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8월2일 1주기 앞두고 설립된 임성기재단의 의미

한미약품그룹은 평생 신약 R&D를 신앙처럼 붙잡고 도전과 모험을 디즈니랜드처럼 즐겼던 창업주 故 임성기 회장의 숭고한 정신을 기려 이어가는 한편 의약학·생명공학 발전과 인류 건강에 대한 공헌을 목표로 공익법인 임성기재단(이사장 이관순)을 최근 설립했다. 혁신적인 연구 성과를 거둔 연구자들에게 시상하기 위한 것이다. 평소 무엇을 제일 좋아했는지, 무엇을 간절하게 하고 싶어했는지 제일 잘아는 유족이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진행하는 최우선 사업이라고 하니 'R&D, R&D'를 외치던 고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 고인의 이름으로 개최되는 시상식 현장은 또 얼마나 유쾌할지, 첫 수상자는 누구일지 벌써 궁금해 진다. 

임성기재단은 생명공학, 의약학 등의 분야에서 성과를 거둔 연구자에게 매년 '임성기연구자상'을 시상한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연구 결과로 신약개발에 기여한 연구자가 대상이며, 만 45세 미만 젊은 연구자 대상 2개 부문에는 '임성기 젊은연구자상'을 시상한다. 임성기 연구대상 상금은 3억원, 임성기 젊은연구자상 상금은 각각 5000만원이다. 재단은 이에 더해 생명공학과 의약학 분야의 다양한 학술대회를 지원해 학자간 교류와 연구 결과 확산을 도모하고, 치료제가 없는 희귀 질환 분야의 신약개발을 위해 연구비 지원도 할 계획이다. 고인 삶의 궤적에 참으로 딱맞는 사업이다.

임성기 회장은 1973년 6월 임성기제약회사(추후 한미약품으로 사명 변경)를 창업한 이래 출장 등 피치 못할 사정이 없는 한 어김없이 'AM 7:30 티 미팅'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예전 고인은 필자에게 "임원들이 많은데, 평소에 다 얼굴을 보기가 어렵잖아. 그래서 임원들을 돌아가며 만나서 가볍게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거지. 말그대로 티 미팅이야"라고 말해 준적이 있다. 고인에게는 가볍게 대화하는 티 미팅이었지만, 임원들은 차를 한잔 마실 뿐 긴장하는 회의였다. 한 임원은 "회장님이 이것저것 여쭤보시고, 여기에 답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내 일 전체를 바라보게 됩니다. 평범한 듯 비범하게 본질을 건드리는 질문이 이어지면 식은 땀이 등뒤로 흘렀다"며 웃었다.   

임성기재단 설립 주요 발기인 및 이사회 임원. 왼쪽부터 임종훈 한미헬스케어 대표, 조정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오종진 삼일회계법인 전무, 이희성 법무법인 화우 고문(전 식약청장),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 이관순 한미약품 부회장, 방영주 방앤옥컨설팅 대표(전 서울의대 교수), 김창수 중앙대학교 경영학부 교수(전 중앙대학교 총장), 천성관 김앤장 변호사(전 서울중앙지검장).
임성기재단 설립 주요 발기인 및 이사회 임원. 왼쪽부터 임종훈 한미헬스케어 대표, 조정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오종진 삼일회계법인 전무, 이희성 법무법인 화우 고문(전 식약청장),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 이관순 한미약품 부회장, 방영주 방앤옥컨설팅 대표(전 서울의대 교수), 김창수 중앙대학교 경영학부 교수(전 중앙대학교 총장), 천성관 김앤장 변호사(전 서울중앙지검장).

임 회장이 출장길에 오르는 날이면 한미약품 건물에 비로소 웃음소리가 넘쳐났다. 한미약품 사람은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다. 한 임원은 "회장님이 워낙 일의 진척 사항에 호기심이 많으셔서 수시로 알고 싶어하셨는데 회사를 비우셨으니 긴장감이 확 풀어졌죠"라고 말했다. 그러나 고인의 출장이 제공한 해방감은 늘 짧았다. 북경한미약품 출장은 금요일 출발해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돌아왔고, 어떤 때는 1박2일로 끝내기도 했다. 미국 출장도 업무를 마치면 곧바로 되돌아 와 대개 3박 5일 일정이었다. 고인의 삶은 열정적이었다.

하모니카를 잘 불어 교내 행사에서 직접 연주까지 했던 꿈 많았던 소년 임성기는 그의 이름을 딴 임성기약국을 했을 때나, 임성기제약회사를 세워 고군분투했을 때나, 한미약품을 통해 신약 R&D에 꽂혔을 때나 늘 '별난 삶'을 살았다. 30여년 기자로 지켜본 임성기 회장은 스스로도 말했던 '별난 사람'이었다. 그에게 별난 사람이란 '자신이 꿈꾸는 것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돋아나는 형형색색 욕망의 싹을 자르고 본질에 천착하는 것이었다. 말을 타고 적진으로 돌진하는 게 쉽지 스스로 욕망을 다스리며 삶을 채워 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제 임성기 회장의 티 미팅은 멈췄지만, 그가 일생 이루고 싶어했던 혁신신약 개발에 대한 소망은 한미약품의 멈추지 않는 자가 발전과 함께 이땅 곳곳에서 그와 같은 열망을 지닌 연구자들을 '신약 R&D를 사랑했던 남자, 임성기의 이름'으로 격려하는 것을 통해 이어지게 됐다. 작년 여름 건강상태가 썩 좋지 않은 때, 수십년 운전으로 그를 보필한 기사와 같이 승용차 안에서 물끄러미 서울 송파구 한미약품 건물을 바라보았던 임성기 회장의 1주기가 대략 스무 엿새 앞으로 다가왔다. 임성기 회장은 타계해 하늘의 별이된 것이 아니라, 바이오헬스 생태계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살아 움직이는 인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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