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와 복약지도 그리고 의약품 제공

약사는 약국에서 소비자에게 재화(의약품)와 서비스(정보 및 복약지도)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돈을 받습니다. 이런 일련의 행위는 약사라는 직업이 '제약회사↔환자' 혹은 '의사↔환자' 관계에 "개입" 하는 형태로 이뤄지지요. 약사라는 직업을 정의하는 몇 가지 관점 중 오늘은 "개입을 허가 받은 주체" 라는 면에 대해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약사의 개입은 어떤 효용을 요구받는가

개입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불편이 발생하는 행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입을 허가하는 것은 그 개입이 환자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는 기대와 개입으로 발생할 효용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지요. 동시에 면허로서 제한하는 것은 그 개입이 일정 이상의 수준을 담보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습니다.

사회가 기대하는, 혹은 약사 스스로가 주장하고 담보하는 개입의 효용은 항시 고정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중세-근대에는 약물을 환자에게 제공하는 자와 약물을 제조하는 자를 분리함으로써 발생하는 효용(약물 자체의 질을 보장)이 주가 되었고, 제약회사와 약사가 분리된 이후에는 약사개입의 효용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다 의료행위 중 약물치료에 대한 지식과 전문성을 활용하여 부족한 의사의 접근성을 보충하는 목적으로 약사에게 단독으로 약물치료를 할 권한을 주었습니다. 이 것이 의약분업 이전의 상황입니다.

의약분업상황은 약사의 개입의 효용을 새롭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의사의 약물치료행위에 대한 견제와 감시, 그리고 보강이라는 효용을 사회는 기대하는 것이지요. 바꿔 말하면 "약의 안전하고 유효한 사용의 보장" 혹은 "약 잘 먹게 하고, 부작용은 덜 겪게 하라" 정도 되겠지요.

부적절한 약사 개입의 실태

약사는 적절한 개입으로 인한 효용창출을 요구 받는 위치에 있습니다. 동시에 개입권한과 사회적 자원(조제료), 그리고 일반의약품에 대한 독점권을 부여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들 아시다시피, 요구에 제대로 응하고 있지 않으면서 권리 위에 잠자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먼저 전제할 것은, 처방을 받은 환자와 약사와의 관계는 독립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환자 입장에서는 "그렇게 정해져 있어서" 처방전을 약국에 들고 오는 것이지, 본인이 따로 원해서 약국에 조제를 의뢰하고, 복약지도를 듣는 것이 아니거든요. 결과적으로 만족하고 말고를 떠나서 약국은 그런 곳입니다. 환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하여 의사↔약사↔환자 커뮤니케이션을 완성하는 공간. 실제 빈번하게 일어나는 몇 가지 잘못된 패턴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1) 무개입 : 환자↔의사간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존중은 방향 자체가 그르다 할 수는 없지만, 약사는 적절하게 개입을 하라고 돈을 받고, 면허를 인정받는 직종입니다. 처방전을 받고 약을 포장해서 계산만 하는 것은 직무유기에 해당합니다. 처방전만 쳐다본다고 해서 적절한 정보가 수집되었다고 하긴 어렵습니다. 인풋이 부족하면 아웃풋도 질이 떨어집니다.

2) 관계파괴 : 나의 의도를 관철하기 위해 환자가 의사에게 전달받은 내용을 부정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형태의 개입이 인정받으려면 의사-환자 관계에서 환자에게 위해가 갈 것이라는 확실한 근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오히려 드뭅니다. 대게 오프라벨 사용 미숙지, 의사의 단순실수에 대한 과한 대처, 심할 경우에는 약사의 기본지식 미달인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3) 잘못된 목적 : 복약지도나 상담의 목적은 환자의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사회적인 부분을 고려하여 적합한 정보나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헌데, 주로 '상담' 이라는 행위의 목적이 언젠가부터 약사의 수익증대가 목적으로 고정이 되어버렸습니다.

상담에 대한 대가(수가)를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차선으로 환자가 지갑을 열게끔 하는 것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만, 그렇다 하여도 본말이 전도된 것입니다. 마케팅 측면에서 보아도 물건을 팔 목적의 상담은 환자와 약국간의 장기간의 관계형성을 불가능하게 합니다. 집단의 신뢰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줍니다. 잘못된 지식체계로 인하여 잘못된 목적을 갖기도 하지만, 지식과 별개로 목적이 잘못 설정되기도 합니다.

동종직업 종사자 욕먹는 것 신경 끄고 뜨내기 손님 상대로 장사를 할 작정이라면, 전략적으로 옳긴 합니다.

약사의 개입은 어떻게 나아질 수 있는가

제도는 약사의 적절한 개입을 보장하고 요구하지만, 의사와 환자집단은 약사가 적절하게 개입할거라는 기대 자체를 하지 않습니다. 의사는 약사개입이 질적으로 어떠하든 입장상 불편할 수 밖에 없다고 쳐도 환자가 약사개입에 대해 기대하지 않는 현실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현실을 감안하여 약사가 가장 먼저 실천할 일은 환자에게 개입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처방전만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처방전을 접수하면서 환자의 정보와 의사↔환자간에 일어난 일을 아는 것이 목적입니다. 적절하게 개입해주는 약국에서는 기다리는 시간도 덜 불편합니다. 기대가 생겼으니까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이 경우에 매출 올리기도 더 수월합니다.

아주 구체적이고 간단한 실천을 제시하겠습니다. 물리적 조제행위 이전에 개입에 대한 선언을 겸하며 환자정보를 수집함에 있어 필수적인 질문들입니다.

"오늘 이런 약이 나왔네요. 이전에 이걸 드시고 불편한 점은 없었나요?"

"현재 복용중인 약을 말씀해주세요. 병원에서 알아야 하는 정보가 있다면 공유하겠습니다."

"처방 받으신 약은 여러 용도로 쓰이고 있습니다. 병원엔 어디가 불편해서 방문하셨나요?"

환자가 진단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가, 처방 받은 약물에 대한 순응도는 어떠한가, 처방된 약물이 환자에게 어떤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가 등을 알기 위한 병력, 약력, 알러지/부작용력을 확보하는 것이고, 먼저 물어 봐줌으로써 환자가 병원에 제공하지 않은/병원에서 제공받지 못한 부분들을 묻게 할 수 있습니다.

바꿀 수 있는 것부터 바꾸는 것이 옳고,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약사가 가장 먼저 바꿀 수 있는 것은 개입에 대한 명확한 목표설정이 될 것입니다. 항상 더 나은 수준의 개입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약사 스스로가 지식과 스킬을 쌓아야 하겠지만. 할 수 있는 환자 한명에게부터라도 실천을 할 수 있다면 훌륭한 시작일 것입니다.

용기와 책임감은 이미 다들 갖고 계시겠지만, 더 명확한 목표와 책임을 갖고 발휘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키워드

#병어찌개
저작권자 © 히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