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 [상]

사면초가. 현재 약국의 상황을 표현하는 적당한 고사성어입니다.

현재 약국은 정책결정과정에서 소외되고, 분업의 파트너인 의사에겐 파트너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제약회사, 소비자로부터도 합당한 의약품 독점취급권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미 시작되었고, 앞으로는 더 많은 양보와 포기를 강요받게 되겠지요.
 
이 모든 상황이 근본적으로 어디서 기인하였는가는 'malfunction(=오작동)' 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인 환자, 파트너인 의사, 면허부여자인 보건복지부를 포함한 정부 및 사회가 기대하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단 약국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타 직군과 비교해보아도 문제가 질적·양적으로 심각한 상황입니다.

양적으로는 약국이 차지하는 과다한 비중. 질적으로는 실무에 필요한 지식 등이 이뤄지지 않거나, 왜곡된 방향으로 이뤄지기에 심각합니다. 주로 처방을 받는 질환군에 대한 기본적인 치료지침조차 숙지하지 못하니 약물의 기본정보(기전, 용량 등)를 제외한 지식에 공백이 생기고, 그 공백을 생화학, 생리학에 기반하였지만 실제 약물사용에는 도움이 안되는 엉뚱한 내용으로 채우죠. 그걸로 눈앞의 환자는 만족시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방향도 아니거니와, 이는 비전문가 판매채널과의 차별성을 스스로 없에버리는 행위입니다.

의사·치과의사와 파트너십

약사법에서는 일반의약품을 "비교적 안전하고 처방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의약품", 전문의약품을 일반의약품을 제외한 의약품으로 정의합니다. "의약품" 이란 기본적으로 사용상 부작용, 오용 및 남용의 우려가 있어 사용상 의사, 치과의사의 전문지식이 필요한 것이고 그 예외로 일반의약품을 별도로 정의하고 있지요.

직군간의 여러 이익/대립 관계를 배제하고 보면, 약국은 의사·치과의사와 의약품을 매개로 직무상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에 분업 뿐 아니라 협업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지만, 직무수행을 위해 약물 자체에 대한 교육과 더불어 의사·치과의사의 처방이 어떤 근거와 목적으로 이뤄지는지에 대한 교육이 불충분하거나 없죠. 의사들이 종종 말하는 "차라리 복약지도를 안하는게 낫다"는 말이 약국으로서 자존심이 상하지만, 그리 틀린 말이 아닙니다. 현대의학적 치료지침에 따른 처방을 복약지도함에 있어서 치료목적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완치를 운운하며 대체·보완의학적 방식을 권하는 행태가 아직도 공공연하고, 오히려 그게 대단한 비법인양 노하우로서 전수되고 있으니까요.

앞서 기고한 글에서 건강기능식품에 대해 신뢰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일단 면허증 값어치부터 충실히 할 수 있는 지식체계를 쌓은 후에 적합하게 평가하며 받아들이자는거죠.

사회적 기대치의 변화

약물복용엔 약물이상반응이라는 리스크가 따릅니다. 동시에 약물치료를 하지 않았을 경우에도 증상악화, 합병증, 불가역적 기관·조직손상 때로는 사망에 이르는 리스크가 존재하지요. 약물치료의 기대효용이라 바꿔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약물치료는 이런 리스크-베네핏(risk–benefit)을 고려하여 이뤄지고, 약국은 해당 약물처방이 안전하고 유효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보관, 복용, 약물이상반응 대처방법 등의 정보제공을 합니다.
 
약물복용 리스크 관리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소비자계층의 전체적인 교육수준에 따라 바뀌는데, 지난 안전상비약 약국외 판매 논의과정은 더 이상 약사가 제공하는 정보를 소비자를 포함한 사회가 가치있게 받아들여주지 않는다는게 표면화된 시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소비자는 이제 약국과의 정보불균형이 사라졌다고 느낀다는거죠. 이는 순전히 약국이 제 기능을 못해서라기보다 인터넷 정보환경의 변화라는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만, 이 상황을 감당하고 다시 전문가로서의 경쟁력을 찾아야 하는 책무는 약국에게 지워졌습니다.
 
이제는 이전 방식의 메리트가 사라졌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가장 가치있고 환자의 상황에 적합한 정보를 전문가로서 책임을 갖고 제공해야 하는 필터로서 역할이 요구되고 있으므로 이를 위해서는 환자의 상황을 고려하여 최선의 선택지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환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 약국'이라서 가능한 충족의 경험은 '안전하고 유효한 약물사용정보제공'이니까요.
 
환자가 기존에 복용중인 약물, 해당질환의 치료목표, 약물치료가 갖는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복용방법 및 대처방법 등의 정보를 보다 적극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소비자가 원하고 약국에게도 필요한 복약지도입니다. 특히 현재 복용중인 모든 약물의 정보를 취합하여 추가적인 약물치료시 상호작용까지 고려한 약물복용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건 현재로서는 약국이 유일합니다. 다행히 무기가 남아있습니다. 손에 쥔 무기는 살기 위해선 휘둘러야죠.

제도, 그리고 자본이 약국을 보는 시선

의약분업 이후, 약국의 권한과 책임은 축소되었습니다. 안전상비약 약국 외 판매로 인해 영원할 것 같았던 의약품 독점권 또한 훼손되었지요. 한마디로 약국이 이 사회에 왜 필요한지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보접근성의 향상으로 안전한(그렇다고 여겨지는) 의약품의 범위는 확대되고 있고, 의사숫자가 늘어남에 따라 전문의약품을 처방할 사회적 역량은 흘러넘치고 있지요. 양방향으로 압력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약국이 갖춰야 할 방어논리로 성립 가능한 것은 “약국은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국민 안전에 기여한다” 정도가 될 것입니다. 효용을 내세워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올바른 논리입니다. 입증하기 어렵지만요.

다음에는 제도·자본·소비자 그리고 분업·협업 파트너십을 어떻게 만족시켜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할 수 있는가, 그 방법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작권자 © 히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