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책임에 무게둠으로써 내부고발 등 자발적 자정 유도

의약품 도매상, 법원, 서부지검리베이트전담반. (위에서부터)
의약품 도매상, 법원, 서부지검리베이트전담반. (위에서부터)

법원이 의약품 리베이트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최근 잇따라 나온 고등법원의 리베이트 사건 판결문을 분석해 보면, 리베이트의 주체를 의약품 도매상→제약회사로, 제약회사→영업사원으로 방향성을 좁혀 해석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그 동안 제약회사들은 병원납품을 진행하면서 방어적으로 작성한 도매상과의 거래약정서를 근거로 법률적 책임에서 벗어나려 했고, 영업사원은 회사 지시에 의한 불법행위라는 관점에서 접근해 왔다. 그러나 최근의 판결은 ▲도매상은 제약회사와 위탁매매 관계에 있고 ▲제약회사 영업사원과 도매상은 공모관계이며 ▲리베이트는 영업사원의 횡령에 해당한다고 봄으로써 기존 리베이트 사건과는 달리 최종적으로 영업사원 개인에게 법적책임의 무게를 뒀다.

먼저 법원은 의약품 도매상과 제약회사의 관계를 위탁매매 또는 이에 준하는 지위로 봤다. 즉, 도매상은 자기영업을 구현하는 주체적 입장이 아니라 제약회사로부터 위탁을 받아 의약품을 대신 매매해주는 공모의 대상이라는 것.

법원의 판결 근거를 보면, ①제약회사와 도매상 사이에 작성된 거래약정서에는 도매상이 공급받은 의약품에 대한 소유권 유보 조항과 함께, 공급받은 의약품의 관리·보관·판매·유통에 있어 도매상의 선관의무 조항이 있다.

②도매상으로서는 판매처나 판매조건에 대한 결정 권한이 없고, 특정 조건으로 공급받은 의약품을 다른 병원이나 도매상에 처분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③약가인하가 발생하면 제약회사에서는 인하된 약가의 차액 상당을 도매상에 보전해주고 반품 처리한다. 약가의 인하에 대한 위험을 제약회사가 부담하므로 타인의 계산에 의하여 자기명의로 매매하는 위탁매매의 구조에 부합한다 등이다.

이처럼 제약회사와 도매상이 위탁매매의 관계를 형성할 경우 제약회사가 도매상과의 거래약정서 작성 등을 활용해 불법 리베이트를 “최소한” 방조하거나 “우리는 몰랐다”고 항변할 수 있는 길이 막히게 된다. 의약품 제조·공급자의 책임을 엄중하게 보겠다는 신호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러면서도 법원은 제약회사를 “피해회사”의 지위로 인정한다는 점이다. 판결 대목을 보면 이렇다.

피해 회사의 지점장으로 근무하면서 피해 회사의 본사 임직원들 및 지점 소속 직원, 도매상과 공모하여, 피해 회사들의 자금을 횡령하여 이를 직접 또는 도매상을 통해 병원 관계인들에게 리베이트로 제공하였다 (중략) 도매상들이 사후할인 받은 부분을 도매상의 적법한 유통마진으로 볼 수 없는 (중략) 피해 회사가 도매상에게 이를 임의로 처분할 것을 허락하였거나, 형사상의 범죄인 리베이트로 사용할 용도로 준 것으로 볼 수 없다.

정리하면 개인간 이루어진 불법행위 공모로 인해 회사가 피해를 입었다는 것. 이는 법인격을 보호하는 방향의 해석이며 리베이트 행위 주체들에 대한 엄중한 경고의 의미로도 읽힌다.

따라서 법원은 리베이트에 관계된 회사 직원들에 ‘사회생활상 반복되는 업무 과정에서 위탁관계를 기반으로 보관하거나 점유한 타인의 재물을 횡령하거나 반환을 거부하는 경우’를 뜻하는 업무상 횡령죄를 인정했다. 영업을 위하여 자금이 병원에 건네졌다 하더라도 이를 회사자금을 횡령한 것으로 봄으로써 범죄행위에 가담한 개인의 책임범위를 엄격하게 규정했다.

더구나 리베이트 발생 이후 퇴사하였다 하더라도 해당 병원에 같은 조건으로 납품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 경우에는 리베이트 제공행위를 적극적으로 저지하지 않으면 퇴사 이후 후임들에 의해 제공된 리베이트에 대해서도 하나의 죄(포괄일죄)가 성립된다고 봐 공범으로 인정한 대목도 주목할만 하다. 이는 대법원 판결(2008년 7월 24일 선고 2008도3474)에 따른 것이다.

종합하면, 법원은 의약품 리베이트 사건에 있어서 의약품 제조·공급자인 제약회사의 역할과 책임을 더욱 엄격하게 보면서도 그에 따른 법적책임은 임직원들의 개인횡령으로 해석했는데, 이 같은 법리를 대법원이 어떻게 최종적으로 해석할지에 따라 업계에 미치는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제약관련 사건을 다루는 한 변호사는 “리베이트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엄중하게 보는 이 같은 판결이 확정되면 내부고발이나 리베이트 행위 거부 등 회사 내 자발적인 자정 움직임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며 “의약품 리베이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반영한 판결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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