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공학 태동과 제넨테크... 연구자, 기업 가슴에 불 질러
바이오벤처 원조는 생명공학연구원이 배출한 바이오니아
글로벌 기술수출 포문 연 한미약품, 2015년 5건 기술수출

 좁은 문 앞에 선 K바이오 

신약개발 바이오벤처들에게 IPO 문턱은 매년 자라나 높아지고 있다. 이는 M&A가 전무하다시피한 환경에서 돈 가뭄의 발원지로, 임상개발 등 바이오 기업들의 신약개발 일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K바이오 30주년을 맞아 금단의 언어를 꺼내어 보고, 미국과 일본의 상황을 거울 삼아 우리의 모습을 살펴본다. 

① K바이오의 창세기와 새로 쓰여지는 미래
② 바이오기업들의 딱한 IPO 기우제, 언제까지?
③ 미국 바이오 투자 생태계, 우리와 어떻게 다른가
④ 케이스 스터디 | 다이이찌산쿄 ADC 연구

[끝까지HIT 3호] 올해 K바이오가 30주년을 맞이했다. K바이오의 중요한 순간을 살펴보기 위해 역사적인 사건을 되짚어 본다. 

 

2000년 9월 XX일

그 해 가을은 시원했지만 학회장에는 열기가 넘쳤다. 유전체학회에서 발표를 하고 있는 사람은 마크로젠 서정선 대표. 의사이자 사업가의 발표를 과학자들이 구름같이 모여 듣는 일은 무척이나 낯설었다. 인간게놈프로젝트가 막바지에 이르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2000년, 우리나라 바이오산업의 시작이라고 해도 무방할 분위기였다.

1990년대 말부터 하나 둘씩 생겨나던 바이오벤처가 2000년 전후로 밤사이 죽순이 올라오듯 등장하여 약 500개사에 이르렀다. 물론 원조는 따로 있었다.

어떤 이는 100년 전 활명수로 시작한 동화약품을 꼽기도 하고, 다른 이는 1980년대 초반의 럭키 중앙연구소(현 LG화학)를 꼽기도 한다. 하지만 80년대 초 럭키 말고도 제일제당(CJ), 애경연구소에서도 바이오를 시작하였으니 누가 원조인지를 따지는 일은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닌 듯하다.

아무튼 유전공학의 태동과 그 태풍의 중심에 있던 제넨테크의 등장이 우리나라의 연구자들과 기업들에 강한 자극을 주었고 그 대응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바이오의 산업적 연구가 시작된 것은 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

바이오벤처의 원조는 바이오니아이다. 1992년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 배출한 회사로 유전자 정보 분석 및 유전자 합성을 사업화 하였다.

1996년 과학기술부가 야심차게 추진한 G7 연구개발프로젝트의 성과물로써 바이로메드(현, 헬릭스미스)와 마크로젠이 문을 열었다. 마크로젠은 바이오벤처로서는 코스닥에 제일 먼저 상장한 회사이고, 바이로메드는 코스닥 기술성특례상장 1호 기업이다.

모든 생명체는 적절한 외부요인과 내부요인이 조화를 이룰 때 태동한다.

세기말 IMF라는 거대한 지각 변동이 있었지만 불과 1년 여만에 극복의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먼저 길을 열고 빛을 본 것은 IT였고, IT 벤처들의 약진은 두드러졌다. ETRI를 포함, 주요 연구소의 인력들이 벤처행 기차를 탔다.

바이오 연구자들도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연구자들에게 연구의 한 길을 가야 한다는 건 금과옥조였다. 하지만 90년대 말 대학과 연구소는 이미 인력공급 과잉 상태였고, 연구자들은 다른 길을 모색해야 했다. 신대륙에서 들려오는 신데렐라 스토리도 있었고 주변 IT 연구소에서 들려오는 벼락부자 스토리도 있었다. 1호 상장기업인 마크로젠은 26일 연속 상한가라는 신기록을 세워가고 있었다.

여전히 알 수 없는 건 창업의 길이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 얼마나 가야하는 지였다. 목표로 삼아야할 이정표와 길을 헤매지 않게 해 줄 등대가 없었다. 하지만 그 깜깜한 길을 나서기 시작한 사람은 2000년 한 해에만 삼백이 넘었다.

금광 소문이 나면 청바지 장사꾼이 먼저 도착한다. 벤처캐피탈에도 바이오의 바람이 불었다. 발 빠른 몇몇 회사는 바이오 투자팀을 꾸렸고 바이오 전공자를 심사역으로 초빙하였다. 바이오에만 투자하는 벤처캐피탈도 등장했다.

