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 OECD 국가 중국 안전성기관 평가자료, 어쩔건가
미국 FDA 1상 제출 자료 국내 그대로 인정은 불가?
FDA에 제출한 IND 영문자료, 언제까지 번역해야 하나

HIT 포커스  |  시대 반영한 규제 패러다임 대전환 절실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을 통한 신약 연구 개발(R&D)이 활발해진 가운데 글로벌로 향한 국내 기업들의 발걸음에 좀더 '속도'를 붙여주려면 '허가 당국의 규제 오픈 이노베이션'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제약바이오산업계 관계자들은 "신약 개발에서 속도는 비교 우위 경쟁의 필수 요소"라며 "미국 식품의약국(FDA) 등 신뢰할 만한 기관이 승인한 리소스를 그대로 인용해 활용하는 대담한 규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15년 한미약품 대규모 기술수출을 기점으로 불 붙은 'K-신약 연구'를 활성화시켜 성과로 연결하기위해 필요한 '규제 오픈 이노베이션 사례'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중국 비임상시험(GLP)기관 자료, 언제까지 꽝처리 할 것인가

규제 패러다임을 과감하게 전환하려면 '중국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한국 규제 당국의 중국 신뢰에 관한 근원적 의구심은 허들이다.

# '중국 비임상시험기관(GLP)의 안전성 자료'를 확보, FDA와 사전 미팅을 거친 후 신약 후보물질의 1상 임상시험승인신청서(IND)를 제출, 승인받은 국내 한 기업이 이를 근거로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임상 1상 IND를 제출했다고 가정해 보자.

# 혹은 중국에 진출해 있는 국내 기업이 중국 GLP 기관에서 신약 후보 물질의 안전성 시험 자료를 기반으로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에 1상 임상시험승인신청서(IND)를 제출했다고 쳐보자.

이런 가정 아래 기업들은 식약처로부터 임상 IND 승인을 받을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현재 상태라면 승인은 고사하고 서류 접수조차 불가능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국내 기준상 '자격이 없는 중국 비임상시험기관'의 결과를 썼기 때문이다.

한국 규제 당국은 중국을 인정하지 않는다. 식약처는 경제 협력개발기구(OECD)의 비임상시험관리기준(GLP)을 준수하는 OECD 회원국이나, 이를 준수하는 것으로 OECD로부터 인정받은 비회원국의 비임상시험실시기관이 '비임상시험 관리기준(식약처 고시)'에 의해 지정된 시험분야와 동일한 내용의 시험만 인정하고 있다. 중국은 OECD 회원국이 아니다.

'낮은 품질, 싼 가격'이라는 오래된 편견에서 비롯된 중국 디스카운트 현상이 식약처 규정에도 반영돼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 FDA는 중국 비임상시험기관의 자료에 대해 어떤 입장일까.

제약바이오업계 관계자들은 "통계가 나와있는 것은 아니지만 FDA에 임상자료를 제출하는 미국 바이오벤처들의 삼분의 일 이상 중국 CRO(Contract Research Organization)것을 쓰고 있다"며 "언제까지 우리 규정에 맞지 않아 배척해야 하는 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중국과 일류화된 기업을 별개로 바라볼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중국 비임상시험기관의 자료를 미국은 수용하고, 한국은 거절하는 이유는 있다. 한국 식약처의 규제 원칙은 포지티브인데, FDA 규제 원칙은 네가티브다. 다시 말해 식약처는 자격있는 비임상시험기관을 지정한 후 이곳 자료를 수용하는데 비해, 미국은 스폰서(바이오벤처, 제약회사 등) 책임 아래 자료를 받아들인 후 모니터링으로 검증하는 체제다.   

"FDA 지렛대 삼아 글로벌 신약 전쟁서 승리하는 정책을" 

제약바이오산업계는 "규제가 포지티브냐, 네가티브냐보다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신약개발 전쟁에서 효율적으로 경쟁할 수 있도록 규정 중심이 아니라 원칙 중심의 유연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약개발 과정에서 생성하는 리소스를 규제 당국이 중시하는 안전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에서 배분할 수 있는 정책을 산업계는 고대하고 있다.

