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상업적 성과 거두며 개발사 성장동력으로

버리기도, 취하기도 난망한 계륵(鷄肋)으로 평가절하됐던 국산신약이 육즙 달콤한 소갈비의 위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1999년 7월15일 에스케이케미칼 선플라주가 대한민국 신약 1호가 되었을 때, 신약개발과 국산신약은 그야말로 희망의 상징이었다. IMF 외환위기 여파로 기업과 사회 전반이 낙담하던 1999년 선플라주는 연구개발(R&D)만이 살 길이라는 강한 메시지를 던졌고, 기업들은 온몸으로 이 메시지를 흡수했다. 2002년 국산신약으로 허가받은 뒤 이듬해 FDA 허가 장벽까지 넘은 LG화학(당시 LG생명과학) 항균제 팩티브정은 이같은 사회적 희망을 한껏 팽창시켰다.

그러나 더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곧 다될 줄로 믿었던 기업들은 신바람이 났고, 이후 더 많은 국산신약들을 출현시켰지만, 상업적 성공을 거둔 품목이 뒷받침되지 않으면서 국산신약은 존재하되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기형적 의약품'으로 그 위상이 추락했다. 상업적 성공에 이르지 못한 이유는 다양하게 거론됐다. 연구개발 과정에서 세금이 들어간 대부분 국산신약들은 일본과 다르게 의료시장에서 기특한 것일 뿐 수용되지 못했고, 더 근본적으로 미래 시장 환경 변화에 대한 예측과 마케팅 전략이 수반되지 못한 연구자 주도형 신약개발이 문제였다. 연구자들의 실력을 입증하는 형태의 신약개발은 한계에 직면했다. 이는 신약개발 회의론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실제 상업적 성공에 대해 전망이 어둡자 기업들이 허가를 유지하기 위한 '조건 충족' 등을 포기하거나 부작용 이슈 때문에 허가를 취하한 사례도 3건에 이른다. CJ 농구균예방백신 슈도박신(7호), 동화약품 간암치료제 밀리칸주(3호), 한미약품 폐암치료제 올리타정(27호)이 그렇다. 2017년 7월 화제를 모으며 국산신약 29호로 허가된 코오롱생명과학 골관절염치료제 인보사의 경우 허가 당국인 식약처가 위법을 저질렀다며 강제로 허가를 취소했다. 1987년 물질특허제도가 도입된 이래 본격화된 대한민국 신약개발 역사는 기업들의 적잖은 시행착오 위에 쓰여졌다. 새로운 장을 여는 도전에서 필연적인 통과의례였다. 

최근 상업적 성공 과제를 기업 스스로 풀어내고 있다. 2012년 6월 허가받은 LG화학 당뇨병치료제 제미글로(19호)와 복합제 등 패밀리는 작년 975억원의 매출(유비스트 통계)을 올렸다. 2010년 9월 ARB계 8번째 고혈압치료제로 허가받은 보령제약 카나브(15호)와 복합제 패밀리는 810억원의 매출을, 2018년 7월 허가받은 CJ헬스케어 '칼륨 경쟁적 위산분비억제제(P-CAB)' 케이캡(30호)는 작년 264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통산 내수 규모 기준으로 연간 매출 100억원 돌파를 블록버스터라고 부르는 상황이고보면 위 사례는 매우 성공적으로 볼 수 있다.

2007년 7월 허가받은 대원제약 골관절염치료제 펠루비(12호)가 289억원, 2013년 6월 허가받은 종근당 당뇨치료제 듀비에정(20호)이 20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2008년 10월 허가받은 일양약품 항궤양제 놀텍(14호)은 작년 315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이 지점에서 국산신약과 달리 개량신약의 트랙을 탄 한미약품의 성과도 비교해 짚어볼만하다. 개량신약 에소메졸(471억원), 복합제신약 아모잘탄(780억원)과 로수젯(862억원)도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한미약품의 개량신약 전략은 개발기간이 신약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고 비용이 적게 들어 많은 기업들의 롤모델이 되어 왔다.

산 정상에 이르는 길이 여러 갈래듯 현재 한국 기업들의 신약개발 도전은 다양한 루트에서 진행되고 있다. 개량신약으로 캐시카우를 만들어 가며 신약개발을 하는 기업군이 있는가하면, 신약개발 일변도에서 개량신약을 포섭해 가는 기업군들이 공존하고 있다. 내수를 겨냥해 개발됐던 국산 신약들이 시장을 글로벌로 넓히는 도전이 있는가하면, 아예 미국 FDA 관문을 통과해 내수는 물론 세계 시장을 직접 공략하겠다는 야심찬 시도가 늘고 있다. 개량신약이든, 국산신약이든 중요한 것은 20년간 무기력해 보였던 국산 신약 개발을 향한 도전과 노력들이 'R&D는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만들어내며 대한민국 신약개발사를 이끌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저축이 쌓여 새로운 기회를 만들듯 어제의 크고 작은 R&D들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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