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의약품 규제 당국, 독창적 사고(Out of the Box Thinking)

지난 2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이낙연 국무총리가 '2019년 규제 정비 종합계획 정비'를 위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지난 2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이낙연 국무총리가 '2019년 규제 정비 종합계획 정비'를 위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영미! 영미! 제약바이오산업계가 "영미"를 애타게 찾고 있다. 1987년 물질특허제도가 도입된 이래, 호미 한 자루들고 황무지에 달려 들었던 개척자들처럼 제약바이오 기업들 역시 맨 땅에서 은근과 끈기, 반신반의를 견디며 신약 개발에 매진해 왔다. 그 결과, 혁신 신약에 근접할 만한 후보물질들을 찾아내는데 성공해 다국적 기업들에게 기술 수출하는 일상적 단계에 진입했다. 2015년 한미약품의 잇따른 기술 수출이 그동안 눌려 있던 플레이어들의 자신감을 불러 일으켰고, 이어 벤처 붐이 조성되며 비상장기업조차 어렵지 않게 1000억원의 자본을 조달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다. 이제 연구자들과 기업이 뛰고 싶어하는 운동장은 글로벌이다.   
   
작년 평창 동계 올림픽 컬링 종목에서 '안경 선배'가 "영미"를 부르며 원했던 것은 '빗자루 질(스위핑, sweeping) '이었다. 이 빗자루 질로 상대방이 가로 막은 스톤을 제거하거나, 타깃이 있는 하우스로 스톤을 유도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제약바이오산업이 간절히 찾고 있는 "영미"는 무엇인가. '산업계의 영미는 정부이고, 규제 당국이며, 정부의 빗자루질에 대한 소망'이다. 신약개발이 부진했거나, 국내 시장만 노린 신약이 개발되는 환경에서 기존 규제나 규제 기관의 크기 등은 아쉬울 게 없었다. 그러나 신약 개발이 비등 직전까지 이르며 새 체제를 바라는 아우성은 적지 않다.       

신약개발이란 금메달을 따기 위해 지구에 사는 수 많은 연구자와 바이오벤처, 전통의 제약기업들이 펼치는 경쟁은 열흘 뒤를 예측할 수 없을 만큼 치열하다. 따라서 '한국 규제 당국의 빗자루 질'은 '예전부터 그래 왔었잖아' 하는 식으로 버티고 있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방향에서 이뤄져야 한다. 아예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규제나 새로운 체제 마련도 예외가 아니다. 바이오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자본시장의 체질 개선 등 규제 타파의 범위는 넓고 다양하다. 하지만, 신약 개발의 속도를 높이기 위한 인허가로 한정해 어떤 규제가 있는지 살펴보자.

히트뉴스 28일자 'K신약연구 "지금 필요한 건 규제 오픈이노베이션'이란 기사에서도 지적했듯이 중국 비임상시험기관의 안전성에 관한 전임상 결과를 한국 식약처가 인정하지 않는 점은 서둘러 개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FDA, 잠재력이 큰 중국 시장과 글로벌 시장의 연계를 고려할 때 기업이 생성한 자료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규제가 '갈라파고스군도의 규제'가 되면 기업들은 이중삼중 비용부담을 떠안게 된다. 당연히 속도를 내기 어렵다. FDA에 제출한 자료 중 일부를 한국 식약처가 그대로 인정하는 등의 규제 오픈 이노베이션이 필요하다는 산업계의 주장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규제 혁파와 다소 결이 다른 듯하지만 소기하는 목표에서는 같은 게 식약처 인력 확충이다. 얼마 전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류영진 식약처장에게 건의했던 신약허가 심사료 인상을 통한 인력 확충 요청은 신약개발 속도 증진과 관련돼 산업계가 절박하게 생각하는 문제다. 적은 인력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식약처의 1인당 신약 허가심사 건수는 FDA의 10배에 달한다고 한다. 그런데 신약 심사료는 600여만원으로 2억5000만원의 일본이나 25억원의 미국에 비해 크게 낮다. 만약 일본 수준으로 상향 조정하고 연간 신약허가 건수를 50건으로 계상하면, 심사료는 125억원에 이르고 심사 인력을 50명 이상 늘릴 수 있게 된다.   

누구나 말하고 있는 것처럼 제약바이오산업은 철저하게 규제산업이다. 정부 정책의 크기나 목표, 유연성에 따라 산업은 나무가 자라나 숲이되기도 하고, 분재가 되기도 한다. 때마침 정부도 2019년 규제정비 종합계획을 조기에 확정했고 복지부와 식약처도 11개 과제를 도출했다. 규제를 개혁한다면서도 몇몇 규정 손질로 생색을 내던 과거와 달리 이번 규제 개혁은 K신약연구개발을 주도하는 연구자, 기업 등 주역들이 그들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불판을 바꾼다'는 큰 시각으로 진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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