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소, 문제있는 기업은 투자자 의식해 미적대고
해법으로 IPO 기준 높여 멀쩡한 기업들이 생고생

M&A 무풍지대 K바이오, 만병의 근원 IPO 병목현상 심화
돈 가뭄에 빠진 기업들... 임상 해야겠는데 투자유치 난망

상장기업, 유상증자로 자금 확보... 필요 자금 조달 불충분
상장문턱 점점 높아져... L/O 실적·2상에 플러스알파 갈 듯

IPO 플랫폼서 개인투자자들이 상당 물량 받아내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 바이오 키다리아저씨 안되나

 좁은 문 앞에 선 K바이오 

신약개발 바이오벤처들에게 IPO 문턱은 매년 자라나 높아지고 있다. 이는 M&A가 전무하다시피한 환경에서 돈 가뭄의 발원지로, 임상개발 등 바이오 기업들의 신약개발 일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K바이오 30주년을 맞아 금단의 언어를 꺼내어 보고, 미국과 일본의 상황을 거울 삼아 우리의 모습을 살펴본다. 

① K바이오의 창세기와 새로 쓰여지는 미래
② 바이오기업들의 딱한 IPO 기우제, 언제까지?
③ 미국 바이오 투자 생태계, 우리와 어떻게 다른가
④ 케이스 스터디 | 다이이찌산쿄 ADC 연구

[끝까지HIT 3호] 상장기업, 비상장기업을 가리지 않고 국내 바이오기업들이 돈가뭄을 겪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 어느 정도 숨구멍이 트일 보릿고개일지, 아니면 속수무책의 장기화 조짐일지 현재로서 가늠하기 어렵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기인한 세계 경제의 어려움이나, 포스트 코로나19 경제 후유증 같은 외생변수 문제 못지 않게 국내 바이오 생태계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들이 내재돼 있기 때문이다.

일부 상장기업은 유상증자를 통해 융통한 자금으로 임상개발 등 사업을 예정대로 진행시키려 하지만, 바이오 주가가 크게 떨어진 상황이라 융통액은 필요액보다 크지 않다. 유상증자로 확보한 300억원~400억원이라봐야 임상개발이 본격화되면 금세 바닥을 드러낼 '병아리 눈물' 정도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긴급 수혈한 자금으로 임상개발이 성공적인 결과를 내 기술이전 등으로 이어지는 것이 베스트 시나리오겠지만, 달팽이처럼 조금씩 진전하는 신약개발의 특성을 감안하면 신의 가호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액의 크기에 관계없이 유상증자 등 자본시장을 통해 운영 자금을 조달한 기업은 한숨을 돌렸으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거꾸로 근래 주식전환 사채(CB)를 발행했던 기업들은 CB 채권자들이 주식시장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주식으로 전환하는 대신 현금상환을 요구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가뜩이나 운영자금이 부족하고, 조달이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주식담보 대출로 돈을 빌려 자사주를 매입한 CEO들도 금리 인상의 불안감을 갖고 있다. 이같은 상황이 아니라도 대다수 기업들은 기술이전 등 뚜렷한 매출이 없는 가운데 상장 때 확보한 자금으로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어 자금 사정은 좋지 못한 실정이다.

법인통장 바닥이 드러나기는 비상장 바이오벤처들도 마찬가지다. 꽤나 풍요롭게 돌아가던 대한민국 바이오 생태계는 어쩌다 활력을 잃었을까? 활력을 회복하려면 주식시장이 살아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끝까지HIT>는 외생변수보다 K바이오 생태계가 만성적으로 앓고 있는 질병을 '다중항체의약품'으로 치료하기 위해 얽히고 설킨 메커니즘들을 따라가 본다. 다중항체의 톡신(페이로드)을 개발하는 것은 역량있는 정책담당자 등 전문가들의 몫이다.

 

맛집에 늘어선 손님들처럼 바이오기업들도 '대기 중'

바이오 투자심리가 악화되고, 생태계에 돈 가뭄이 드는 이유와 관련해 벤처캐피탈(VC) 등 투자업계는 물론 바이오기업들은 투자금 회수 경로로 기업 인수합병(M&A)이 거의 작동하지 않아 기술특례 상장(IPO)에 투자가 몰리는데 따라 나타나는 '병목현상'으로 진단한다. 미국의 경우 IPO와 함께 스타트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보유한 기술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M&A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시스템이 보편화되어 있다.

