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도 주체도 책임도 쏟아지지만, 정부는 '원론'
협의체 중단 속 의약 갈등 요소까지…재논의 요원해지나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이후 약사사회가 공적 처방 전달시스템에 이어 '공적 전자처방전' 체계의 필요성을 꺼내들었다. 일선 약국은 여러 사설 처방전 코드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국민에게는 개인건강기록의 결정권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지만 정부 측은 원론적인 주장을 펴고 있다. 지난해 이를 논의하던 협의체가 멈춰 있는 데다 의료계 등과의 갈등 요소가 아직 남아있는 것까지 감안한다면 논의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13일 국회의원회관에서는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의원(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이 주최하고 서울특별시약사회가 주관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 이름은 '국민 안심 처방전달체계 도입 방안 토론회'였지만, 나온 내용의 핵심은 공적 전자처방전 문제에 쏠려 있었다.

실제 서울시약 권영희 회장은 "전자처방전은 수차례 논의됐지만 지지부진하다. 처방전을 내는 민간 서비스는 의료기관 담합, 전송서비스 수수료의 약국 부담 가능성이 있다"며 "지난해 보건의료발전협의체 내 분과를 구성해 논의했지만 중단된 상태"라며 전자처방전 문제를 끌어올렸다.

이 날 나온 내용 역시 전자처방전을 어떻게 도입할 것이냐를 주제로 하는 발표가 이어졌다. 발제를 맡은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 교수와 동국대학교 약학대학 김대진 교수의 이야기를 모아보면 해외 사례를 들며 정부 주도의 표준 개발 및 참여 시업 인증을 마련하는 등의 중앙 집중형 전자처방 전달 체계가 필요하다는 제언으로 요약된다.

두 발표를 톺아보면 해외의 경우 △관련 법률 제개정을 토대로한 운영 의무 및 책임 명확화 △정부 주도 △법률에 근거한 표준 및 인증체계 운영 △중앙서버 관히를 통한 환자주권 및 정보활용성 확대 △정부 혹은 위탁 형태의 전자처방전 저장 교환소 △요양기관 인센티브 지원 △환자 건강기록 등과의 연계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실질적으로 전자처방전이 도입되지 않은 데다가 비표준화된 바코드로 요양기관의 부담이 늘어나고 있다. 현재 운영 중인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역시 처방전 전송 방법을 마련하지 않았으며 암호화되지 않아 자격확인과 보안이 취약한 상태다. 이 밖에 비급여 의약품 관리의 시각지대, 환자선택권 제한, 처방전의 일방적인 전송으로 인한 환자의 불편도 해소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①전자서명 확인 등을 담은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의 처방전 전송 관련 사항 수정 ②민간기업의 표준 개발 등 표준화를 통한 단계적 고려 ③의료법, 약사법, 국민건강보험법, 개인정보보호법 등의 관련법률 제개정 ④정부 위주의 국가 자원 혹은 위탁된 민간으로의 중앙형 전자처방전 ⑤ 요양비용 보조금 고려 ⑥환자 희망시 PHR 내 처방전 정보 공유 ⑦전담기관 등 조직 정비 등을 담은 공적인 형태의 전자처방전이 필요하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이 날 이어진 패널토의에서도 전자처방전을 중앙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변도로 이어졌다. 신천연합병원 홍승권 이사장(대한가정의학회 국내협력이사)은 전자처방전 사업에서 중앙집중형 체계를 강조하며 정부에서 지정한 기관이 관리를 통해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동시에 표준화를 통해서 어느 기관에서도 조제가 가능한 수준으로 비대면 진료와 대면 진료까지의 과정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한약사회 조은구 정보통신이사는 이에 더해 일반적인 약국의 민간 처방전 플랫폼으로 인한 피해를 강조하기도 했다.

강원특별자치도약사회 엄일훈 정보통신이사도 지난 2021년 5월부터 2024년 12월 말까지 운영중인 빅데이터 진료지원 플랫폼 구축사업에 참여하면서 종이처방전 등 현실적으로 '페이퍼 프리'가 불가능함을 인지하고 법령 등의 개정을 언급했다. 해당 사업은 2023년 7월 기준 강원도 전역의 65개 의료기관이 참여할 예정이지만 정작 처방전 전달 수가 다소 부족한 이유는 이같은 문제의 선결이 필요함을 보여준다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약사사회의 움직임에 하다는 사실상 원론적인 입장만을 밝혔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이유리 서기관은 어떤 형태라 해도 처방전의 전달 안정성은 필요하다 밝히면서도 "다만 안전한 전달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각 방식마다 관련된 기관이 많다. 의료기관만의, 약국만의, 환자만의 문제가 아니고 이들이 추구하는 방식도 다양하기에 안전한 전자처방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했던 것"이라고 운을 뗐다.

이 사무관은 "중단된 논의체에서 사회적 논의를 진행해서 향후 방안의 결론을 내야 한다"며 원론적인 입장을 전했다. 다만 공적 영역에서의 운영 관리 가능성이 있냐는 질문에는 "의료정보의 경우 관리 책임이 정부에게 있다는 것은 맞지만 그(정부의) 역할이 어느 정도인지는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빅데이터전략본부 원미애 건강정보사업부장도 현재 시범사업 과정에서 나왔던 문제를 개선하며 시범사업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명확한 답변을 주기 어려운 이유는 어찌 보면 다소 간단하기도 하다. 지난해까지 공적 전자처방전을 논의하던 협의체가 멈춰 있어 해당 논의가 당분간은 진척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ㅐ 4월 '안전한 전자처방협의체'를 구성하고 전자처방전 운영 현황 및 구축 필요성 등을 논의했다.

약국 입장에서는 처방전 내 붙어있는 바코드가 사설인 탓에 청구 프로그램마다 지원 코드가 달랐고 이로 인한 비용 부담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만약 특정 의료기관이 근처 약국 중 특정 약국만 사용하는 바코드를 준다면 환자담합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하지만 의료계는 반대하고 있다. 현재 DUR로도 해결되지 않는 비급여 문제와 약사사회가 주장하는 성분명 처방에서의 주도권 경쟁 가능성까지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실제 4월 첫 회의 당시에서도 대한의사협회 측은 불참을 결정했다. 여기에 약사회 측의 화상투약기(약 자판기) 도입 반대 등이 겹치면서 2022년 6월 이후에는 더 이상의 논의가 진척되지 않는 상황이다.

당장 협의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의 일어난 움직임인 만큼 정부 역시 함부로 이야기를 전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더욱이 대한의사협회의 경우 최근 임시 총회 결과 현 집행부의 직무 정지 문제까지 터지면서 협의체 참가도 다소 요원하기도 하다.

약사회의 끊임없는 노크에도 아직은 원론을 견지하는 정부가 향후 언제 즈음 이같은 논의를 진행할 지 지켜바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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