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암 '신경내분비종양' 치료제 · 최초의 방사성의약품
식약처장, 긴급도입의약품 지정… 고액의 약값, 환자 '좌절'
원정치료 떠나는 현실… 코로나19로 이마저도 막혔다

 [현장] '루타테라' 식약처 신속 허가 촉구 기자회견

"정식 수입의약품으로 지정해주십시오, 건강보험에 적용될 수 있도록 급여로 지정해주십시오, 더 이상 비싼 약값으로 말미암아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죽을 날만 기다리는 국민이 되지 않게 해주십시오, 말도 통하지 않는 해외로 치료받으러 가게 하지 말아주십시오, 식약처에 루타테라의 신속 허가를 강력히 촉구합니다."

해외 원정치료와 고액 약값으로 고통 받고 있는 신경내분비종양 환자들과 가족들이 지난 5월 11일 오전 10시 절박한 마음에 마스크를 쓴 채 식약처 정문 앞에 모여 식약처장이 ‘긴급도입의약품’과 ‘희귀의약품’으로 지정한 신경내분비종양 최후의 치료제 ‘루타테라’에 대해 식약처가 신속하게 시판 허가해 줄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해외 원정치료와 고액 약값으로 고통 받고 있는 신경내분비종양 환자들과 가족들이
지난 5월 11일 오전 10시 절박한 마음에 마스크를 쓴 채 식약처 정문 앞에 모여
식약처장이 ‘긴급도입의약품’과 ‘희귀의약품’으로 지정한
신경내분비종양 최후의 치료제 ‘루타테라’에 대해 식약처가
신속하게 시판 허가해 줄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다시 불을 지피고 있는 가운데, 신경내분비종양 환자들이 전국 각지에서 충북 오송 식품의약품안전처 정문 앞으로 한 데 모였다. 

보건용 마스크를 쓴 채 "환자로서 치료받고 싶다, 환자가 감당할 수 있는 약 값으로 측정되길 간절히 원한다"는 절박한 마음이라는 게 환자들 입장이다. 오송생명과학단지를 관리하는 경찰이 예민한 반응을 보여도 환자들은 마이크를 내려놓지 않았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와 신경내분비종양환우회는 11일 오전 10시 식품의약품안전처 정문 앞에서 식약처를 향해 신경내분비종양 치료제 '루타테라'의 신속한 국내 시판허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앞서 루타테라는 국내 정식 허가되지 않은 임상시험 진행 중인 의약품이라는 이유로 '재난적 의료비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기도 했다. 현재는 불합리하다는 환자단체 지적으로 건보공단이 지원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이들이 앓는 '신경내분비종양'은 어떤 질환이며, 루타테라는 또 무엇인가.

신경내분비종양은 췌장·위·소장·대장 등 신경내분비세포에 생기는 희귀 암질환이다. 성장호르몬 방출억제호르몬인 '소마토스타틴' 수용체가 신경내분비종양 세포에 과발현돼 발생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황원재 신경내분비종양환우회 대표가 (신경내분비종양 환자·34세) 말레이시아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환자단체연합회, 황원재 대표)
황원재 신경내분비종양환우회 대표가 (신경내분비종양 환자·34세)
말레이시아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환자단체연합회, 황원재 대표)

애플의 CEO 스티븐잡스도 신경내분비종양과 싸웠다. 노바티스의 루타테라(성분명 루테튬 옥소도트레이오타이드)는 신경내분비종양 치료제다. 

최초의 방사성의약품으로 종양 부위만 표적해 방사선량을 증가시킬 수 있고, 종양 이외의 부위는 건드리지 않아 치료효과가 기존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에 비해 우수한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이를 인정해 지난 2018년 1월 '루타테라'를 위장과 췌장 등 신경내분비종양을 가진 성인 환자를 치료하는 방사성 의약품으로 승인했다. 

FDA가 방사성 의약품을 신경내분비종양 치료용으로 승인한 것은 루타테라가 처음이다. 

 

시판 허가를 받지 못한 치료제다. 긴급도입 제도면 가능하지 않은가.