곤충이, 유충이나 번데기에서 탈피해 성충이 되는 우화(羽化)처럼, IPO는 가능성 있는 기술을 품은 작은 바이오기업들이 대규모로 연료를 충전해 본격적으로 신약개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변모시켜주는 결정적 모멘텀이자, VC 등 투자자들이 투자금 플러스 알파를 회수해 또다른 투자를 모색하는 축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바이오기업들의 우화, 즉 IPO는 해마다, 이벤트 마다 그 기준이 높아지고 있어 점차 병목현상을 가속시키고 있다. 다행스럽게 선택받은 곳들은 날개가 돋는 등 우화에 성공했으나, 그 숫자가 적은 까닭에 생태계의 활력을 일으키지는 못하고 있다. 누가 뭐래도 IPO는 생태계를 살리는 돈줄의 발원지다. IPO 기업 숫자가 줄어든다는 것은 돈의 유통량이 줄어든다는 말과 동격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바이오기업 기술특례상장은 △2018년 15건 △2019년 14건 △2020년 17건이었다가 2021년 한 자릿 수인 9곳으로 줄었다. 주목할 것은, 작년 기술특례상장은 31건이었으나 바이오만 9건으로 줄어 들었다는 점이다. 바이오가 기술특례상장 부문에서 매력이 떨어진 셈이다. 3000개인지, 4000개인지 모른다는 비상장 바이오벤처 숫자를 생각하면 바이오에게 문이 닫혀가는 기술특례상장 트랙의 마지막 입구는 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시내 유명 맛집에 줄지어 늘어선 손님들처럼 바이오기업들도 'IPO 맛집'의 문턱에서 순번을 기다리는 처지는 반전이 없는 한 심화된다는 이야기다.

기술력과 성장성을 갖춘 기업에게 상장의 문턱을 낮추겠다는 취지로 2005년 도입된 기술특례상장. 1호 기업인 바이로메드(현, 헬릭스미스)를 비롯해 바이오니아, 크리스탈지노믹스 등 지금까지 90여개 바이오기업이 이 트랙으로 코스닥에 상장했다. 국내 바이오 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인데, 불행하게도 기술특례상장에서 바이오기업의 비중이 감소하는 트렌드인 것도 사실이다. 바이오가 밀려난 자리에 AI, 메타버스, 빅데이터 등 신기술을 내세운 업종이 상장했다.

작년 좁아진 IPO 관문은 올해 상반기까지 예년 수준으로도 열리지 않았다. 애드바이오텍, 바이오에프디엔씨, 노을, 보로노이 등이 어렵사리 좁아진 상장의 문을 통과했다. 보로노이의 경우 수요 예측 실패로 상장 계획을 잠정 철회하며 기업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서야 시장에 입성했다. 보로노이는 2020년과 2021년 3건의 기술수출 등 모두 4건의 기술이전(2조원 규모)에 성공했던 우량 바이오벤처로 평가받았던 터라 IPO를 준비하는 비상장 바이오기업들에게 적잖은 염려를 안겼다. 작년 덴마크 룬드벡에 약 5180억원 규모 기술이전에 성공한 에이프릴바이오도 코스닥 상장 예비심사에서 고배를 마셨다가 시장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한 끝에 코스닥 상장 예비심사 문턱을 넘었다. 기대를 받았던 기업들의 IPO 실패 소식들은 바이오 투자심리를 악화시켰다.

 

이슈마다 담장 높아지고, 좁아지는 IPO 관문
"정부와 거래소 등 혁신금융정책 활성화 필요"

한국거래소는 기술력과 성장성을 갖춘 기업에 대해 상장의 문턱을 낮추겠다는 취지로 2005년 기술특례상장제도를 도입한 이래 기업의 목소리를 들으며 '혁신기업 상장 촉진을 위한 IPO 제도 개편'을 추진해 왔다. 트렌드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는 이야기다.

