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깃 단백질을 통째로 분해하여 문제를 원천봉쇄
디그래듀서 플랫폼 기술로 신규 모달리티에 도전

 바이오 맛집을 찾아서 [2]   유빅스테라퓨틱스 

올림픽대로를 타고 공항 방향으로 여의도를 지나면 한강 너머로 난지도(蘭芝島)가 보인다.

난초와 지초가 어우러진 섬이라 난지도, 예쁜 이름이다.

지금은 억새 축제로 유명한 이 공원이 내 기억 속에서는 사다리꼴 모양의 거대한 쓰레기 산이었다. 어느 넝마꾼이 쓰레기 더미를 파헤치다가 보물을 찾아 팔자를 고쳤다는 이야기도 있었지.

5년 전 프로탁(PROTAC)이라는 신기술을 처음 보았을 때, 떠오른 이미지가 난지도였다.

'진짜가 나타났군.'

바이오벤처 대표님들께 드리던 말씀이 있었다. 사업을 하려면 마음 속에 쓰레기통 하나 장만하셔야 한다고. 스트레스를 그때그때 풀고 버리지 않으면 사업이고 뭐고 마음이 다치고 몸이 상한다고.

나에게 쓰레기통은 그런 뜻으로 입에 붙어있던 말이었는데, 바이오에 진짜 쓰레기통이 나타난 것이다.

이 미제(made in USA) 쓰레기통은 이름도 어려웠다. 프로탁(PROTAC), Proteolysis-targeting Chimera. 서로 다른 조각들이 결합하여 키메라라는 이종 복합체를 만드는데, 이게 신통하게도 딱 찍은 단백질을 분해할 수 있다는 거다. 키메라는 본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사자 머리에 염소 몸통, 뱀 꼬리를 가진 괴물인데, 이 녀석 역시 세 가지 부위로 나뉜다. 머리로는 자기가 찍은 표적 단백질을 붙잡고 꼬리는 E3 ligase라는 이름의 쓰레기 딱지를 붙이는 효소를 붙잡고 몸통은 이들을 연결하는 링커(Linker) 역할을 한다. E3 ligase라는 효소가 유비퀴틴이라는 딱지를 여러 개 붙이면 프로테아좀(Proteosome)이라는 쓰레기차가 지나가다가 수거를 해간다. 프로테아좀은 단순히 단백질을 수거할 뿐만 아니라 단백질을 분해한다. 즉, 거대한 단백질분해효소이다. 생명체는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경향이 있어서 분해된 단백질이나 아미노산은 대부분 재활용된다.

이렇게 되면 선택한 단백질이 분해되어 버린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신약 개발 콘셉트는 열쇠와 자물쇠의 이야기를 따랐다. 단백질이라는 큰 자물쇠 구멍에 화합물(chemical)로 만든 열쇠를 넣어 돌려보다가 딱 맞는 열쇠를 고른 게 신약후보물질(Drug Candidate)이다. 자물쇠 구멍을 막았으니 그 단백질은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고 이는 당초 기대했던 약효가 된다. 그런데 프로탁은 문제가 있는 단백질을 통째로 쓰레기차에 태워서 소위 원천봉쇄해 버리니 스케일이 제법 웅장하다.  또한 자물쇠 구멍 자체가 없거나 막혀 있어서 그간 접근이 어려웠던 언드러그블(Undruggable) 단백질도 표적으로 삼을 수 있게 되어 타깃 시장의 사이즈가 달라지게 되었다.

이 기술로 처음 도전장을 내민 회사가 아비나스(Arvinas)이다.

프로탁은 아비나스가 자기 기술에 붙인 이름이다.

요즘에는 TPD(Target Protein Degrader)라는 보다 보편적인 이름으로 부르자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스테플러도 본명보다는 호치키스라고 부르는 게 아직은 더 편하다. 호치키스라는 단어를 글로는 처음 써보았다. 호치키스도 뭔가 어색하고 호찌케스가 입에 착 붙는다.

나중에 우리가 어떤 이름으로 부를지는 통상 누가 게임의 최종 승자가 되는가에 달려있고 이제 임상시험이 진행중이니 아직 첫번째 게임도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바이오를 보면서 가끔씩 간과하고 있는 사실은 생명체가 엄청 복잡하다는 것이다.

