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회 '재정적 지원 등 정부 개입 필요'
의료계선 반대 사안…해묵은 감정 끄집어내나

대한약사회가 '공적 전자처방전' 도입을 고심하고 있다.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을 전면 반대하던 입장에서 최근 약국으로 가는 처방전을 플랫폼 데이터 탑재라는 대책으로 선회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공적 전자처방전 도입으로까지 이어가려는 모양새다. 다만 의료계에서 이번 사안을 그동안 반대해 왔다는 점, 정부가 어떠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대한약사회는 지난 5일 오후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과 관련해 약사회가 운영하는 '공적 처방 전달시스템'의 내용과 함께 향후 계획을 밝혔다. 공적 처방 전달시스템은 그동안 비대면 진료 중개 플랫폼이 제공해 오던 약국 관련 정보를 약사회가 가진 데이터로 전환하는 형태의 체계를 말한다.

기존 비대면 진료는 플랫폼을 기점으로 플랫폼업체가 모은 참여 의료기관과 참여 약국을 연결하는 형태였다. 이를 참여 약국에서 약사회가 제공한 데이터를 이용하는 형태로 전환할 경우 시범사업에 약사회가 조금 더 주도권을 쥘 수 있게 되는 만큼 약사회는 내부적으로 참여 약국을 모집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약사회 측은 해당 시스템이 약사회가 가입한 클라우드 서버를 이용하고 있음을 언급하며 사실상 '공적 전자처방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브리핑을 맡은 약사회 조은구 정보통신이사는 "궁극적으로는 공적 전자처방전이 목표다"며 "지금의 전달 시스템에 보관하지 않고 처방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약사회가 협상력을 가지기 위해 준비하는 것은 시범사업에서의 가입 약국의 수다. 현재 시스템에 가입한 약국은 1만100여개다. 시장 1위인 닥터나우가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전 약 2000개 약국과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매우 빠른 속도인 셈이다.

현재 나온 시범사업 운영 방안에는 팩스나 이메일 등을 활용한 전자처방전 전달과 이를 통한 조제를 허용한다는 방안이 담겨 있다. 현행 약사법상으로는 이같은 내용이 위법이지만 법이 바뀌지 않고 시작되는 사업인 만큼 일종의 예외를 인정해 준 것이다. 원칙적으로는 위법의 소지가 남아있는 이상 이를 약사회의 중요 추진 사업 중 하나였던 '통일된 전자처방전' 그리고 그 의료정보를 국가 차원의 사업으로까지 이어가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스템을 관리하고 있는 약학정보원 안상호 부원장은 "이름에 '공적'이라는 말이 들어가다 보니 운영 방향은 공공성을 띨 수밖에 없다고 본다"며 "향후 (서버 운영 등과 관련한) 법제화를 통해 재정 혹은 제도적 지원까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더욱이 현재 5개 단체와 이미 처방 전달시스템 운영을 진행하는 동시에 다른 업체와도 추가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사업이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전자처방전의 필요성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약사회 및 일부 보건의료단체 등이 주장해 왔던 비급여 의약품 및 오남용 등의 부작용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약국용 관리 프로그램의 연동은 현재까지는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의료계에서 최근 EMR과의 연동 기능을 넣은 프로그램도 등장하고 있는 상황과는 대조된다. 조은구 이사는 "현재 처방전은 그림 등의 형태로 발송돼 이를 입력하는 형태"라며 "전자처방전 제도 등의 도입에 따라 기능을 탑재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공적 전자처방전, 처방전만 주는 것 아닐지도
내밀한 처방조제 갈등 봐야하는 이유 주목

약사사회가 공적 전자처방전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해당 정책의 여부에 따라 약국 비용 부담을 개선하는 동시에 향후 약사들이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 더 나아가 처방 주도권까지도 수면 위로 올려낼 수 있을 것이라고 약업계는 보고 있다. 물론 현재도 처방전을 전자로 인식할 수 있는 체계는 갖추고 있다. 이른바 QR코드를 스캐너에 읽어 처방 내역을 저장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다만 민간 업체가 주축을 이루다 보니 약국 입장에서는 각 회사에 가입하면서 이용료와 수수료 등을 지급해 왔다. 여기에 만약 특정 의료기관이 주변에 있는 A약국이 아닌 다른 약국과 담합해 A약국이 보유하지 않은 전자처방전 업체의 바코드를 사용하도록 하면 결국 환자 담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도 나왔었다.

그러나 표준화된, 공적인 방식을 사용하면 이러한 담합 문제를 개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약국이 일정 기간 보관해야 하는 처방전 원본의 보관 비용과 부담이 줄어들어 자연스럽게 문제가 개선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이에 대해 우려를 보내고 있다. 결국 전자처방전이 시장에서 성분명 처방과 대체 조제라는 민감한 이슈를 키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전자처방전의 경우 중앙화된 서버로 처방전을 보내 환자가 이를 내려받은 뒤 약을 지으면 성분명 처방 및 대체 조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약사회의 숙원 사업 중 하나인 만성질환자가 동일한 약을 처방받을 수 있는 이른바 '처방전 리필제' 가능성을 높일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이미 정보가 저장돼 있는 이상 의료계에서는 처방전 리필제 강행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의료기관이 공개를 원하지 않는 비급여 의약품 등의 처방 정보 등이 정부에 공개되는 것은 더욱 의료계를 자극할 수밖에 없는 하나의 '버튼'이기도 하다. 실제 정부가 지난해 협의체를 만들 당시 의료계가 불참을 선언했던 이유는 이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당시에 등장했던 이름이 바로 지금 약사회가 진행하는 '공적 처방 전달시스템'이다.

약업계는 약사회가 의약 분업 이후 대체 조제의 어려움과 불만을 이번 기회를 통해 전환의 기회로 삼으려는 하나의 추진동력으로 보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는 결국에는 약사회의 움직임이 의료계의 벽을 넘어야 한다는 말로 이어진다.

특히 일각에서 나오는 DUR 미연동 문제 등은 약사회 입장에서는 난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보건복지부가 아직 해당 시스템에 어떠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 역시 약사회에서는 향후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안에 깔린 기저의 문제가 시스템 도입과 함께 다시 한번 수면 위로 올라오는 상태에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약사사회와 이를 방어해야 하는 의료계의 보이지 않는 갈등도 함께 올라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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