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 한국비엠아이 부사장

1980년대였다. 국내에서 개발되어 생산된  B형간염백신이 WHO를 통해 월드마켓에서  사용되는 길이 열렸다는 뉴스는 제약업계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관련자들은 자부심을 가졌다. 군사독재시절이었다. 어디에 기고를 하면서 'ㅇㅇ박스만도 못한 한국정치'라는 표현을 한 적이 있다. 당대 최고의 간염전문가가 WHO회의에서 발표한 논문을 읽으며 나도 저런 훌륭한 곳에서 발표를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어림도 없는 부질없는 꿈이었다. 곧 체념을 했다는 표현자체가 주제넘은 짓이었다.

WHO의 위상은 대단했다. 아니 대단하다고 생각을 했다. 뉴 밀레니엄이 왔을 즈음이었다. WHO는 간염백신 업체들을 심사하면서 국가 인허가기관인 식약청실사를 하고 1차에서 부적격판정을 내렸다. 이는 업체가 실사에서 통과를 하더라도 NRA(National Regulatory Agency)가 부적격판정을 받으면 업체자체가 동시에 실격이라는 의미였다. WHO의 위세는 대단했다. 이후 두번째 심사를 거쳐 식약청은  WHO실사를 통과했다.

한일월드컵이 열리던 해였다. 나는 WHO로부터 온 이메일을 받았다. 내용은 도쿄에서 열리는 WHO Hepatitis B 회의에서 'B형간염백신의 면역원성과 안전성'에 대한 발표연자로 나를 초청한다는 내용이었다. 잘못 들어온 메일이라고 생각했다. 며칠 지난 후 우연히 질병관리본부의 방역과장을 만나게 되었다.

준비 잘 하고 있지?

뭔 말이죠?

WHO에서 메일 오지 않았어? 내가 김xx에게 보내라고 했거든.

꿈은 이루어진다. 한일월드컵 때 유행하던 슬로건이 '꿈은 이루어진다'였는데 실제로 내겐 꿈이 현실이 된 것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나름 이 분야를 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던 중 WHO가 생각보다 대단한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WHO를 통해 의약품을 공급하는 제3세계업체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곳은 소위 남들이 부러워하는 이너서클이 아니었다. 우리가 목표를 너무 겸손하게 잡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요즘 WHO가 코로나대유행에 대해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WHO사무총장은 코로나유행으로 인한 여행과 교역을 금지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반복해서 취하면서 중국로비의 의심을 받기도 하고, 한국과 같은 취급을 하지 말라는 일본의 항의에 코로나 우려국 리스트에서 일본을 빼주기도 했다. 급기야 세계가 현실을 인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쌩뚱맞게 뒤늦게 팬데믹을 선포하기도 한다.

롤모델을, 목표를 상향조정해야 할 때가 온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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