세포 하나가 성(城)이고 도시에 비견될 수 있는데 쓰레기장이 하나라는 건 사리에 맞지 않는다.

단백질을 처리하는 프로테아좀이라는 쓰레기차도 세포 하나에 수십 개가 넘게 있다.

뿐만 아니다. 대형 쓰레기장인 리소좀도 있다. 이 쓰레기장에는 가수분해효소라는 강력한 분해 능력자들이 있는데, 이 녀석들이 세포 안으로 들어온 외부 물질이나 용도를 다한 대형 폐기물을 분해하여 일부는 재활용하고 일부는 세포 밖으로 버린다. 2016년 노벨상을 받은 자가포식(Autophagy) 연구가 여기에 닿아 있다. 오래된 세포소기관이 대형폐기물로 낙인이 찍히면 고려장을 당하 듯 오토파고좀(Autophagosome)에 둘러 쌓여 격리되고, 곧 오토파고좀이 리소좀과 합체하여 분해, 재활용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당연히 이쪽 분야의 연구 성과와 축적된 기술 역시 사업화로 이어져서 프로테아좀을 활용하는 기업들과 양대 축을 이루고 있고 아직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인지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유빅스는 어떤 회사에요?

서론이 길었다. 이제 유빅스를 만날 차례이다. 유빅스의 창업자이자 대표이사는 이력이 다소 특이하다. 대학에서는 면역학을 공부했고 벤처, 제약사, 대기업에서 연구개발 기획, 사업개발, 전략 수립을 담당하다가 VC를 거쳤다.

잘 나가던 VC를 그만 두고 4년 전 프로탁을 창업 아이템으로 선정한 이 분의 눈에는 무엇이 보였을까? 궁금하지만 대놓고 물어보지는 않았다. 서보광 대표는 신중함이 주특기이고, 사업은 말로 하는게 아니니까. 아마도 지금 펼쳐지고 있는 시장보다 더 멀리, 더 큰 시장이 보이지 않았을까? 

바이오의 시장은 문제가 도출되면서 생겨나고 답이 제시되면서 커진다. 하나의 방정식에 대한 해답이 유사한 방정식에 대한 답이 되면서 시장은 세분화되고 확장된다. 당장 키트루다와 옵디보를 위시한 면역항암제가 이러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열쇠 구멍이 들어갈 자리라고는 도통 보이지 않아 소위 약이 안 되는(Undruggable) 표적은 신약개발 연구자들의 오랜 숙원이다. 질병과 연관된 유전자가 삼천 개에 이르는데 접근이 허용된 표적은 400개에 불과하다. 부작용과 내성도 문제이다.

항체는 뚱뚱해서 엔간해서는 세포 안으로 들어가지를 못 한다.
 
가능성이 보인다. 문제가 되는 단백질을 아예 쓰레기차에 태워 보낸다는 건 이러한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신박한 콘셉트다. 

물론 어려움도 많을 것이다. 세 명이 한 조가 되어 적진에 뛰어드는 형국이다. 각자의 표적을 잘 찾아 붙는 개별 능력은 고사하고 팀워크가 문제이다.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누가 먼저 쓰러져도 안되고 손을 놓쳐도 안된다. 일반적인 신약개발에서 이야기하는 물성, DMPK 등등의 이슈가 세 곱절 이상으로 어려워진다. 더구나 최적의 조합을 찾는 건 이효리와 비를 영입하여 그룹 '싹쓰리'를 결성한 유두래곤(유재석)이 와도 난감할 일이다.

유빅스팀은 기술을 찾고 갈고 닦으며 항암제 프로젝트들을 수단으로 삼아 개념 검증을 하는데 3년 여를 보냈다. 세간에서 생각하듯이 기존에 알려진 화합물(inhibitor)에 몸통(linker)와 꼬리(E3 ligase binder)를 뚝딱 단다고 해서 표적 단백질이 쉽게 분해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표적 단백질과 E3 ligase 간의 3차원 구조, 프로탁으로 인해 파생되는 새로운 효과, 앞서 언급한 물성과 DMPK 등등… 모든 것이 고스란히 시행착오와 노하우로 이어지게 된다.