일주일에 두세 건씩,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 듯 투자가 이루어졌다. 사업계획은 쇼윈도에 걸린 상품처럼 소비되었다.

빙하기를 먼저 감지한 것도 벤처캐피탈이었다. IT 버블이 하나 둘씩 꺼져가고 있었고, 바이오는 도매금으로 취급받았다. 파티를 시작해보지도 못했으니 더욱 억울했지만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는 돈도 없고 상장 소식도 없는 그야말로 빙하기였다.

 

2005년 12월 XX일

분위기는 확실히 좋아지고 있었다. 에스디는 상장 이후에도 선전을 했고, 메디포스트가 제대혈 보관사업의 선두로 부상하고 있었다. 불을 지핀 건 확실히 '황우석'이었다. 하지만 영광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상처는 국내가 더 컸으나, 후유증은 해외에서 더욱 길었다. 우리나라에서 바이오라는 낱말은 꿈의 동의어로 시작했으나, 이제 꿈과 사기는 동전의 양면이 되었다.

데이터 조작은 두고두고 바이오가 글로벌로 가는데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었다. 그래도 주식시장은 바이오에 준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부족했다.

새로운 공급방법이 나왔다. 코스닥 기술특례상장이었다. 바이오니아, 바이로메드, 크리스탈지노믹스 3개사가 특례상장의 문을 함께 열었다.

그래도 공급 부족은 여전했다. 우회상장이 등장했다. 노쇠하여 껍데기만 남은 코스닥기업과 꿈이 있는 바이오벤처가 합병하여 진주 품은 조개로 거듭나는 방식이었다. 빙하기를 견뎌온 바이오벤처에는 가뭄의 단비처럼 여겨졌고, 30개가 넘는 회사들이 줄줄이 옆문으로 코스닥에 입성했다. M&A 브로커들의 감언이설도 한몫 했다.

하지만 빙하기 동굴 속에서 기초체력을 기르지 못하고 무대에 오른 기업들 상당수는 화려한 조명에 화상을 입고 쓸쓸히 무대에서 내려갔다. 셀트리온, 차바이오텍 정도만이 우회상장의 성공 사례로 회자될 뿐이었다.

2005년 이전까지 바이오벤처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던 것은 한국바이오벤처협회(현, 한국바이오협회)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 기술산업센터였다.

이제 정부도 바이오산업 육성에 한몫을 하기 시작했다. 2006년부터 시작된 보건복지부 연구중심병원사업은 산학연에 병을 더하여 바이오산업의 생태계를 넓히게 되었고, 병원들이 진료 중심에서 연구 중심으로 눈을 돌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2008년부터 본격화된 산업자원부의 바이오스타프로젝트는 그로부터 10년 뒤 우리나라 바이오산업을 이끌어간 바이오기업들이 필수적으로 거쳐가는 코스가 되었다. 바이오시밀러 프로젝트 또한 셀트리온과 삼성 등이 바이오시밀러에 뛰어드는 마중물 역할을 하였다.

산자부가 시작하고 복지부가 꽃을 피운 4개의 바이오펀드 역시 2010년 이후 벤처캐피탈이 바이오기업에 본격 투자하는 전위의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2015년 11월 XX일

글로벌 기술수출의 포문을 연 것은 한미약품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사례는 있었다. 2004년 태평양(현, 아모레퍼시픽)이 비마약성진통제 후보물질을 기술 수출했고, 2008년 동화약품이 골다공증치료제로 P&G에 5.1억불 규모의 글로벌 기술이전 계약을 성사시켰다. 2010년에는 메디프론이 로슈에 알츠하이머치료제 기술을 수출하였다.

하지만 한미약품은 5건의 기술을 연이어 수출했다. 거래 규모보다 의미가 있었던 건 우리나라에서 만든 데이터를 고객들이 믿어 주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세계적으로도 많지 않은 기술 거래국에 우리나라가 한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또한 바이오제약기업들의 수익모델이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했다. 이후 바이오산업은 주식시장에서 하나의 산업군으로 인정받게 되었고 기관투자자들의 포트폴리오에도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바이오기업의 창업도 본격화되었다. 매년 20~30개에 불과하던 바이오 창업이 2015년 이후 본격화되었다. 교수 창업이 다시 늘었는데, 교수 창업을 색안경을 끼고 보던 동료 교수 및 대학교의 분위기가 2010년 이후부터 바뀌기 시작하고 산학협력단과 대학기술지주회사의 활동이 본격화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의사 창업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요 병원들은 창업을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고 연구중심병원은 선언적 캐치프레이즈에서 실질적 목표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특히나 의사 창업은 치료제 개발에 집중되던 사업 아이템의 확대를 가져왔다. 의료정보, AI 진단, 디지털치료제 등 새로운 사업모델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창업의 중심축은 기업 출신 연구자들의 창업이었다. 이들은 과학적 지식에 실전 사업 경험으로 무장하여 가야할 길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시행착오의 유형과 패턴을 알고 있었다. 또한 교류와 협업의 중요성도 잘 알고 있어서 혁신살롱을 비롯한 다양한 네트워킹이 본격화되면서 바이오생태계 내에서 정보와 인력의 교류가 활성화되었다.

