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영 교수 (성균관대 약학대학) 

"건보 DB, 병원 EMR에 '질병' 수준 기록된 이상반응을
알고리즘화 함으로써 타당도 수치를 크게 높일 수 있다"

허가를 받아 탄생한 신약(新藥)은 의약품 자격을 갖췄으되, 엄밀한 의미에서 미생이다. 임상시험 등 매우 제한된 조건을 만족시킨 신약은 의료현장에서 의사, 약사, 제약회사 관계자, 연구자, 환자들이 사용하면서 생산한 정보를 바탕으로 안전성과 유효성을 더 높여가며 명품 치료제로 완생되어 간다. 이 과정을 우리는 육약(育藥)이라 부르기로 한다. 육약을 향한 노력은 신약개발 못잖은 가치 있는 활동으로 제약바이오산업계 모든 관계자들의 인식 전환과 참여가 필요하다.

1. 프롤로그
2. 의약품은 제한된 조건 충족으로 태어난다 
3. 약물감시 활동이 의약품 가치를 높이려면 

신주영 교수
신주영 교수

필자가 캐나다 몬트리올의 맥길대학교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지내던 2015년 여름, 맥길대에서는 전세계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3주간의 약물역학(pharmacoepidemiology) 교육코스를 제공하여, 이에 참여할 수 있었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유럽에 위치한 글로벌 제약사에서 리얼월드데이터팀을 이끌고 있는 특강자의 발언이 있다. 

'전세계에서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아직도 신약을 대상으로 3000례의 이상사례를 수집하는 사용성적조사제도를 수행하고 있는데, 양질의 좋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고, 좋은 에비던스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인력과 인프라가 있는 두 나라에서 왜 아직도 옛날 제도를 고집하는지 모르겠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내가 한국에서 왔음을 모르고, 특강자가 편하게 한 발언인 것 같기도 했는데 용기를 내어 손을 들고,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한국에서도 오랫동안 사용성적조사를 포함한 재심사 제도를 현실화하기 위한 노력을 해오고 있고, 우리도 충분히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다. 신약 재심사제도는 1995년에 신약에 대한 이상반응 보고를 활성화하고, 임상시험에서 밝혀지지 않은 새로운 이상반응을 확인하기 위해서 도입한 것이었다. 다만, 현재는 이 제도를 좀 더 의미 있는 에비던스를 창출하기 위한 제도로 변화시키려는 분들이 많고, 빠른 시간 안에 개선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자발적 부작용보고제도의 단점과 정착되지 못한 것을 보완하고자, 우리나라에서는 1995년도부터 신약에 한하여 시판 후 약 4~6년까지 600~3000 증례를 보고하는 재심사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임상현장과 제약업계에서는 재심사 제도, 특히 사용성적조사제도에 대한 애로사항을 공통적으로 토로한다. 필자가 2016년부터 현재까지 식약처의 관련 용역연구과제를 수행하면서 수집한 인터뷰 결과 중 일부를 소개하고자 한다. 

임상 현장에서는 '바쁜데다가 의미도 없는 연구에 참여하고 싶지 않다' '너무 힘들게 데이터를 모으는데, 의미 있는 결과를 발견하기가 어렵다' 제약업계/CRO에서는 '사용성적조사는 가설이 없고, 대조군도 없고, 데이터를 모으고만 끝난다.'  '허가유지 수단 이외에는 활용도가 없어서 왜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본사에서 프로토콜 심사를 받을 때, 도대체 이 연구를 왜 하는지에 대한 목적이 없고, 규제일 뿐이라서 비판을 많이 받아 힘들다' 등의 의견을 줬다. 이중 관련 주제로 심포지엄을 진행하면서 들었던, 가장 기억에 남고, 깊이 공감하는 코멘트가 있다. 

'재심사 제도는 우리나라가 전국적으로 부작용보고자료 한 건도 잘 모으지 못하던 1995년, 즉 20여년도 훨씬 전에 도입한 제도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WHO기준 인구 백만명당 부작용보고건수로 전세계 1위, 그리고 1년에 20만건 이상의 부작용보고데이터를 전국의 28개 지역의약품안전센터, 병/의원, 약국, 소비자, 제약회사가 국가에 보고하고 있다. 자랑할 만한 국가이상반응데이터베이스를 운영하면서, 전국 단위에서 부작용보고데이터가 모이는 2020년대에, 왜 우리는, 유물과도 같은 사용성적조사를 아직도 고집하는가?' 

2016년 12월 미국 FDA 21세기 치유법안 통과 이후, 리얼월드데이터/에비던스를 의약품의 전주기 안전관리에 활용하고자 하는 전세계적인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신약재심사제도를 혁신적으로 바꾸어 나가고 있다. 일본 PMDA는 2017년 10월 GPSP 제도를 개정하여 시판후 데이터베이스 연구를 새로 추가하고, 이를 2018년 4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개정된 GPSP 제도하에, PMDA의 심사관과 제약사의 해당 제품 담당자가 협의하에 어떠한 방식으로 시판후 안전관리를 수행할지를 결정한다. 사용성적조사를 할 수도 있지만, 예수를 모으기 어렵다거나, 대조군을 두어 특정한 이상반응에 대한 가설검증연구가 필요한 경우에는 시판후 데이터베이스 연구를 수행할 수 있다. 