새로운 플랫폼 기술도 꾸준히 찾고 있다. 이미 E3 ligase 중의 하나인 CRBN(cerebron)이라는 단백질과 직접 결합하는 프로탁(PROTAC) 기술을 개발하여 특허를 출원하였고, 기존에 알려진 VHL, IAP 이외에 완전히 새로운 E3 ligase를 이용한 프로탁 성과도 조금씩 나오고 있다. PROTAC 시장은 깃발을 내건 경쟁자들은 많이 있지만 아직 진시황은 나오지 않았다.  PROTAC의 신기술이 계속 나오고 고도화되면서 오늘의 강자가 내일의 강자라고 속단하기도 어렵다. 표적이 다양화되면서 다양한 국지전의 양상을 띨 수도 있기에 새로운 플랫폼을 찾는 노력은 멈출 수가 없다.

유빅스가 진열해 놓은 프로젝트는 어느덧 대여섯 개에 이르고, HK이노엔(CJ헬스케어)와의 공동연구, 네오이뮨텍에 대한 기술이전 등 사업개발 성과도 가시화되었다.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크게 보면 두 군데에 연구개발 진지를 구축하고 있다. 표적항암제와 면역항암제. 표적항암제는 항암 내성과 더불어 후성유전을 타깃하고 있다. 유전자 자체의 변화가 아니라 유전자의 발현, 즉 유전자가 단백질이 될지 말지 스위치를 켜고 끄는 단백질이 타깃이다. 단순한 따라잡기만으로는 경쟁력이 없고, 프로탁과 궁합이 잘 맞는 표적을 선정하여 블록버스터를 개발하겠다는 야심으로 읽힌다.

흥미로운 건 최근 스위스에 소재한 글로벌 바이오제약기업인 디바이오팜(Debiopharm)과 계약 체결한 공동연구이다.

디바이오팜의 항체-약물 결합 링커 기술이 유빅스의 표적단백질 분해 기술을 만난다.

유빅스는 자신의 단백질 분해 기술(TPD)에 디그래듀서(Degraducer®)라는 이름을 붙였다.

분해(Degradation) 촉진자(Inducer). 무게 중심을 쓰레기 딱지를 잘 붙이는데 두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디바이오팜의 입장에서는 요소기술에 대한 접근권을 갖게 되어 사업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유빅스의 입장에서는 기술의 개념 검증과 글로벌 시장에 데뷔할 기회를 갖게 된 셈이다. 무엇보다 ADC와 PROTAC의 만남은 첨단에 첨단을 더한 마이산과 같이 매력적인 산으로서, 국내 바이오벤처기업인 오름테라퓨틱도 열심히 오르고 있는 산이다.

프로탁은 글로벌시장에서 아비나스(Arvinas), C4 테라퓨틱스(C4 Therapeutics)를 필두로 머크, 제넨테크, 암젠 등 글로벌제약기업들도 뛰어들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분야이다. 국내에도 약 열 개의 바이오벤처기업들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프로탁은 포스트항체로 주목받고 있는 ADC(Antibody Drug Conjugate)와 유사한 점이 많다. 플랫폼이 계속 진화하면서 플랫폼 경쟁이 치열할 것이다. 전장이 넓어 승자 독식(Winner takes it all)보다는 작은 플랫폼들이 특정 영역에서 살아남을 가능성도 높다.

적응증이 넓어지면서 높은 확장성이 기대된다.

새로운 모달리티(Modality)로 검증이 되는 순간 시장잠재력은 현실이 될 것이고 쓰레기장은 노다지로 바뀔 것이다. 링커 양쪽으로 두 군데를 잡아야 하기에 두 개의 궁합이 중요하여, 플랫폼기술이 있다면 작은 기업들에게도 기회는 열려 있을 것이다.

이에 따라 국내 벤처기업과 제약사, 대기업들은 경쟁자가 아니라 협력자로서 시너지를 모색하는 방안을 강구해볼 수 있겠다. 유빅스와 우리나라 프로탁 전문기업들이 바꾸어 놓을 난지도의 모습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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