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vs 산업, 대척점 뚜렷...접점 찾기 힘들어

[h-check] 선별급여 둘러싼 논점(1)=재정영향 분석

정부의 선별급여 추진계획이 발표된 이후 제약업계 불만의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이른바 '문재인케어'에서 제약계는 조금 비켜서 있는 듯 했는데, 막상 뚜껑이 열리자 상황이 급반전됐다. 바로 사전약가인하 때문이다. 히트뉴스는 여러차례 반복된 설명회와 토론에서도 해결은커녕 불만이 더 커지고 있는 선별급여를 둘러싼 논점을 다시 [h-check] 해본다.

다국적제약사 관계자를 대상으로 지난달 16일 개최한 설명회에서도 사전약가인하는 가장 뜨거운 이슈이자 불만사항이었다.
다국적제약사 관계자를 대상으로 지난달 16일 개최한 설명회에서도 사전약가인하는 가장 뜨거운 이슈이자 불만사항이었다.

16일 보건복지부와 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선별급여는 환자 접근성 강화차원에서 고안된 제도다. 기등재 약제 중 치료효과가 어느 정도 기대되지만 높은 비용에 비해 효과 정도가 분명하지 않아 비급여(환자전액본인부담)로 분류했던 적응증에 대해 본인부담률을 30%, 50%, 80%로 탄력 적용해서 급여권에서 관리하는 제도다.

정부가 지난해 8월 이런 방침을 발표했을 때만해도 급여범위 확대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제약계도 내심 기대감을 내비쳤다. 그런데 선별급여에도 필수급여와 동일하게 사전약가인하가 시행된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반응은 달라졌다.

정부와 제약계(주로 다국적제약사)의 대척점은 명확하다. 문제는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재정영향 분석=복지부와 심사평가원은 재정영향 분석을 통해 새로 선별급여를 적용받는 약제의 상한금액을 인하하겠다고 했다. 급여범위가 확대되면 사용량이 늘 것이기 때문에 추가 발생하는 재정(건보공단+환자 부담금)을 고려해 가격을 조정하는 게 당연하다는 논리다.

전적으로 재정적 측면에서 접근한 정부의 셈법이다. 여기에는 급여범위가 확대되면 '제약사도 사용량이 늘어나니까 나쁠 것 없지 않는냐'는 정서가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제약계 반응은 다르다. 우선 선별급여는 정부 시책에 의해 추진되는 것이다. 환자 부담은 늘어나지만 보험자 추가 부담은 상대적으로 적다. 그런데도 필수급여 때와 동일한 방식으로 약가를 사전인하하는 건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다국적제약사들은 최근 잇따른 설명회와 토론회에서 "환자 추가 부담까지 고려해 약가를 낮추는 건 보험자는 뒤로 빠지고 제약사에만 책임을 다하라는 요구"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는 뒤집어보면 사전인하를 하더라도 공단부담금을 기준으로 재정영향을 반영하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반면 정부는 보험자와 환자가 부담하는 비율만 달라질 뿐 약값(제약사 수입)에는 변화가 없기 때문에 달리 취급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서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 처럼 선별급여 사전약가인하 논란은 재정영향 분석에서 추가부담을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에 본질이 있는데, 여기서 파생된 불만과 요구도 잇따르고 있다.

선별급여, 신청주의에 반하나=논란도 있지만 우선은 선별급여와 제약사의 요구가 맞아 떨어지는 사례는 적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 제약사들이 우선순위 문제나 신규 적응증 확대약제 등이 뒷전으로 밀릴 것을 우려하는 걸 보면 기대는 분명 존재하는 것 같다.

문제는 원치않는 사례다. 실제 한 제약사 관계자는 "회사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급여기준을 직권으로 확대해놓고 약값을 깎으라고 요구하는 건 횡포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선별목록제도의 근간인 신청주의에 입각해서 봐도 타당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정부 측도 할말은 있다. 현행 규정상 제약사가 아닌 환자나 의사, 관련 단체 등도 얼만든지 급여범위를 확대해 달라고 제기할 수 있고, 복지부와 심사평가원은 이를 근거로 절차를 진행하면 된다. 다시 말해 신청주의에 반하지 않는다.

또다른 쟁점은 과도한 재정추계 우려와 예측하기 어려운 추가 수요다. 다른 제약사 관계자는 "그동안 정부가 보장성 강화계획을 수립하면서 추계한 재정영향과 실제 사용량 간에 차이가 많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렇게 예측되는 소요재정이 부풀려지거나 본인부담률이 100%에서 절반이나 그 미만으로 낮아졌을 때 늘어날 수 있는 추가 수요 부분 등을 사전약가인하에 정확히 담아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따라서 "사전적 조치가 아니라 사후평가를 통해 가격조정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 한번 인하된 가격이 현장에서 덜 사용됐다가 인상된 경우를 본 적이 없다. 더구나 정부 시책 사업인 점을 감안해 사후적인 방식으로 접근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약계를 의견수렴 대상에서 제외시킨 것도 불만 중 하나다. 자기 회사 제품이 포함된 리스트가 전문가 등에 전달돼 우선순위나 검토여부 등이 거론되는 데 정작 해당업체는 빠져 있었고, 그 목록조차 정부가 아닌 비선을 통해 입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또다른 제약사 관계자는 "기준비급여 약제를 5년간 단계적으로 사실상 전수 검토한다고 하는데 제약사 의견은 듣지도 않았다. 당장 가격인하 압박을 받을 수 있는 당사자인데 다 정해진 다음에서야 목록을 공개한다니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이는 검토대상 결정 측면보다는 정서적 측면의 불만이다. 그러나 정부는 여기에도 항변할 게 있다.

보완조치 실효성 의구심=제약계의 이런 분만들을 감안해 새로운 조치도 나왔다. 바로 '보험약제 연간 검토계획' 도입방안이다. 정부 측은 기준비급여 개선과 별개로 신규 등재나 급여기준 확대가 예상되는 약제에 대한 제약사 수요조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글로벌의약산업협회 관계자는 "첫 검토단계 의견수렴에서 배제시킨 데 대한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제도 추진과정에서 보완책으로 서둘러 마련한 게 이 방안"이라면서 "그러나 이 보완책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현 '의약품 비급여의 급여화 실행계획'을 추진하기 위해서도 약제기준부 인력을 보강해야 하는 등 품이 많이 들어간다. 그런데 5년간 단계적으로 막대한 업무부담을 유지하면서, 심사평가원이 추가적으로 사전 수요조사까지 해가면서 신규 건수를 해결할 인적·시간적·물적 여력이 있을 지 의구심이 생기는 건 너무 자연스러워 보인다.

다른 관계자는 "직접 들어본 적은 없지만 심사평가원도 처음 이 보완방안을 들었을 때 무척 난감해 했을 것 같다"고 말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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