노바티스 신경내분비종양치료제 (방사성의약품) '루타테라' (사진출처=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
노바티스 신경내분비종양치료제 (방사성의약품)
'루타테라' (사진출처=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

루타테라는 아직까지 시판 허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신경내분비종양 환자 100여 명은 2018년부터 유사한 성분의 방사선의약품 주사를 맞기 위해 말레이시아로 해외 원정치료를 다닌다.

루타테라 주사를 맞을 수 있는 프랑스·미국에서는 1회 주사에 최소 2600만원, 1사이클 4회 주사면 최소 1억400만원 이상의 약값을 부담해야 한다.

너무 비싸서 환자들은 1회 주사에 약 800만원 하는, 말레이시아로 간다.

루타테라가 2018년 1월 FDA 승인을 받고, 한국 환자들과 환우회는 신속한 국내 공급을 노바티스와 식약처에 요구했다. 하지만 노바티스가 1년 10개월 이상 식약처에 품목허가 신청을 하지 않았다.

식약처장은 100여 명의 환자들이 해외 원정치료를 떠나는 점을 감안, 2019년 11월 루타테라를 긴급도입의약품으로 지정했다. 이로써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해 구입 가능해졌다.

그러나 고액의 약값으로 극히 일부만 국내에서 구입, 치료를 받고 있고 여전히 환자들은 말레이시아로 해외 원정치료를 떠난다.

게다가 코로나19 판데믹으로 말레이시아가 입국을 전면 금지해 원정치료마저 불가능하게 됐다. 센터를 통해 고액의 루타테라 약값을 지불할 능력이 되지 않는 환자들은 치료를 포기해야 할 극단적 상황에 처하게 됐다.

 

"생사의 기로" 빠른 시판허가는 제약사와 정부의 직무

황원재 환우회 대표가 발언을 하고 있다.
황원재 환우회 대표가 발언을 하고 있다.

한국노바티스는 2019년 11월 경 식약처에 희귀의약품 지정과 국내 수입품목 허가 신청을 했고, 현재 허가심사가 진행 중이다.

식약처장은 우선 희귀의약품으로 지정했다. 이로 인해 노바티스는 3상 임상시험 실시를 조건으로 2상 임상시험 결과만으로 식약처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신속히 허가된다면 환자들은 1억400만원의 연간 약제비 중 실손의료보험 가입 시 연간 5000만원 이상 보장받고, 이외 약제비 중 3000만원까지 건보공단에서 재난적 의료비로 지원받을 수 있다. 환자는 약제비의 5%만 부담하면 된다.

이로 인해 환자의 '루타테라 접근권'을 위한 첫 관문은 '식약처의 신속한 시판 허가'라는 논리다.

만성골수성백혈병 표적치료제 '글리벡'은 노바티스가 미 FDA 승인일 이전인 2001년 4월 식약처에 수입품목 허가신청을 했고, 식약처는 이를 두 달 후인 2001년 6월에 허가했다.

당시 식약처의 빠른 시판 허가는 글리벡이 최초의 표적치료제로써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신약이라고 판단했고, 시판 허가 심사를 빠르게 진행할 수 있도록 한국노바티스가 행정절차에 적극적으로 협조했기 때문이라는 게 환자들의 설명.

환자들은 루타테라는 신경내분비종양 환자의 생명 연장과 삶의 질에 혁신적 변화를 가져왔지만, 해외 원정치료를 떠나는 현실을 몇 년째 방치하는 것은 정부당국과 노바티스의 직무유기라는 지적이다.

 

"아픈데 돈이 없어 치료 제대로 못 받아"… 접근성의 첫 관문, 식약처가 열어야

코로나19로 원정치료도 불가능해 비싼 약값을 주거나 능력이 안 되면,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현실에 환자들은 절망했다. 아픈데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 일을 겪게 된 것.

지난 3월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가 공공적 목적의 '예외적 급여신청'도 했지만 심평원은 재정 부담과 다국적사의 악용 우려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게 환자들의 주장.

식약처는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신경내분비종양 환자들이 더 이상 해외 원정치료와 고액 약값으로 고통받지 않도록 루타테라를 신속 시판 허가하고, 한국노바티스는 이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한편, 환자단체연합회와 환우회는 기자회견 직후 식약처 의약품안전국장을 만나 의견을 전하는 간담회 자리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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