산업계의 기대는 중국 시장과 글로벌 시장을 효율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규제 오픈 이노베이션'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쉽게 말해 미국서 임상하는 것이라면 전 임상자료가 중국서 만들어졌든, 다른 곳서 만들어졌든 한국 식약처가 인정하자는 것이다. 실제 국내 기업들이 모든 부문의 리소스를 직접 생성하게되면 그 만큼 역량도 낮아질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신약개발에 나서는 국내 기업들의 FDA IND가 늘어나게 되고 부가적으로 얻는 효과도 늘어날 것으로 산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FDA IND 시도가 증가하게 되면 ▷신약개발 자료의 퀄리티가 올라가고 ▷한국 기업의 미국 진출이 많아지게 되며 ▷한국 임상도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FDA와 한국 식약처에 맞게 리소스를 생성시켜 각각 시도하게 되면 시간도 더 걸리고, 비용도 늘어나 속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에 IND를 내 승인이 떨어진 영문 자료를 한국 식약처가 통채로 받아주고, 임상에서 의사들과 해야할 것만 국문으로 만들수 있도록 한다면 기업의 부담을 훨씬 줄일 수 있다는 이야기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FDA서 승인이 난 임상 IND를 한국 신약처에 제출해 임상을 진행하려면 5000만원에서 1억원을 따로 들여 번역해야 한다. 그로 인해 3~4개월 시간도 늦춰지게 된다. 기업들에게는 엄청난 부담이다.

신약개발 식약처 규제, 중국 등 세계 변화보며 새 패러다임 짤 때

중국은 의약품 품질 정책과 약가 정책에서 경천동지할 정도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으며, 제약바이오기업들의 약진도 눈부시다. 환경이 이렇게 바뀌고 있다면 한국 규제 정책의 시각도 변화를 포용하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마땅하다.     
 
우리 마음 속에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중국 디스카운트'가 존재하지만, 최근 의약품 안전을 대하는 중국의 태도는 과거와 현격하게 다르다. 

제약바이오산업계 한 관계자는 "작년 중국에서 엉터리 백신 문제가 터지자마자 당국은 관련자들을 엄벌하고, 7일 만에 외국 백신을 허가해 줬다. 가격을 크게 깎기는 했지만 키투르다 등 외국산 20여개 항암제에 대해 약가도 줬다"며 중국의 변화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벽을 높이며 자국 제약바이오기업들이 성장하도록 시간을 주며 기다렸던 중국 정부는 이제 문을 활짝 열기 시작했다. 자국 기업들의 혁신에 대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외국 기업들과 경쟁하며 성장하도록 정책 방향을 바꿨다고 제약바이오산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자국 기업들에게 자극을 줘 산업을 키우겠다는 심산인데, 이것이 국내 기업들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 현재로선 판단하기 힘든 상황이다.

한 바이오벤처 대표는 "JP모건헬스컨퍼런스에 가보면 중국 기업들은 본 행사에 앞서 하루짜리 차이나 쇼 케이스를 열어 중국관련 투자 현황, 기업 소개, 기업별 매치 메이킹을 시도하고 있다"며 중국 제약산업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제약사들의 미국 벤처 투자규모도 어마 어마하다고 덧붙였다. 

중국이 이렇게 변모하고 있다면, 한국 규제정책도 중국의 변화에 맞춰 재조정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이 임상시험을 하며 시장을 파악하고, 네트워크를 쌓으려면 한국 규제정책의 유연한 변화가 필수적이라는 이야기다.

중국에서 더 많은 임상을 진행할 수 있도록 ▷중국 비임상기관에 대한 인스펙션을 통한 인정이나 ▷중국 비임상기관의 자료를 기반으로 FDA에 제출해 승인이 난 임상 자료의 선별 인정같은 융통성 있는 정책들이 뒷 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식약처가 산업 발전을 위해 어느 기관보다 귀를 열어 응답한 것은 사실"이라고 밝힌 제약바이오산업계 한 관계자는 "이제 식약처 규제도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하나의 규정보다 원칙을 중심으로 정책 변화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당국과 제약바이오 산업계가 안전은 최우선 기조로 삼으면서 기업들이 더 효과적으로 신약개발 연구를 진행해 글로벌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진지한 협의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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