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회 설문조사는 "즉각 공지 가능한 채널 필요"
관련 규정·업계 속사정 겹치며 '어렵다' 지적 나와

의약품 수급 불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약회사별 공급 방안을 모은 데이터베이스(DB) 사이트의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현행 규정 미비와 제약업계의 의도 등이 섞이면서 공적 부분에서 시행은 어렵다는 반론도 나오고 있다.

대한약사회 민필기 약국이사는 17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난 4월 조사했던 '수급 불안정 의약품 회원 설문조사' 결과를 전하며, 수급 불안정 여부를 알 수 있는 공식 채널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2549명이 응답한 이번 조사 주요 문항을 보면, 처방전에 있는 약이 없을 경우 응답 약사의 54.8%가 대체 혹은 처방 변경을 통해 조제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제가 불가능해 환자를 돌려보낸 경험이 있는 약국도 전체 83.6%에 해당하는 등 실제 조제 불편이 발생하고 있었다.

특히 이 중 수급이 어려운 것은 최근 균등 공급 대상으로 오른 '슈도에페드린' 제제가 43.4%, 그리고 '에르도스테인'이 8.4%, '아세트아미노펜'이 7.7% 등으로 나타났다. 기타 대상에서도 '툴로부테롤' 패치와 당뇨치료제 '메트포르민' 등이 있었다. 조사 대상자들이 말한 주요 약제들은 의료기관의 소위 '세트 처방'에 들어가는 주요 약물들이다.

민 이사는 더 큰 문제는 이들의 수급 가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매우 한정돼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조사 대상 약사 중 의약품 수급 불안정 정보를 입수하는 경위에는 도매 영업사원이 44.2%로 가장 많았다. 약사별 교품을 위한 카카오톡 채팅방 등 SNS 등이 뒤를 이은 32.5% 수준에 달하는 등 알음알음식 단편적 정보로 품절에 대응하는 현실이라고 민 이사는 말했다.

대한약사회가 발표한 설문조사 질문 일부(설문 기간 4월 18~20일)

민 이사는 "수급 불안정 공지 및 공급 예정 일자 안내 등 수급 및 품절 상황에 대한 즉각적인 정보 제공을 할 수 있는 공식 채널 마련이 필요하다"며 "수급 불안정 의약품의 병의원 처방 제한 알림, 유통 내 균등 공급이 유기적으로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에 확인되지 않은 알음알음식의 정보가 아닌 제약사 등이 생산 및 공급이 중단될 경우 해당 품목의 공급 가능 일자는 물론, 수급 가능 시점을 알릴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공적인 영역에서의 수급 관련 사이트 등이 있어야 한다는 내용도 전했다.

약사회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현행 '생산·수입·공급 중단 보고대상 의약품 보고 규정' 제3조 및 제4조에는 품목허가권자 혹은 수입자가 생산과 수입, 공급을 중단할 경우 이를 60일, 부득이한 사유에는 10일 이내에 사실을 전하도록 하고 있다. 이같은 정보는 일부 예외는 있다지만 공개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문제는 앞서 있는 대상 품목이다. 해당 규정의 제2조에는 보고의 대상을 △퇴장방지의약품 △희귀의약품 △동일 성분을 가진 품목이 2개 이하인 의약품 △동일성분을 가진 품목군 중 시장점유율이 50% 이상인 의약품 △전년도 건강보험 청구량 상위 100대 성분을 가진 의약품 △WHO에서 추천하는 필수의약품 목록에 등재된 성분의 약제인 의약품 △생물학적 제제로 원료수급이 불안정한 의약품 △중증 질환치료에 필요한 의약품 중 대체품이 없으며 의약단체가 추천해 심평원장이 인정하는 의약품 등으로 정해놓았다.

이들 품목은 식약처 기준 총 4135여개 품목이다. 품절이 발생하는 제품 중에는 기준 적용이 되지 않는 품목이 많은 이상 사실상 이들의 수급 여부를 명확히 알 수는 없기도 하다.

게다가 업체들 사이에서는 실제 이같은 내용을 담은 웹사이트 등을 구현하는 것은 어렵다고 잘라 말한다. 약국에서 불편함이 공급 중단이 아닌 공급 부족으로 기인한 문제인데 이를 의무화하는 것은 어렵다는 뜻이다.

보고의무 대상인 의약품이 공급 중단인 건지 보고의무가 없는 공급 부족인지는 회사 입장에서는 다른 문제다. 가량 원료 등의 물량이 충분해 생산 중이지만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를 공급 중단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령 최근 약국가에서 설비 개선 문제로 생산을 중단한 모 액제의 경우, 생산을 중단한 것은 맞지만 이미 생산량 이상의 물량을 쌓아놓았고 대체제가 있는 상태에서 어느 정도의 물량을 공급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수요가 벌어지며서 결국 공급이 불가능한 상황에 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회사가 물량을 가수요 없이 어느 정도 통제한 상태에서 공급했다면 해당 기간 동안 문제 없이 약국 수급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상황에서 이를 단순히 '공급 중단'이라고 결론 내리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만약 공급 중단이 진행됐다 해도 행정처분을 받은 사례는 적다는 것이다. 실제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도 이같은 내용을 설명회에서 전하고 있을 만큼 미묘한 기준으로 행정처분을 받은 경우는 드물다. 특히 서로가 위수탁 관계로 물려있는 때 공급 중단 보고는 회사 입장에서는 향후 회사의 수탁 능력이 떨어짐을 알리는 셈이어서 이를 이야기하기도 쉽지 않다.

이같은 기준 혹은 상황이 맞물리며 실제 식약처 내 품목의 생산 및 판매 중단 등을 알린 건수는 85건에 지나지 않았다. 약국 등이 품절을 호소하며 균등 공급을 요청한 '마그밀' 등은 보고대상 의약품임에도 이를 알린 바 없다. 마그밀의 경우 보고 대상이며 품절 기간도 길었지만, 소량이나마 생산되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공급 중단과 공급 부족을 파악할 수 있는 체계가 없는데다 하나하나 보고대상이 아닌 품목을 파악하기 위한 규정도 없는 상황에서 이를 구축하기는 아직은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또다른 지적을 던진다. 고의 생산 중단 가능성이다. 최근 한 국내 중견 제약사가 자사의 고혈압 치료제를 생산 중단한다는 내용을 밝힌 바가 있는데, 대체제도 없는 품목임에도 사실상 단가 문제로 생산을 중단시키려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제기된 바 있다. 공급 중단 보고를 미리 올리면서 남아있는 재고를 '처분'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다.

국내 한 제약사 관계자는 "수급 불안정 문제는 법적인 규제도 있지만 각 유통업체의 재고 확보력, 지역에 따른 분배 등 그 이유가 다양해 실제로 DB를 구축하기는 어렵다"며 "해외의 경우 일부 하는 곳이 있다고는 하지만 국가 차원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어 정부 차원의 구축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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