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중증·희귀질환자 중심 건강보험 개편 방안 심포지엄' 개최
"건보재정 지출, 중증·희귀질환 등 신약 접근성 강화 및 확대해야"

건강보험 정책 방향성을 결정하는 제2차 건강보험 종합계획 발표를 9월로 앞둔 가운데, 새로운 정책 수립에는 새롭게 탄생하고 있는 혁신적인 신약에 대한 가치 평가 도구가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5일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가 개최한 '중증·희귀질환자 중심 건강보험 개편 방안 심포지엄'에서는 중증·희귀질환자 관점에서의 현행 건강보험 재정 점검과 신약 접근성 보장을 위한 건보 재정 개혁 방안 등이 논의됐다.

 

중증 환자 당면 과제는 '급여화 지연, 낮은 접근성'

한국신장암환우회 백진영 대표

한국신장암환우회 백진영 대표는 현재 건강보험 제도상 중증 환자의 당면 과제를 △약제 허가 후 급여화 지연 △치료 약제의 낮은 접근성 △(환자)재정에 따른 접근성 차이 △중증 환자 지원제도 부재 등으로 꼽았다. 백 대표는 "2017년께 면역항암제 등장으로 단독 및 병용요법이 사용되면서 기존 4기 환자라도 장기 생존이 가능하다는 것이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등에서 데이터로 발표되고 있다"며 "기적이라고 불릴 일들이 현실에서도 일어나고 있지만 급여화 속도가 느린 탓에 치료 접근성이 낮은 것은 개선이 이뤄져야 할 부분"이라고 밝혔다.

백 대표는 또 최근 치료제는 NGS(차세대 염기서열 분석) 등 바이오마커 등을 통해 환자에게 맞는 약제를 찾는 것이 중요한 만큼 과거에 만들어진 특정 약제와 특정 질병으로 매칭되기보다 환자 상태에 맞춰지는 특성들이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의약품은 근거주의 사고로 심사하고 사용돼야 하나 현재 약가 제도에 이것들이 반영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라며 "근거 중심의 의약품 효과가 극대화 될 수 있는 실질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개발보다 급여에 영향 받는 신약 접근성…새 평가도구 필요

가천대 길병원 종양내과 안희경 교수

가천대 길병원 종양내과 안희경 교수는 HER2+ 유방암 4기 진단을 받은 2명의 여성 환자 사례를 들며 의약품 개발보다 급여 기준과 환자 재정으로 결정되는 의약품 접근성 문제를 소개했다.

두 환자는 모두 50대 여성으로 2018년 HER2+ 전이성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A 환자는 진단 이후 2020년까지 3차에 걸친 항암 치료로 급여기준상 사용 가능한 표적치료제를 모두 소진한 후 2022년 2월 엔허투 치료를 고려했다. 그렇지만 당시 엔허투는 우리나라 품목 허가(2022년 9월) 전인 제품으로 실비보험 적용을 받지 못한 채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한 사용만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주문부터 환자 사용까지 1~2개월이 걸리고 3주에 1000만~2000만원 고가 치료비가 예상되면서 A 환자는 결국 치료를 포기했다.

또 다른 환자 B는 8차 항암 치료를 받았고, 2022년 9월 엔허투 허가로 올해부터 9차 항암 치료를 시작했다. 약 7개월의 차이로 의약품 접근 형태와 비용 부담 규모에 차이가 생기면서 같은 약에 대한 사용이 갈렸던 것이다.

안희경 교수는 "미국에서 허가받은 약품이 우리나라 허가를 받기까지 통상적으로 1~3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평범한 사람과 전이성 암 환자에게 1~3년은 그 가치가 다르다"며 "품목 허가에 시간이 걸리거나 무진행 생존기간은 개선했지만 전체 생존기간을 늘리지 못했다는 이유로 급여가 제한돼 접근성을 막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추후 개편될 건보 종합계획에는 이 같은 의약품 접근성을 확대할 수 있는 새로운 도구들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 고가 항암제 급여가 잘 이뤄지지 않는것은 아니지만 환자 본인 부담은 극심하고 이를 완화할 본인 부담금 상한제, 재난적 의료비 지원 제도 등은 적용 가능 소득층이 제한돼 있어 환자 지불 후 소급 등 사실상 실비보험이 유일한 대책"이라며 "경제성 평가 기준 완화, 건강보험 지출 비중 개선 등을 통해 신약 접근성을 확대할 새 도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개선 약속'한 심평원과 '귀담아 듣겠다'는 복지부

(사진 왼쪽부터) 보건복지부 보험정책과 손호준 과장,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관리실 유미영 실장, 데일리팜 어윤호 기자, 매경헬스 서정윤 기자,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 김미경 고문, 한국희귀난치성질환 연합회 정진향 고문, 한국신장암환우회 백진영 대표, 미래건강네트워크 강진형 이사
(사진 왼쪽부터) 보건복지부 보험정책과 손호준 과장,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관리실 유미영 실장, 데일리팜 어윤호 기자, 매경헬스 서정윤 기자,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 김미경 고문, 한국희귀난치성질환 연합회 정진향 고문, 한국신장암환우회 백진영 대표, 미래건강네트워크 강진형 이사

이어진 패널 토의에서는 전문가, 환자단체의 현 제도에 대한 문제점과 개선점 등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으며 이에 대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보건복지부의 의견 등이 교류됐다.