일본은 PMDA에 Regulatory science center를 설립하여 시판후 데이터베이스연구의 프로토콜을 심사하고, 데이터베이스를 관리할 팀과 인력을 정비하여 거버넌스를 구축하였다. 데이터베이스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이미 2011년 4월부터 일본 10개 지역의 23개 병원에서 환자 400만명의 의료정보를 수집하여 이를 '미드넷'이라고 명명하였다. 미드넷데이터베이스에는 제약업계의 재심사 관련 연구, 학계 연구자들의 접근이 가능하도록 인프라를 구축하였다.  

2019년 10월 필자는 일본 교토에서 진행된 아시아약물역학회에서 PMDA의 Regulatory science center의 활동에 대한 발표를 듣고, 미드넷 데이터베이스의 활용도, 그리고 시판후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여 재심사를 수행하는 구체적 사례가 몇 건 정도 있는지 질문했었다. 일본도 오랫동안 사용성적조사를 해왔기 때문에 익숙한 형태를 선호할 수 있고, 데이터베이스 연구를 수행할 만한 전문가의 부족, 그리고 이를 심사할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은 것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한 질문이었다. PMDA 담당자는, '약 2년 동안 10개~15개 정도의 product에서 미드넷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한 사례가 있고, 점점 관심이 커지고 있어 고무적이다' 라고 대답하였다. 일본의 제도변화과정과 데이터베이스 구축과정, 실제 제품에 적용한 사례는 2019년 국제약물역학회지(pharmacoepidemiology & drug safety)에 발표되어 전세계에 소개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9년 12월에 '신약 등의 재심사 업무 가이드라인'의 '4. 시판 후 조사' 하위에 '라. 시판 후 데이터베이스연구'가 '가. 사용성적조사'와 함께 병행되어 표기되면서, 국내에서도 사용성적조사 대신에,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한 '가설검증' 연구가 병행되어 수행될 만한 시초를 제공하였다. 하지만 다음해인 2020년 개정된 '신약 등 재심사 기준'에서는 데이터베이스 연구가 '특별조사'의 일환으로 하단에 위치되어, 일반적인 약물감시 활동의 일환으로 활용될 가능성은 떨어질 것으로 예측한다. 다만, 고정증례수 항목이 삭제되고 해당의약품의 적응증, 유병율 등의 근거자료를 토대로 조사대상자 수를 산출할 수 있도록 한 것은, 희귀질환 치료제의 재심사를 수행함에 있어서는 크게 개선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역학연구자로서 현재 사용성적조사의 개선을 주장하는 큰 이유는, 사용성적조사에서 산출할 수 있는 evidence가 약물감시의 궁극적 목적인 의약품과 중대한 이상반응의 관련성을 확증하고, 위해정보교류에 활용할 수 있는 정보로 사용되기에는 근거의 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사용성적조사는 일반적으로, '대조군'이 없고, '가설', '통계적 검증'이 없는 형태로, 시판 허가된 신약에 대해서 3000례의 증례를 수집해서 보고하는 일종의 surveillance 형태의 데이터이다. 사용성적조사로 나오는 결과 테이블을 보면, 해당 신약을 사용한 3000례 중 매우 흔한 부작용 몇 %, 보통으로 흔한 부작용 몇%, 드문 부작용 몇% 방식으로 결과를 보고하고 허가사항에 반영한다. 특정 의약품에 대한 이상반응 보고현황은 1년에 20만 건 이상,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으로 보고되는 이상반응자료를 통해서도 충분히 산출 가능한 것이다. 특히, 시판 직후의 신약을 '집중모니터링 대상 의약품'으로 지정한다면, 이상반응 수집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신약의 안전성을 평가하기 위해서 이왕의 큰 사회적 비용을 들이는 것이라면, 최소한 대조군이 있어야 하며, 중대한 이상반응을 1차 결과변수로 설정하고, 가설검증의 형태로 real-world data를 이용하여, 인과적 관련성(causality)을 보여주는 real-world evidence를 창출하는 형태로 진화해야 한다. 현재의 사용성적조사는 임상현장에서도, 제약업계에서도 힘들게 데이터를 모으지만, 의미 있는 결과를 발견하기가 어렵다. 사용성적조사에서 모으는 '증상'이 아닌, 우리나라의 건강보험데이터베이스, 병원 EMR데이터 등에 '질병' 수준으로 기록되는 이상반응을 조작적 정의를 통하여 알고리즘화하여 타당도 수치를 높일 수 있다. 의약품-이상반응간 인과적 관련성을 검증하기 위한 역학연구설계/교란요인 통제기법이 고도로 발전한 현재의 학문수준에 맞게 약물감시 제도도 빠르게 변화하여야 한다. 

많은 분들이 우리나라는 아직도 인적인 인프라와 교육이 부족하다고 말씀하신다. 때마침, 식약처에서는 2021년 '규제과학 인재양성 사업'을 시작하였고, 리얼월드데이터/에비던스를 포함하는 데이터사이언스 분야의 인재를 양성하고, 특히 규제기관과 제약업계의 재직자 대상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수행하도록 하고 있어, 올해 안에는 데이터베이스의 활용과 분석/설계 등 제약업계 대상의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이 제공될 것이다. 

필자가 포스닥 시절에 유럽에서 온 특강자에게 답변한대로,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도 약물감시 활동이 의약품 가치를 높이는 '육약'을 완성해주는 활동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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