기술특례상장은 10년 만에 바이오기업들의 주요 상장 통로로 자리 잡았다. 매년 10개가 넘지 않던 바이오기업의 상장이 2015년부터 급격하게 늘어갔고 코스닥 상위 10대 기업에 바이오기업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2000년 전후로 창업한 1세대 바이오기업들 중 살아남은 자들도 코스닥에 합류했다. 물론 그들 전부는 아니었고, 보릿고개를 넘으면서도 창업 기술을 벼리면서 시장 기회를 보던 기업들이 주인공이 되었다.

벤처캐피탈의 투자는 조금 더 빨랐다. 2013년 벤처캐피탈 투자비중에서 바이오는 10%를 넘어섰고 2014년부터는 IT를 제치고 벤처캐피탈이 가장 많이 투자하는 분야가 되었다. 전체 투자의 25% 이상이 바이오로 몰렸고 바이오 투자심사역의 숫자가 100명을 넘어섰다. 증권사 애널리스트 뿐만 아니라 주로 상장사에 투자하는 자산운용사들도 바이오 전문인력을 영입하기 시작했다.

아직 수익을 창출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지만 우물 안을 벗어나 글로벌 시장에서 활동하는 모습들과 미국발 바이오제약산업의 약진은 대세를 형성하기에 충분한 재료였다.

바이오는 바야흐로 우리나라 주요 성장산업의 한 분야로 인정받은 것이다.

 

2022년 6월 XX일

3년을 채워가는 코로나19의 위세는 이제 살짝 꺾였다. 꽁꽁 닫혀 있던 지구촌의 나라들이 조금씩 문을 열고 있다.

100년 만의 역병을 온 세계의 사람들과 같이 겪으며 바이오 제약산업이 부를 창출하는 산업으로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국가 단위에서는 전략산업, 지구 차원에서는 대표적인 공유경제임을 모두가 느끼게 되었다.

채 1년도 되지 않아 우리에게 도착한 백신을 맞으면서 과학 지식이 얼마나 빠르게 제품으로써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 목도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진단기업들의 약진을 보면서 내공을 쌓으며 미리 준비하면 시장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우리나라의 경쟁력은 속도와 유연성에 있음도 보게 되었다.

코로나백신의 위탁생산국이 된 것도 수십 년간 축적한 기술과 검증된 생산 역량, 기술과 프로세스 관리에 대한 신뢰에 기인한다. 이처럼 세계는 우리나라를 다시 보고 있는데, 정작 내부에는 그늘이 짙게 드리우고 있다.

눈으로 보이는 것은 최근 바이오기업들의 코스닥 상장 실패와 바이오기업들에 대한 벤처캐피탈을 포함한 금융자본의 지갑이 닫혀가는 것이다.

그 기저에는 선발기업들의 후기 임상시험 실패가 있고 일부 기업들의 일탈이 있고, 글로벌 경제 위기 조짐이 있다.

임상시험의 실패에서 안전성, 유효성 결과를 도출하지 못한 것은 병가지상사이지만 임상시험 설계가 정교하지 못한 전략적 실패이기도 하다. 생산 및 관리의 문제 역시 아직 가보지 못한 길을 가면서 생긴 반면교사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는 지난 20년 동안 열심히 쫓아왔지만 아직 마지막 관문은 돌파해본 경험이 없기에 생기는 사회적 경험 부족으로 귀결된다.

SK바이오팜이 뇌전증치료제로 신약개발의 전주기를 성공적으로 완주한 경험은 사회적 자산이 될 것이다. 정부 부처들이 모여 만든 범부처전주기신약개발사업단의 지원이 있었고, SK에서 실력을 높인 인력들이 바이오생태계에 성공의 밈(Meme)을 퍼뜨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 바이오기업들의 일탈은 뼈를 때리는 일이다.