미래건강네트워크 강진형 이사

"현 건강보험, 지속가능하지 않아"
미래건강네트워크 강진형 이사는 보장성 강화를 멈추고 중증 질환과 필수 의료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건강보험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래건강네트워크가 올해 국민 5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건강보험개선방안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3%는 건강보험 재정 지출에 신약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답했으며, 87%는 중증 질환 치료 신약이 더 빨리 건강보험 적용을 받아야 한다고 답했다.

이 같은 내용을 토대로 강진형 이사는 이제는 보장성 확대보다 신약에 대한 접근성 강화에 주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 이사는 "중증 질환과 필수 의료 보장으로 건강보험 구조를 선회해야 하고, 이를 위해 중증 질환과 필수 의료를 정의하는 사회적 합의가 시급하다"며 "또 실질적인 금전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사회안전망 기금 조성과 시범사업 형태의 신약 접근성 사업을 통해 실질적으로 나타나는 단점들을 보완해 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 김미경 고문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 김미경 고문

"ICER 상향 등 실질적 대책 필요"
한국글로벌의약산업회 김미경 고문은 정부와 업계의 노력에도 한국의 신약 접근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최근 허가·급여 병행 평가 등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약 신속 등재제도 등을 다각화해 치료 접근성을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미경 고문은 "우리나라는 신약 등재와 관련한 제도적 장벽이 높고, 등재 후에는 사후 관리로 지속적으로 약가가 낮아지는 구조로 업계 입장에서는 한국에서의 신약 도입은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치료가 안됐던 중증 희귀질환 치료제가 개발되고 있으며, 환자 고통을 줄일 방법도 나오고 있지만 원활한 도입이 쉽지 않은 만큼, 이 같은 제품들을 위한 제도 구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영국의 경우 희귀질환 치료제 비용효과 판단기준 중 국내총생산(GDP)을 다른 질환의 2~3배로 설정하는 등 각기 다른 평가기준을 적용해 질환 특성을 고려하는 만큼 우리나라 역시 경제성 평가 주요 기준인 비용-효과비(ICER) 값을 상향하는 등 적극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심평원 약제관리실 유미영 실장
심평원 약제관리실 유미영 실장

"중증·희귀질환 치료제 접근성 지속 강화할 것"
이 같은 관계자들 의견에 심평원은 2007년 약제비 적정화 방안 일환으로 도입한 '선별급여'와 이후 '경제성 평가 면제 제도', '위험분담제(RSA)' 등 접근성 확대를 위한 제도들을 시행해 왔지만 아직 개선점이 남았으며 이 문제들은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심평원 약제관리실 유미영 실장은 "신약 접근성 확대를 위해 RSA, 경평 면제 제도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는 RSA 87개 품목, 경평 면제 의약품 29개 품목 등이 적용되는 등 신약 도입을 위한 개선은 지속될 것"이라며 "연말에는 참조국가와 비교해 특허 만료약 가격을 재평가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유 실장은 또 해외와 우리나라의 허가 차이 등도 인지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접근성 강화 역시 개선 과제라고 덧붙였다. 그는 "항암제는 1차, 2차 치료제 등 권고 기준 등이 설정돼 있는데 최근 같은 약이라도 우리나라와 해외기관 간 허가 범위에 차이가 발생하기도 한다"며 "이에 대한 접근성 역시 강화시킬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복지부 보험약가정책과 손호준 과장
복지부 건강보험정책과 손호준 과장

보장성과 의료 전달체계 비효율, 비급여 관리 숙제
복지부 건강보험정책과 손호준 과장은 건강보험 재정 관점에서 향후 2차 종합계획에서 해결해야 할 숙제 등을 소개했다. 손 과장은 우선은 지출 효율화 대책을 통해 누수를 막고 안정적인 재원 확보뿐만 아니라 필수 의료 범주를 새로 설정해 꼭 필요한 곳에 건강보험이 보장되는 내용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손 과장은 "올해 2월 MRI, 초음파가 다소 과했던 부분을 정비하고 이로 확보한 재원을 필수나 중증 희귀질환에 집중 투입하자는 취지의 지출 효율화 대책을 발표했으며 의료 이용, 자격 부과 의약품 관리 등 단기 과제 등은 현재 수행 중"이라며 "중장기 대책인 종합계획에서는 건보의 목적인 국민에게 필요한 튼튼한 보장을 이룰 방향성을 설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1차 종합계획 실행 후 발생하고 있는 개선점에는 △보장성 △의료 전달체계 비효율 △병상 관리 △지불제도 개편 △비급여 관리 △실손보험과의 관계 등이 있다"며 "전문가들과 환자 의견을 적극 수렴해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를 위한 근본적인 방법들을 고민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재정을) 줄일 곳에서는 줄이고 늘려야 할 곳에서는 늘리고자 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재원은 국민 부담과 결부된 부분인 만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종합계획 자문단 등 여러 경로로 의견을 수렴해 계획을 수립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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