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약제규제정책 스케쥴, 경제위기 반영해 다시 짜라

복지부가 약제규제정책을 신규 도입하는 것 만큼은 최소한 잠정 중단하는 것이 여러모로 바람직하다. 코로나19라는 돌발변수에 전국민 재난지원금까지 논의되는 마당에 이미 짜놓은 규제정책 도입 스케쥴에 복지부가 얽매일 필요는 없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 하더라도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으면 제도시행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19를 모른척 하고 규제정책 지연을 타박할 국회가 있을지 생각해보면, 시행중단 결정을 복지부가 머뭇거릴 하등의 이유를 찾아보기 어렵다.

사용량 증가나 가산기간 제한 등과 같이 이미 시행 중인 약가인하 제도를 통해서도 제약바이오산업계는 전체 건강보험 청구액의 5%에 달하는 약 1조원의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3월 23일 복지부가 입법예고한 요양급여기준 개정안에 따른 약제재평가 제도까지 시행을 예고하는 중이다. 이미 보험에 등재되어 있는 의약품을 재평가해 급여를 삭제하거나 약가를 인하할 수 있는 법적근거를 마련한 이 개정안이 올 7월부터 순차 진행될 경우 닥칠 직간접적 영향은 2중, 3중의 경영충격으로 확산될 수 있다. 제약바이오 산업계는 기 시행정책과 개정정책 모두를 틀어막아야 할 만큼의 위기상황이라고 주장한다.

당장 코로나19로 최대 46%까지 급감한 병원 내원환자 영향으로 산업계가 감내해야 할 직접적 매출타격은 약 1조8000억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또 중국이나 인도의 원료의약품 생산공장 폐쇄와 임상시험 지연 등으로 인한 원가상승 및 R&D 비용 추가지출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삼중고 위기라는 것이 산업계의 현실 인식이다. 기 시행정책은 물론이고 개정정책 역시 예고된 트랙 위에서 운영된다는 점을 모르지 않으나, 글로벌 전체로 확산되는 경제위기 상황이 오늘 내일 간단히 해결될 것 같지 않다는 점에서 정책결정의 특단이 요구된다.

또 복지부가 산업계의 호소를 단순 엄살로 받아들일 가능성 역시 경계한다. 그 동안 추진된 굵직한 약가제도의 변화 때마다 산업계가 절체절명의 위기를 호소해온 전력 때문이다. 그러나 약가제도 변화와 외생의 돌발변수가 총체적으로 연결된 것은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다. 거듭된 약가인하로 개별업체의 이익률은 이미 낮아진 상태이고 생산적 지출(R&D)을 당연시하는 기업구조가 오래전 정착됐다는 점에서 그때와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이번 만큼은 복지부가 '의약품'의 산업적 역할을 보려고 애쓰는 것이 국가적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합리적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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