거래소는 ① 2016년 12월 이익 미실현 기업 및 주관사의 성장성 추천기업에게 상장을 허용했고 ② 2018년 성장 잠재력 중심으로 진입 요건을 재편했으며 ③ 2019년 코넥스 기업의 코스닥 신속이전제도를 확대했다. 2019년에도 4차 산업혁명 시대 도래에 따라 AI, 블록체인, 바이오, 핀테크 등 신기술 위주의 혁신기업 창업과 성장이 증가하는 상황에 맞춰 IPO를 원활하게 하고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혁신기업 특성에 맞게 상장과 관리제도를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기술특례 상장 바이오 기업의 관리종목 지정요건을 차별하기도 했다. 최근 사업연도 매출액이 30억원에 미달하더라도 최근 3년간 매출액이 90억원 이상이면 관리종목 지정을 면제하기도 했다.

그런데 의아하다. 이랬던 거래소였는데, IPO 관문은 왜 경색된 것일까? 우선 거론되는 원인 중 하나가 '성공 증거의 부재론'이다. 기술특례로 상장한 바이오기업들이 그동안 일군 성과가 무엇이냐는 비판인데, 달팽이처럼 느려터진 신약 개발의 특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바이오벤처업계 인사들조차 이런 원인 분석에 공감하고 있다. 여기에다 상폐가 거론된 기업이나, 이런 저런 이유로 관리종목 지정을 당한 업체까지 거명되면 스스로 자신들의 잘못처럼 미안해하기도 한다.

'우리'라는 문화의 과장된 연대감일까? 바이오생태계에 A, B, C, D, E 등 여러 기업들이 존재한다고 가정할 때 A의 문제는 B, C, D, E와 무관한 것이며 E의 성공 또한 A, B, C, D와 관련이 없다. 다시 말해 A가 상장폐지의 위기에 빠지고, B가 3상 임상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며, C가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한들 그것이 D, E를 판단하는데 영향을 미칠 사안이 아니다. 철저히 개별사안이다.

과거 반성론을 기반으로 IPO 경색을 해석하는 이도 있다. 바이오벤처 업계 CEO A씨는 "성공 가능성을 철저히 검증하려는 노력이 필요없던 시장에서 투자되면 안 되는 곳에도 많은 자금이 몰렸다. IPO가 쉽게 가능했었기 때문에 VC의 초기 투자가 무분별하게 이뤄졌다. IPO만 된다면 신약이 성공하던, 말던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던 머니게임의 장도 있었다. 성공확률이 높은 기업에 가야할 돈이 무차별적으로 뿌려진 것"이라고 말했다.

IPO 시장 경색을 투자 구조적 측면에서 보는 분석도 있다. 바이오벤처 임원 B씨는 "원인을 단순히 기존 상장사의 사업성과(매출액 및 글로벌 기술이전 등) 미흡으로만 볼 수 없고, 우리나라 자본시장에서 모험자본의 규모가 미국 등 선진 경제에 비해 너무 낮은데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현재 IPO 시장에서는 기관투자가들의 엑시트(매도)가 주를 이루고 있으나, 이를 이어받을 자본은 기관들보다 개인투자자들 중심의 소규모 자본이 주류"라고 말했다.

B씨에 따르면 상장 바이오 벤처에 더 큰 자본이 유입되지 못하고 썰물처럼 빠져 나가려는 펀드들이 많아지면서 해당 벤처들은 상장 이후 글로벌 임상 개발자금 확보의 어려움이 발생되고,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 기회를 지연시키면서 벤처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초래되고 있다. 그는 "바이오 등 혁신벤처 상장사 가운데 옥석가리기를 할 수 있도록 선진화된 모험자본의 유입에 대한 정부와 거래소 등의 혁신금융 정책의 활성화가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깐깐해진 심사 기준에 비상장 기업들이 대처하려면
자원배분하며, 주력 파이프라인 키워 L/O 모색해야

제1회 제약·바이오 사업개발 전략 포럼 발표 중인 강지수 BNH인베스트먼트 전무
제1회 제약·바이오 사업개발 전략 포럼 발표 중인 강지수 BNH인베스트먼트 전무

바이오부문 전문 투자기관인 BNH인베스트먼트 강지수 전무는 6월 14일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이사장 홍성한)이 주최한 '2022년도 제1회 제약·바이오 사업개발 전략 포럼'에서 비상장 바이오 투자 트렌드를 분석해 발표했다.

