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의 일이다. 아내는 내가 요즘 집에 일찍 들어온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주로 저녁약속은 일로 많이 엮이는게 보통인데 비슷한 연배의 지인들이 슬슬 사라져갔기 때문이다. 업계가 핫해진 것도 있지만 운이 좋은 탓에 회사생활을 계속하게 되었다. 다시 바빠지기 시작했다. 요즘은 나보다 젊은 친구들과 주로 어울린다. 그러다보니 체력이 딸리기도 한다. 그래도 감사할 일이다.

엊그제 식약처 민원설명회가 있다고 해서 가 보았다. 거기가서 뭘 배우겠다는 목적보다는 사람이 보고 싶었다. 그동안 뜸했던 업계의 친구들도, 아웅다웅하며 미운정 고운정 들게 된 식약처 공무원들도. 생각보다 아는 얼굴들이 많이 없었고 오랜만에 만난 후배들은 성숙해 보였으며(찌들어?) 심지어는 제법 노회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가장 특이한 변화라고 느낀 것은 참석자들의 대부분이 여성들이었다는 사실. 이 분야에서의 여초현상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이미 안 지는 오래전부터였으나 엊그제 목도한 여성 도미넌트 현상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세상이 바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우려보다는 긍정적인 쪽이 될 것이다. 검사도 입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은 모두 여자던데 검찰도 이런 환경이 도래하게 되면 개혁이 될까?

정보수집이나 이해력이 좀 떨어진 탓일수는 있겠지만 첨바법이 시행이 되면 지금의 약사법과 뭐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명확하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석에서 설명회가 끝나고 물어봤는데도 차이에 대한 명쾌한 답은 들을 수가 없었다. 중요한 것은 법제정이 아니라 운용의 묘라는 생각이다. 물론 하위규정이 채워져 애매모호한 내용들이 정리가 되면 좀 구체화되겠지만 첨바제품의 골자인 신속처리의 우선심사라는 것이 지금 약사법에 근거가 없어서 시행이 안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첨단바이오의약품 전주기 안전관리 체계확보를 위해 ‘허가심사 단계 자료강화’라는 슬라이드의 자료내용도 눈에 들어왔다.

10년전 신종플루 때였다. 신종플루백신은 엄청나게 짧은 시간에 허가를 받았다. 신속심사가 가능했던 것은 이전 자료들은 임상 때부터 생기는 대로 심사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시에 나는 신속하게 처리를, 심사를 하면 그렇게 빨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었다. 이런 것이 맞춤형이다. 결국 규정보다는 의지의 문제였던 것이다. 설명을 듣다가 잠시 이런 상상을 했다. 처음에는 야심차게 몇 번 이렇게 하다가 인보사같은 거 또 터져 용두사미되면 어떡하지하는.

그럴리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규정이 없어서 안된다는 말 듣는 것보다는 규정이 있어야, 시스템이 생겨야 의지를 더욱 효율적으로 강제할 수 있을 것이다. 왜 오래전에 막형께서도 이 이론을 설파하지 않으셨는가?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고. 지난 이십년 가까운 기간동안 한중일 가운데 우리나라가 그래도 유연성있는 제도를 통해서 실리를 챙긴 부분이 있었다. 이번 기회도 놓치지말고 우리 한반도에서 챙기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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