들은 오늘도 겪고 있습니다. 사회가 약사에게 비용을 지불하지만 비용만큼의 가치를 돌려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약국이 잘하고 있는, 제 기능을 다 하고 있는 반례들도 많지만, 그게 기본이 되어야 하는데 안되고 있는 현실을 바꿔야하는거지요.

지향점

1. 약국은 환자, 제약회사, 의료인, 정부 모두가 불편해하는 단계입니다. 불편하지만, 안전을 위해 거쳐가는 단계이지요. 직능이 축소되거나 훼손되지 않도록 조제료 값을 해야하고, 의약품 취급에 대한 준 독점권을 보장받는 값을 해야합니다.

2. 교육이 필요합니다. 대학교육은 제조와 조제의 기술에 집중되어있어 태생적으로 현재의 약사는 돈 값을 못할 수 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약의 공급과 취급에 필요한 기술을 새로 익혀야 합니다. 그리고 환자에게 서비스를 실제로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3. 병원방문의 전 단계 혹은 자가치료의 조언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속칭 ‘문턱이 낮은 의료’를 행함으로써 의료재정에 이바지함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처방전 없이 들어와서 할게 있어야 합니다. 지금의 ‘매약’ 은 지향점으로서 부적절하고 제대로 된 ‘상담’ 을 해야합니다.

구체적 방법

여러 층위의 방법들 중 가장 긴급하고, 중요하고, 실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방법입니다.

1. 처방전을 들고 온 환자에게 먼저 질문과 확인을 하십시오. 적어도 의사의 진단은 어떠했는지, 현재 복용중인 약물은 무엇인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이 두가지는 환자정보의 핵심입니다. 반드시 확인해야 할 정보를 취득하는 의미가 있고, 조제행위가 무엇인지를 환자에게 어필할 수도 있습니다. 개방형 질문이 효과적이지만, 여의찮으면 예/아니오 로 대답할 수 있도록 질문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물리적 조제를 시작하기 이전에 커뮤니케이션을 선행하여 약국 조제가 병원 방문의 연장선이라는 인식을 갖게 하십시오. 의약분업이 왜 필요한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줄 수 있는 행위입니다.

2.환자가 일반의약품을 선택할 때, 최우선적으로 확인해야 할 한가지 질문을 만드십시오. 예를 들면, 갱년기장애 의약품(훼라민큐)을 찾는 환자에게는 현재 복용중인 항우울 약물이 있는지. 겔포스 집어온 환자에게는 현재 장용정 약물을 복용중인지. 등등. 찾아보면 많습니다. 약국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고 임하십시오. 내 약국에 있는 모든 일반의약품의 포인트 주의사항을 만든다 생각하십시오.
왜 일반의약품을 약국에서만 판매해야 하는지를 행동으로 알려줘야 합니다. 대중은 약사가 무식하다고 비난하지 않습니다. 유식한데 도움이 되는 일을 안한다고 비난하지요.

3. 환자의 질문에 답변할 때는 즉답하지 마시고, 문헌을 검색하여 답변하십시오. “일반적으로는 이러하나, 환자분 상황에 맞는 최신정보를 확인해드리겠습니다” 정도로 양해를 구하고 검색하여 답변하는 것이 환자와 약사 모두에게 이롭습니다. 약사는 책임의 한계를 명확하게 할 수 있고, 환자는 양질의 정보를 제공받게 됩니다.

4. 올바른 질문과 답변을 위해 공부하십시오. 정보는 고구마줄기와 같습니다. 올바른 방향으로 문헌을 검색하면, 이후로는 딸려옵니다. 필요한 것은 모든 것을 설명하는 이론체계나 그럴듯한 가설이 아닙니다. 각각의 케이스에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정확하고 신뢰도가 높은 정보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는 잘 정제되고 증명된 하나의 정보입니다. 그런 정보를 다루는 직군이 되어야 합니다. 정직해야 합니다.

한국 약사의 생존에 있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행동들입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전문가로서의 자질이 있다는 것만으로 전문가 대우를 받을 수 없습니다. 약사가 왜 약의 전문가인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길 바랍니다.

필자 병여찌개 님은...

지방에서 약국을 경영하는 젊은 약사로 이 시대 약국을 하는 모든 약사들처럼 한층 더 고급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미래의 약사역할과 약사라는 직능이 높은 가치로 인정받을 것이라는 꿈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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