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쉼표] 전국약사음악연주모임 '팜하모닉' 정기연주회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좋은 경험이죠. 재미도 있어요. 공연이 끝나면, '아 하나 또 해냈구나' 이런 느낌이 들어요."

"공연은 '약국 속의 일상과 다른 느낌'이에요. 재밌어요. 그만큼 가치가 있어요."

프랑스 작곡가 쥘 마스네의 오페라 '타이스의 명상곡'을 합주한 이태웅(바이올린)·오진영(피아노) 약사의 말이다.

이들은 약국에서는 환자에게 약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약사'이지만, 공연장에서는 솜씨좋은 '연주자'로 변신한다. 전국 약사 음악 연주모임인 '팜하모닉'에는 이들 말고도 15명의 약사가 이번 연주에 참여했다.

약사들의 음악모임 '팜하모닉'은 지난 27일 서울 강남구 리코디아 아트홀에서 제5회 정기연주회를 열었다. 이날 연주를 선보인 팜하모닉 회원약사들이 공연이 끝난 후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약사들의 음악모임 '팜하모닉'은 지난 27일 서울 강남구 리코디아 아트홀에서 제5회 정기연주회를 열었다. 이날 연주를 선보인 팜하모닉 회원약사들이 공연이 끝난 후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팜하모닉(공동대표 이상록·김경열)'은 지난 27일 서울 강남구 리코디아 아트홀에서 제5회 정기연주회를 열었다. 17명의 약사는 이번 공연을 위해 길게는 10여개월간 악기와 씨름했다. 

지난해 팜하모닉 공연을 관람하고 가입을 결심한 한 약사는 이날 첫 피아노 무대공연에 도전했다. 콩쿨에 출전해 수상한 적이 있는 한 약사는 수준급 연주를 선보이기도 했다.

팜하모닉 이상록 대표·약사

팜하모닉을 이끄는 이상록 약사는 "보람을 느낄 회원 약사들과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에게 감사드린다"고 했다. 공연 시작 전, 이 약사와 만나 팜하모닉을 만들 게 된 뒷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 약사는 약국을 운영하며 어떤 취미를 가질지 고민하다가, 어릴 적 잠깐 피아노학원을 다녔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에 디지털피아노를 약국에 놓고 취미삼아 연습한게 팜하모닉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됐다.

자신의 연주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약사 커뮤니티에 올린 이 약사는 '음악연주모임'을 찾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취미를 함께 할 공간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김경열 약사와 손 잡고 만든게 '팜하모닉'이었다.  

이 약사는 그간 네 번의 공연에 참여했지만, 이번 공연은 연주자로 참여하지 못했다. 결혼준비에 바빠 연습할 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팜하모닉 회원들은 공연에 대한 욕심과 열정만으로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다고 했다. 지방에 거주하던 한 회원 약사는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인프라를 위해 서울로 이사를 오기도 했다. 

독주는 혼자 연습이 가능하지만 합주팀의 경우 각자 약국 일을 마치고, 시간을 정해 함께 연습하거나 주말을 할애했다. 부산에서 365약국을 운영하는 오진영 약사는 합주팀 멤버들이 서울·경기에 있어서 매번 연습을 위해 일일 근무 약사를 구해야 했다.

제5회 정기연주회 1부의 마지막 공연은 배지민 약사(왼쪽, 피아노)와 임선경 약사(오른쪽, 플룻)가 프랑스아 보네의 '카르멘 환상곡'을 연주했다.

이 약사는 "모두 열정을 갖고 공연에 선다. 할수록 욕심이 더 생기기 때문인데, 한번 서고 나면 아쉬운 부분도 보인다. 우리는 프로가 아니어서 항상 부족하다. 실수할 때도 있다. 하지만 모두 개인 시간을 쪼개 연습에 매진하고 그 자체를 즐긴다"고 했다. 특히 관객들의 박수갈채는 큰 보상이 된다.

공연이 끝나면 회원 약사들은 다음 연주회를 위해 다시 곡을 선정하고 합주팀을 짠다. 모두가 스스로 원해서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다.