강 전무 발표에 따르면 2021년 기술특례상장 가운데 바이오기업의 비중이 줄어든 것은 ① 시장성 관련 평가기준이 세분화되고 ② 매출 예상치에 대한 검증 강화 등 기술특례상장 평가기준이 높아짐으로써 상장의 난이도가 높아진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올해 8월 약학이나 임상 전문가 등이 기술성 평가에 참여하는 내용이 포함되는 기술평가 가이드라인 개정안이 발표된다.

비상장 기업들에게 상장 청구시점에 필요한 정성적 기준들을 달성하기 위해 비상장 단계부터 마일스톤 관리와 자원배분 전략이 중요해졌다. 신약개발 바이오기업의 경우 상장 청구시점에서 임상 2상의 파이프라인에다, 규모있는 계약금을 수령한 기술이전(L/O)으로 사업성을 입증해야 한다. 파이프라인의 개발 실패 가능성을 보완하고 기업의 영속성을 고려해 후속 파이프라인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 전무는 판단했다.

그는 상장 바이오기업들의 주가하락으로 인한 비상장사의 밸류에이션 타격도 전망했다. 2020년 안팎 바이오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밸류에이션이 급상승했던 일부 비상장사의 경우 밸류 역전 현상도 발생할 수 있으며 투심이 위축되면서 바이오전문 VC 외 크로스오버 투자자 및 개인들의 투자도 축소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강 전무는 상장 준비기간 장기화 및 투자유치 난항에 대비해 자금 확보와 관리 전략이 중요해졌다고 했다. 상장 기준에 부합하는 마일스톤 달성, 기술성 평가 통과 및 예비심사 승인까지 장기화 가능성에 대비해 비주력 프로젝트에 대한 자원배분 조정, 지분 투자 외 다양한 방식의 자금 조달에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거래소는 크고 작은 이슈가 생길 때마다 업계의 의견을 경청해 제도를 개선하는 등 싹싹하지만, 투자자 보호라는 명제에 짓눌려 정작 결단할 때 결단하지 못하고 주춤거리며 대다수 기업들을 힘겹게 만드는 기준 강화 같은 대책을 내놓고는 한다. 그곳에 찾는 물건이 없는 줄 뻔히 알면서도 가로등 불빛 아래만 서성이고 있다는 느낌이다.

문제의 재발방지를 위해 질적 심사요건을 개선한다면서 지적재산권 보유여부 확인에서 원천기술 보유 여부 및 기술이전 실적을 요구하고, 복수의 파이프라인이 있느냐 따지고, 임상 단계는 어디인지 따지고, 제휴사와 공동연구개발 실적을 점검하는 식으로 상장의 담장을 높이는 식이다. 숲으로 직진하지 않고, 주변을 빙빙 돌고 있는 것이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이렇게 말한다. "잘하는 곳은 당연히 잘 가는 것이고, 문제가 있는 곳은 기준에 따라 상폐를 시켜버리면 될텐데, 투자자 보호 명목 혹은 나중 돌아올 비난과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문제 있는 곳도 상폐를 시키지 않으면서, 새로 올라가는 기업들에게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식으로 바뀌니까 정화는 안되면서 업계 전체를 왜곡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 아닌가."

'상장기준을 높일수록 투자자를 보호할 수 있다'는 한국거래소의 전제가 유지되면 상장의 기준은 앞으로도 더욱 높아질 것이며, 이에 따라 상장하려는 기업에게 요구하는 항목도 L/O 실적에 임상 2상 진입 파이프라인을 넘어설 것이 분명하다. 극단적 가정이지만, 나중에는 글로벌 임상 3상을 마치고 FDA에 허가 신청한 파이프라인을 요구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그러고 난 뒤에도 투자자 보호를 위해 상업적 성공까지 정부가 개런티해야 할지 모른다.

