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맛집을 찾아서 [3] 큐베스트바이오

선도물질 단계에서도 용량-반응-노출(Dose-Response-Exposure relationship)의 관계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신약을 빚으러 가는 길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지갑이 얇으니 큰 길로 가는 것을 주저하며
지름길을 택했습니다.
(중략)
생각보다 오래지 않은 세월이 흘러 임상시험의 어느 단계에선가
나는 한숨 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동물시험 단계부터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는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인용)

 

신약 후보물질을 선정하기 전에 서너 개의 선도물질(Lead compound)을 서로 비교하게 된다. 올림픽 경기에 어떤 선수를 출전시킬 것인지 정하는 것과 같다. 감독은 당연히 여러가지 특성과 상태를 비교하겠지만 어디까지 살펴봐야 할지는 감독의 축적된 경험과 통찰력에 달렸다. 지갑이 두툼하지도 못하니 이건 빼고, 저건 다음에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건강검진을 받으면서 추가 비용을 내고 CT나 MRI를 찍으려면 드는 마음과 같으리라. '난 괜찮을 거야. 이건 지금 확인하지 않아도 문제없을 거야.'

타협의 결과는 몇 년이 지나야 알 수 있다. '오늘을 살기도 힘이 들어 죽겠는데 내일 일을 굳이 지금 해야 할 필요는 없지. 어차피 확률인데.'

아쉽지만 신약을 개발하는데 타협은 없다. 

초반에 넘어지면 다시 뛸 수 있으나 후반에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기가 어렵다. 기업의 존망이 위태롭게 되기도 한다.

며칠 전 비임상 CRO인 큐베스트바이오 김수헌 대표의 발표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선도물질 단계에서 TK(Toxicokinetics, 독성동태)를 보는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부분에서 문득 프로스트의 시가 떠올랐다.

동물시험에서는 유효성만 보고, 비임상시험에서는 단회독성만 보고. 많은 대표님들이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빨리 임상시험으로 가야한다고도 했다.

그때 우리에게 임상시험은 가보지 않은 길이었으니 그럴 수 있겠다고 여겼다.

세월이 흐르고 우리나라 신약개발사의 한 페이지를 넘기게 되니 임상시험 실패라는 쓰린 결과들이 적혀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해석은 다양하지만 정답은 어쩌면 마음과 자세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니 돈이 없었던 것보다 몰랐기 때문이었다. 책에서나 접하고 곁눈질로만 보았지 직접 의사결정하면서 단계를 하나하나 거쳐간 적이 없었던 거다.

고객사에게 후보물질 최적화 단계에서 독성동태(TK)를 보는 게 좋겠다고 말하면 어떤 반응이 올지 눈에 선했다. 그럼에도 그런 제안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우리는 CRO(Contract Research Organization)의 C를 'Consulting'으로 읽어요."

선도물질 단계에서도 용량-반응-노출(Dose-Response-Exposure relationship)의 관계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 큐베스트바이오의 답변이었다.

"기존의 약물뿐만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약물(New Modality)에 대한 분석법을 개발하고 분석(Bioanalysis) 시간을 단축하여 고객의 시간을 지키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큐베스트바이오 분석실(사진, 큐베스트 제공)
큐베스트바이오 분석실(사진, 큐베스트 제공)

 

잘 버리는 게 관건이다.

신약 개발에서 금과옥조로 여기는 말이 있다. 

"Quick Win, Fast Fail." 

잘 버리는 게 실력이고 성공에 이르는 길이다.
 
바이오기업 경영에서 가장 고민스러운 낱말이 매몰비용(Sunk Cost)이다. 말 그대로 한번 쓰고 나면 되돌릴 수 없는 비용이다.

주식투자에서 쪽박이 되는 비결이 본전 생각이듯이 신약개발 기업이 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못 먹어도 고'라는 말은 호기롭지만 그 말을 뱉고 독박을 쓴 경험은 누구나 있지 않을까.
 
특히나 약효와 독성이 한끗 차이인 신약개발에서 자식과 같은 프로젝트를 접는 판단에는 머리보다 가슴이 앞선다.

그러니 잘 버리기 위해서는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상처는 커질 뿐이다.

CRO가 필요한 이유이다.

CRO는 신용과 노하우를 파는 업이다.
 
데이터는 추상같이 정확해야 하고, 방향 제시는 과학적이면서도 예술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해결책은 요구하되 제대로 질문하지 못하고, 조언은 구하되 지갑은 열리지 않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컨설팅과 CRO를 한다는 건 참으로 힘든 일이다.

큐베스트바이오는 2021년 미국의 임상 CRO인 KCRN을 M&A하면서 비임상과 임상을 아우르는 Total CRO를 지향하고 있다.
큐베스트바이오는 2021년 미국의 임상 CRO인 KCRN을 M&A하면서 비임상과 임상을 아우르는 Total CRO를 지향하고 있다.

SNS의 창 너머 김수헌대표는 주말이면 광교산을 오르내리고 있다. 반복되는 산행으로 눈을 감아도 길이 그려지고 길 옆에는 나무가 늘 자리를 지키고 있고 꽃은 피었다가 지기를 계속한다.

CRO는 신약개발이라는 등산의 도우미로서 주말에도 쉴 틈이 없나 보다. 두 갈래의 길에서 이 길을 가보기도 하고 저 길을 가보기도 한다. 고객은 한 번일 수 있으나 CRO는 매 번이고, 매번 같은 길은 아니지만 비슷함은 통찰력을 키운다.

아마도 세월이 흘러 우리나라 바이오신약의 성과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본다면 그 상당부분은 CRO에 축적되어 있으리라 본다. 그 날의 CRO는 내부 임직원과 외부의 경험 많은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쌓는 새로운 모달리티(Modality, 형태)의 조직일 것이고, CRO의 C는 Consulting으로 신약 사전에 기록되어 있을 것이다.

눈 덮인 광교산을 보며 광교산 도우미가 히말라야의 셰르파가 되는 상상을 해본다. 우리나라에서 신약을 개발하는 꿈을 꾸는 사람들 모두에게도 분명 즐거운 상상이고 기다림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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