기술특례상장이라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제도적 지원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특례상장의 취지는 '지금은 비록 돈을 벌지 못하지만 기술의 차별성과 시장성을 인정해 줄 테니 상장사로서 자금조달을 하여 사업 목표를 달성해 보라. 그리하여 국민들의 소중한 투자금이 한순간에 날아가지 않고 적어도 은행 이자보다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게 하라'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특례상장기업들이 결과는 실패할 수 있어도 과정은 공정하고 투명해야 하고, 이를 위해 더욱 투명한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이유이다.

아직 바이오투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공감대는 상장에 머물러 있다고 본다. 상장은 아이가 성인이 되고 대학교에 가는 단계로 볼 수 있는데, 바이오생태계에서는 아직도 대학이 목표인 세상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러니 비상장 바이오기업에 대한 투자의 초점은 상장 가능성에만 천착하게 되고, 상장시 기업가치에서 역으로 추산하는 투자시 기업가치는 지난 5~6년간 공급이 과잉되면서 천정부지로 치솟아 올랐다. 그러다 보니 투자한 기업이 상장은 되었는데 투자 손실이 나는 사례들이 속출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상장사들의 주가가 전체적으로 하락하는 상황이 도래하니 비상장기업들의 가치는 높아 보이게 되고 투자는 주저하게 된다.

바이오기업의 기업가치 이슈는 우회상장이 활발하던 2006 ~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문으로 주가가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임상시험의 진도가 나가지 않고도 수년 동안 기업가치가 유지되는 전례가 지금도 남아있다. 객관적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상장사 몇몇의 기업 가치나 누가 봐도 고평가 되어 있는 비상장기업의 가치를 비교 기준으로 삼은 기업들 역시 지금은 투자 받기가 어렵다고 볼멘소리를 하지만 뒤를 돌아볼 일이다. 우리가 만들어갈 바이오생태계는 사람의 생명이라는 공익적 목적을 공유하면서 기업과 개인의 사적 이익을 도모하는 곳이다. 사익 추구를 위해 공공의 목표를 훼손한다면 함께 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 바이오산업에서도 M&A가 등장하고 있다. CJ가 천랩을 인수했고, 한국콜마도 M&A에 적극적이다. 롯데, 현대중공업 등 대기업들이 바이오에 뛰어들면서 M&A의 기회는 점점 늘어날 것이다.

글로벌 M&A는 아직 요원해 보인다. 2009년 에스디가 글로벌기업인 인버니스에 약 4000억원에 M&A된 사례가 있었지만 제조 중심인 진단과 달리 무형자산 위주의 신약개발회사는 지리적, 언어적, 문화적 허들도 여전히 높아 보인다.

하지만 국내 바이오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활발해지고 현지 법인의 역할이 커지면서 현지법인이 해외기업에 M&A가 되거나, 현지법인이 해외기업을 인수합병하는 방식 등 다양한 M&A 거래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

2009년 사라진 에스디가 코로나 시국에 에스디바이오센서로 화려하게 복귀한 것처럼 M&A는 산업에 역동성을 부여하는 계기가 된다. 회사는 가도 사람은 남는다.

이에 따라 바이오투자의 방식도 바뀌게 되리라 본다. 기업은 항상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기에 VC(벤처캐피탈에서 투자를 담당하는 투자심사역을 지칭)들은 여러 회사를 보면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투자기업에 제공해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상장을 목전에 둔 기업에 대한 투자나 국내는 볼 게 없으니 해외기업들에게만 눈을 돌리는 방식의 투자는 VC로서 정체성 및 경쟁력을 깎는 일이라 본다. 바이오생태계에서 VC의 역할은 '연결'에 있기 때문이다.

투자회사에서 바이오만 투자하는 것도 아니고, 상장만 보이는 회수의 문이 그나마 좁아져 보일뿐더러 예측도 어려우니 지갑이 닫히는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투자는 오늘이 아니라 내일, 그리고 또 내일을 보는 일이니 인류가 생존하는 동안 바이오에 지갑이 닫힐 가능성은 없다.

투자시 기업가치 산정, 즉 밸류에이션에 대하여 투자자와 투자기업 양자가 합리적인 기준을 만들 수 있다면 그 시기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양적완화라는 시한폭탄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되는 글로벌 경제위기의 구름이 언제 장대비가 될지 염려되지만, 결국 비는 그치고 햇살은 다시 비춘다.

2001년 IT 버블이 깨질 때에도 그랬고,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때에도 그랬다. 과거는 늘 미래의 거울이 된다.

지난 20년의 경험을 보면 미리 대비하고 본업에 시간과 역량을 집중하는 회사가 가장 먼저 햇살을 받는다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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