제5회 정기연주회 2부의 마지막 공연은 배지민 약사(왼쪽, 피아노)와 박주영 약사(가운데, 바이올린), 그리고 장제환 약사(오른쪽, 첼로)가 '배장박'이라는 그룹 이름을 지었다. 이들은 피아졸라가 작곡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 중 '여름'을 연주했다.
제5회 정기연주회 2부의 마지막 공연은 배지민 약사(왼쪽, 피아노)와 박주영 약사(가운데, 바이올린), 그리고 장제환 약사(오른쪽, 첼로)가 '배장박'이라는 그룹 이름을 지었다. 이들은 피아졸라가 작곡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 중 '여름'을 연주했다.

이 약사는 "대개는 약국에서 틈틈이 연습한다. '한 마디, 한 마디' 끊어서 연습을 이어가는 편이다. 피아노는 공간적인 제약이 있지만 플루트, 첼로, 바이올린 등은 그렇지 않은 편"이라고 했다. 

이 약사는 지난해 연주회를 위해 '쇼팽 발라드 3번'을 연습했는데, 이런 식으로 10개월 걸려 한 곡을 떼기도 했다.

이날 공연을 찾은 관객들은 대부분 회원 약사들의 지인이거나 동료들이다.

이 약사는 "악기를 다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공연을 보고 팜하모닉에 노크하는 경우도 있다. 음악은 그렇게 시작하는 것 같다"고 했다.

정용희 약사는 기타를 연주하며,
버스커버스커의 '외로움증폭장치'와
적재의 '별보러가자'를 불렀다. 

그는 "팜하모닉은 약사들에게 음악과 연주라는 취미를 갖도록 돕는다. 뛰어난 실력의 약사들만 와서 공연하는 것이 아니다. 초심자도 얼마든지 함께 할 수 있다"고 했다.

이번 공연에도 세 팀의 약사가 첫 무대에 섰다. 이 약사는 "초보도, 잘 하는 사람도 다같이 어울려서 무대를 만들자는 취지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이 약사는 팜하모닉의 회원들에 대해 "모두 끼가 많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아무래도 열정있고, 흥이 많은 편"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또 "팜하모닉이 꼭 연주를 해야만 하는 모임은 아니다. 음악감상과 연주회에 참여하는 것을 선호하는 약사들은 모두 환영한다. 장르도 클래식이 아니어도 상관없다"며 "이번 공연 땐 런치패드나 기타를 친 약사도 있었다. 모든 장르의 음악을 존중한다"고 했다.

오진영 약사(왼쪽, 피아노)와 이태웅 약사(오른쪽, 바이올린)는 마스네의 오페라 '타이스'에 등장하는 '명장곡'을 연주했다.

팜하모닉의 회원으로 이번 공연에 참여한 이태웅 약사는 바이올린으로 두 곡을, 오진영 약사는 피아노와 비올라로 세 곡을 연주했다. 두 약사는 마스네의 오페라 '타이스'의 '명상곡'을 함께 연주하기도 했다.

오진영 약사는 약국을 운영하며 취미로 피아노를 배우고 있었는데, 이상록 약사가 커뮤니티에 올린 연주 영상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됐고 모임이 생기자 가입하게 됐다.

그는 "하면 할수록 흥미를 느낀다. 옛날부터 현악기도 배우고 싶었는데, 비올라를 시작하게 됐고 레슨을 받으며 꾸준히 연습해왔다"고 했다.

이태웅 약사도 "바이올린을 처음 시작한 건 어렸을 때였는데, 이후 하지 못했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어렸을 때 한 것이 아까워 레슨받고 혼자 연습을 하다가 이 모임을 알게 돼 들어왔다. 작년에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오 약사님이 피아노를 하다가 비올라를 시작하게 돼 '현악 4중주'가 결성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다"며 "한번 해보자는 제안과 함께 초심자도 섞여 있고, 다 같이 할 수 있는 곡 중에서 누구나 들을 수 있는 곡을 선택하게 됐다"고 했다. 

이들을 비롯해 장제환 약사(첼로)와 지가연 약사(바이올린)가 가세해 모자르트의 세레나데로 유명한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를 연주했다.

이태웅 약사는 "타이스 명상곡은 바이올린 독주와 피아노가 함께 합주하는 게 다른 부분이 있었다"며 "오 약사에게 요청해 '같이 하자'고 했다"고 했다.

이들 약사는 모두 자신들이 '무대'에 서는 데 재미를 느끼고, 좋은 경험이 되고 있다고 한 목소리로 냈다. 다양한 약사들과 교류하고 음악에 대한 소통을 이어가는 것 또한 삶의 활력소라고 했다. '팜하모닉'은 이렇게 약사들의 삶의 쉼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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