투자자 보호가 혁신보다 훨씬 상위개념이라는 구조에서 기술특례상장을 통해 혁신신약 개발에 도전하는 바이오기업은 전혀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전 세계적으로 수없이 많은 임상시험이 진행됐지만 실패한 치매치료 후보물질을 주력 파이프라인으로 삼은 바이오기업 X가 상장에 도전할 때 과연 기술평가가 필요는 할까? 모두 실패였던 경험칙상 거래소는 이 기업을 상장시키면 안되는 것이다. 나중에 책임이 따라붙기 때문이다. 돈이 없는 기업의 기술이 혁신신약으로 연결되도록 기회를 열어주기 위해 도입된 기술특례 제도가 거꾸로 혁신을 가로막는 브레이크가 되는 아이러니를 우리는 목도하고있다. 외견상 충분한 입증자료를 내면 된다고 반론을 할 수 있지만, 그만한 입증자료가 있으면 미국 시장으로 곧바로 가지 코스닥에 왜 상장을 하겠나.

기술특례상장은 될성 부른 기업을 선정한다기보다 기업 공개를 해도 되는 기업, 내부 통제나 거버넌스가 제대로 이뤄지는 기업들에게 문호가 개방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회사의 리스크에 대한 정확한 공지가 이루어지면 된다. 만능은 아니지만 미국처럼 작동해야 한다. 임상 결과가 안 좋으면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투자한 주주들이 각자 리스크를 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상장 심사는 공공이 투자를 할 수 있을 정도의 기준을 맞추는 회사인지 보는 게 중요하지, 이 회사 파이프라인이 성공을 할 것 같은지, 아닌지, 라이선싱 아웃이 될 것 같은지, 안 될 것 같은지를 보는 쪽으로 왜곡 편향돼서는 안된다. 솔직하게 말해 신이 아니고서야 누가 성공과 실패를 검증할 수 있을까? 공연히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 기반해, 투자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 아래 거래소가 너무 부담을 진 나머지 검증을 강화한다는 식은 비효율, 비합리다.

혁신신약 개발에 관해 이 사회의 공준(Postulate)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10년 넘도록 5000억원 이상 R&D 자금을 쏟아부어도 성공 확률은 극히 낮지만, 누군가 도전해 혁신을 이뤄 경제적 효과를 거두고 인류건강에도 기여하도록 길을 열어 주는 것일지 모른다. 우리 사회가 최소한 이 정도의 명제에는 합의했다고 생각하는데, 더 간략히 하면 '신약개발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으로 풀섶에서 새벽 이슬 맞으며 출발한 달팽이가 중천에 뜬 태양에 달궈져 죽지 않고 줄기 끝까지 올라가 보는 것이다. 신약개발이 이러하다.

사회 곳곳에는 '쇼 미더 황금알(Show me the golden egg)'을 외치며 거위 배를 갈라 보자는 욕망들이 들끓어 오르고 있다. 정부는 몇 년 뒤 글로벌 상위 순위에 국내 기업 몇 곳을 진입시켜 놓겠다고 전의를 불사르고, 블록버스터를 몇 개 만들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5000억원 규모 제약바이오펀드를 조성해 임상시험을 진행하면 곧 황금알을 손에 쥘 것처럼 말하지만, 어림 잡아 5000억 가까이 들인 다국적 제약회사의 야심찬 임상 프로젝트가 엎어지는 것도 다반사다.

작은 기업의 혁신 기술을 사업화 시켜보겠다며 기술특례상장 제도를 도입한 정부는 '될성부른 기업, 실패하지 않는 기업'을 감별하겠다면서 현미경을 들이대며 신의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 누구의 지혜와 촉이라서 물건을 알아보겠는가. 결국 선하디 선한 이같은 행위들은 혁신의 좁은 길에 들어선 기업들을 끌어내려 아스팔트 포장도로 위에 올려 놓는 모순을 낳고 있다.

전통 제약회사들은 투자금 대비 성과 측면에서 볼 때 신약 개발보다 제네릭 비즈니스가 쏠쏠하다. 혁신에 대한 보상이 보잘 것 없기 때문에 하던대로 한다. 전형적인 경로 의존이다. 이처럼 의약품 산업에 대한 범 정부의 방향성들은 제각각 뻗쳐 나와 혼란스럽다. 혁신 신약 개발을 목표로 깃발을 꽂은 것인지, 제네릭 비즈니스 정책에 꽃 장식을 한 것인지 불분명하다.

