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다른 규제 환경 고려해야”
“프레임 개발자에게 이득될 것 없어”

[Hit-Check] 식약처 관계자가 본 ‘식약처 패싱’

2015년부터 2019년 6월까지 5년 동안 식약처에 의약품 임상시험을 신청했다가 자진철회한 숫자는 297건에 달한다. 지난달 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명연 의원(자유한국당, 경기 안산시단원구갑)이 공개한 국정감사 자료에서 나온 수치다.

국내에서 의약품 임상시험을 추진했던 제약바이오업체 10곳 중 1곳이 국내 임상을 끝내 포기했다는 게 김 의원의 주장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명연 의원이 공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년 6월까지 5년 동안 식약처에 의약품 임상시험을 신청했다가 자진철회한 숫자가 297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약 개발에 필요한 기술과 물질을 확보한 제약바이오업체는 임상시험을 신청하는데 미국, 일본, 호주 등 해외에서는 의약품 임상시험 신청부터 ‘승인’까지 1달 정도 걸린다. 반면 한국 식약처에서는 1년 넘게 지체되기도 한다고 김 의원은 지적했다.

실제 최근 3년 동안 식약처의 임상 승인이 가장 늦게 떨어진 경우는 421일이었고, 임상1상을 승인받기까지 최대 303일 지체된 사례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히트뉴스는 이 같은 김 의원의 지적에 대해 심사 경험을 가진 식약처 관계자에게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식약처 패싱 지적, 어떻게 보나?

“FDA와 우리의 방식이 다르다. 미국은 임상시험계획(IND) 이전에 pre-IND, 심지어 pre-pre-IND도 있다. 미국에서 pre-IND에 제출할 자료 준비 기간만 1년에서 1년 반 정도 된다. 이번에 국회에 제출된 자료는 이런 수치는 제외한 채, 단순히 IND 기간만 30일로 명시된 것이다.

반면 식약처는 미국의 pre-IND 기간 등이 IND에 모두 포함돼 있다. 우리 역시 미국과 같이 pre-IND와 같은 ‘사전검토제’를 따로 마련하고 싶었다. 그러나 규제개혁위원회에서 불필요한 규제라는 이유를 들어 받아들이지 않았다.

FDA와 우리의 순수한 IND 기간만 놓고 비교한다면, 오히려 우리가 더 짧을 수도 있다. 미국과 같은 IND 기간만 놓고 보면, 우리는 15-20일이 될 수도 있다. 국회에 제출된 대로 우리나라 임상시험 승인 기간이 100일 이상이라는 건 pre-IND 등 아무런 접촉 없이 서류를 낸 시점부터 계산한 것이다.”

-기간을 제외하고라도, 한국이 호주나 미국과 비교해 1상 규제가 까다롭다는 업계 의견도 있는데?

“우리나라가 임상 1상에서 미국·호주보다 ‘품질’ 부분에 더 많은 자료를 요구하는 측면이 있다. 이는 각국의 법률 등 문화적 차이가 있다. 미국의 경우 제약사가 제조물책임법에 직접 당사자이고, 사보험 시스템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임상 1상이 제약사 중심으로 돌아간다.

반면 한국은 제조물책임법에서 제약사의 책임 소재가 다툼의 여지고 있고, 공보험 체제다. 때문에 임상 1상 등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대부분 책임은 식약처가 공격을 받을 소지가 크다. 또 우리나라 바이오벤처는 언제든 폐업이 가능하다. 결국 모든 책임은 식약처가 져야 할 수 있다.”

-최근 바이오벤처의 성장세가 무섭다. 식약처도 이에 맞춰 규제개혁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김정미 식약처 임상제도과 과장 등을 주축으로 호주 수준으로 임상시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식약처의 1상 절차가 까다로운 것을 단순한 (개발자 입장에서) '식약처 패싱'으로만 규정하는 것은 개발자에게도 그리 좋은 프레임은 아니다. 1상 절차가 까다롭다는 것은 안전성을 보는 정도의 차이라고 볼 수도 있다.”

-업계에선 같은 독성시험 결과를 한국 식약처와 FDA가 다르게 본 경험도 있다고 하더라. 다시 말해, FDA에선 문제 삼지 않은 부분을 식약처에서는 문제삼아 승인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독성실험 등 안전성 데이터를 전문적으로 볼 인력이 부족하다. 2004년을 기점으로 심사 체계가 많이 바뀌었다. FDA처럼 우리도 품질, 임상, 비임상 전문가로 나눠 심사가 이뤄져야 한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떻게 심사하고 있나?

“품질 심사자가 임상, 비임상도 함께 보고 있다. 우리도 FDA처럼 임상, 비임상, 품질이 나뉘어진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2004년 조직개편으로 지금과 같은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당시 개발자 입장을 고려해, 일명 원스탑 서비스로 한 과에서 비임상, 임상, 품질을 한 과에서 볼 수 있도록 조직을 개편한 것이다.

15년 전이야 신약개발 업체가 적어, 각 과에 2-3명의 전문인력으로도 가능했다. 그런데 심사해야 할 서류가 늘어나면서 한 과에서 전문적으로 심사가 이뤄지기 힘들어졌다. 육아휴직 등 인력 결원이 생기면 신입으로 대체하다 보니, 경험을 갖춘 전문인력 부족은 더욱 심해졌다.

개발자의 편의를 위한 원스탑 시스템은 현재 심사 전문성 하락으로 연결됐다. (현재 시스템으론) 전문성 있는 답변이 나오지 않으니, 업계 입장에서는 답답할 것이다.”

-업계 입장에서 임상 속도는 곧 돈으로 직결된다. 때문에 호주 등에서 임상을 수행해 개발기간를 줄이는 것은 개발자 입장에선 당연해 보이는데?

“개발자 입장에서 당연한 선택이다. 다만 조심스럽게 봐야 할 부분이 있다. 몇몇 바이오벤처는 같은 1상을 한국과 동시에 미국이나 영국에서 진행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 한국 1상 자료는 미국이나 영국에서도 인정해 준다. 사실 이는 일종의 보여주기 식이다. 미국과 영국의 임상을 투자, 마케팅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규제과학 측면에서 바이오벤처 업계 관계자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식약처에서 많은 신약개발자를 만났다. 개발자들은 항상 효과가 좋다고 한다. 그럼 내 입장에선 그만큼 독성을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오랜 기간 동안 개발자를 만났지만, 실제 허가로 이어진 약물은 별로 없다.

현재 신약 개발자의 목표는 ‘기술수출’, 우리의 목표는 의약품의 ‘허가’다. 지금 바이오생태계를 봤을 땐, 1, 2상까지 잘 진행돼 자본 축적은 전보다 더 잘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과연 이 파이프라인들이 ‘허가’ 절차까지 밟아 환자에게 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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