투자자들은 투자의 실패를 스스로 책임지려 하지 않고 주주 방이네, 조합이네 만들어 CEO들에게 압력을 행사하며 화풀이를 한다. 신약개발이라는 공준으로 보면 '투자가 신통하지 않아 안됐기는 한데, 그것은 당신 책임'이다. 통상 비상장 바이오 기업이 IPO 관문을 통과하면 지금껏 함께 온 VC 등 세르파들은 누리호 1단 로켓처럼 분리돼 떨어져 나간다. 이제부터 2단 로켓이 작동해야 하는데 VC가 내놓은 물량 대부분은 개인투자자들이 받는다. 강력한 2단 로켓인 기관투자자는 대기권을 통과해 궤도에 안착하는 모험에 별 관심이 없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이 한미약품 등 전통 제약회사나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에는 기꺼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려 하지만, 갓 상장한 기업들 곁에는 한시도 머물려 하지 않는다. 국민연금이 엔드 포인트(End Point)를 보고 장기적으로 바이오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어불성설인가? 그렇다면 의구심이 든다. 바이오기업을 상장 문턱으로 끌어 온 VC의 돈은 어디로부터 비롯되었나. 모태펀드에는 정부의 향기가 진한 돈들이 꽤 들어 있는데, 이들은 중간 기착지(IPO)에서 수익을 내고는 미련없이 떠난다. 동네만 다니는 마을버스처럼 말이다. 그리고 생태계에는 투자금 대비 몇배 수익률이라는 전설이 떠돈다. IPO 이후 고 비용, 고 위험 구간에 들어선 신규 상장기업 곁을 지키는 이들은 변동성 높은 개인투자자들이다.

혁신을 주장하지만, 결과적으로 혁신을 저해하는 기술특례 상장에 대한 근본적 고민과 늘 안전한 길만 다니는 국민연금 등에 대해 혁신의 관점에서 달리 보거나 개선할 점은 없는지 전문가들이 논의할 시기가 왔다. 이같은 아젠다 세팅은 금단의 열매를 따는 일이 아니다.

바이오시즌1 파이널라운드 세미나 발표 중인 김용주 레고켐바이오 대표
바이오시즌1 파이널라운드 세미나 발표 중인 김용주 레고켐바이오 대표

창업 열기는 식지 않았다. 김용주 레고켐바이오 대표는 법무법인 디라이트와 스타인테크가 지난 6월 28일 공동 주최한 바이오 시즌1 파이널 라운드의 세미나 키노트에서 "대학 교수님들이 어떻게 창업하느냐"며 자주 묻는다고 했다. 자신들의 연구와 기술을 믿는 것인데, 이젠 이들의 스타트업은 더 기획되고, 정교하게 가다듬어져야 할 필요성이 크다. 기술이 있는 교수가 CEO는 물론 임상개발까지 총괄하지 않도록 처음부터 세팅하고, 비상장 구간에서 작은 규모의 M&A도 빈번히 나타나도록 사전 세팅하는 것도 생태계를 위해 바람직할 것으로 예상된다. 과학과 경영은 다른 영역이기 때문이다.

바이오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이전된 기술이 되돌아 왔을 때나 기대를 모았던 허가용 임상 3상이 1차 평가지표를 충족하지 못했을 때, 궤변에 궤변을 더하지 않고 정직하게 소통해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다양한 주체들이 살아가는 '신약 개발 바이오 생태계의 신뢰 자산을 쌓는 길'이다. 모든 아젠다는 이 위에서 세팅될 수 있으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40년 넘게 신약개발의 쓴맛과 단맛을 다 보아온 칠순의 신약개발 도전자, 김용주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 대표는 "내가 50대 초반에 회사를 했어요. 이제 칠순인데 언제까지 할까요? 대한민국 바이오벤처의 지향점은 어디죠? 난, 임상 끝까지 갑니다"라고 말했다. K바이오기업들은 너나 없이 험한 길위에 서 있다.

이 글에서는 기술관련 충족미달인지, 내부 통제 이슈에 관한 것인지 등 특정기업의 IPO 탈락에 관한 이러 저러한 내용은 다루지 않고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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