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
통합과 인수로 풍부한 실탄을 마련하는 한미·레고켐이 갖는 함의

2024년 갑진년 새해도 벌써 첫 달이 지나고 둘째 달인 2월도 절반이나 흘러갔다. 국내 제약바이오업계의 시간도 빠르게 흐르고 있는 듯하다. 그만큼 굵직한 이슈와 이벤트들이 많아서인지 모르겠다.

시간을 조금만 앞당겨서 살펴보면 작년 하반기부터 국내 제약바이오업계는 굵직한 이슈와 이벤트가 현재진행형인 상태다. 종근당-노바티스 간 라이선스 아웃(L/O) 딜(Deal), 오름테라퓨틱-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 간 파이프라인 매각,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얀센바이오텍 간 L/O 딜, LG화학-리듬파마슈티컬스 간 L/O 딜 등 선급금(Upfront)만 1000억원이 넘는 대형 계약들이 4연속 체결되는 이례적인 상황이 펼쳐졌다.

이어 새해 들어서는 L/O 딜이 아닌 인수합병(M&A) 딜 소식까지 전해졌다. 한미그룹-OCI그룹 간 통합, 오리온그룹-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 인수 등은 지난 1월 우리나라 제약바이오업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제약바이오업계 사상 처음이나 다름없는 이종 산업 간의 M&A 딜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주인공이 국내 신약 개발을 대표하는 제약사(한미약품)와 바이오텍(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이기에 더더욱 관심을 끌었다.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이 체결한 선급금만 1000억원이 넘는 글로벌 제약사와의 계약이 비슷한 시기에 4건 연속으로 이어지고, M&A 자체가 드문 국내 제약바이오업계에 그것도 이종 산업 간의 M&A까지 벌어진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먼 훗날 지금 이 시기를 돌아봤을 때 우리는 작금의 시기를 어떻게 규정짓고 바라보고 있을지 자못 궁금해졌다.

한 바이오 전문 투자사 대표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국 제약사의 완성형은 한미약품이고, 한국 바이오텍의 완성형은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다. 이들의 M&A 딜은 'K제약바이오 1.0 시대의 종언'을 의미한다."

그간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은 자금력이 부족한 탓에 자체 개발하던 훌륭한 파이프라인(신약 후보물질)을 글로벌 상업화까지 끌고 가지 못하고 L/O하는 것에 만족하고는 했다. 현실이 그러했다. L/O를 전략적으로 선택한 기업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만약 이들 기업들이 자금력이 풍부했다면 글로벌 상업화까지 나아가기 위한 글로벌 임상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을 것 같다. 그만큼 신약 개발은 사이언스(Science)도 중요하지만, 자금력도 반드시 따라야 하는 필수적인 요소로 꼽힌다.

위에서 언급한 한미약품과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를 다시 살펴보자. 두 회사 모두 자력으로 혁신신약 파이프라인을 개발해 왔고, 그 경쟁력을 인정받아 수차례 글로벌 빅파마와 굵직한 L/O 딜을 성사시킨 경험을 갖고 있다. 신약 개발 기술력과 글로벌 경쟁력 측면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한다는 제약사와 바이오텍이라는 말에 쉽게 공감이 됐다.

한미그룹과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가 각각 '통합'과 '인수'라는 형태로 새 주인을 맞게 됐다. 그런 의미에서 바라본다면 새로운 오너십의 등장으로 읽혀진다. 다만 한미약품의 경우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미약품의 최대주주이자 한미그룹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의 최대주주가 기존 송영숙 회장(한미약품 창업자 고 임성기 회장의 배우자)에서 OCI그룹 지주사인 OCI홀딩스로 바뀌지만, OCI홀딩스의 1대주주에 한미그룹 임주현 사장(고 임성기 회장의 장녀)이 오르게 되기 때문에 한미약품에 대한 지배력에는 큰 변동이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도 이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오리온그룹이 오리온 자회사인 홍콩 팬오리온(Pan Orion Corp. Limited)을 통해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를 인수하는 구조인데, 지배구조 차원에서는 오너십의 변화가 있지만 중요한 부분은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 창업자인 김용주 대표 등 기존 경영진의 경영권을 온전히 보장했다는 점이다. 김 대표는 인수 발표 당시 "오리온은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가 지난 18년 동안 걸어온 길에 대한 깊은 신뢰를 보여 줬다"면서 "저를 포함한 경영진이 더 적극적으로 연구개발(R&D)을 추진하는데 있어 한 식구로서 지원하고 함께 힘을 모으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 주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자, 새로운 페이지를 써 내려갈 'K제약바이오 2.0 시대'는 어떠할까? 한미약품과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를 다시 한번 되짚어보자. 한미그룹은 OCI그룹과의 통합을 통해 신주 발행에 따른 2400억원에 달하는 현금이 유입된다. 한미사이언스로 2400억원의 현금이 꽂히는 가운데, 한미약품의 최대주주는 한미사이언스로 변동이 없다. 한미사이언스로 자금이 유입되는 데다 한미그룹 입장에서는 OCI그룹이라는 대규모 자금줄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한미약품의 작년 3분기말 별도기준 유동자산은 2980억원,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201억원이었다.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도 신주 발행을 통해 오리온그룹으로부터 4698억원의 자금을 조달한다.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의 작년 3분기말 별도기준 유동자산은 1437억원,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727억원이었다. K제약바이오 1.0 시대 종언의 상징인 한미그룹(한미약품)과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는 2.0 시대의 첫 페이지를 풍부한 R&D 자금을 확보한 채 쓸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정리해 보자면 K제약바이오 1.0 시대는 자금력이 부족한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이 뛰어난 사이언스와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혁신신약 개발에 나서 글로벌 L/O 딜까지 성사시킨 사례로 점철된 역사다. 2024년 갑진년 올해 맞이할 K제약바이오 2.0 시대의 시작은 풍족한 자금력에 기반해 글로벌 상업화까지 자력으로 도전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하는 시기가 될 듯하다. 게다가 올해는 유한양행과 HLB(에이치엘비) 등 미국 식품의약국(FDA) 신약 품목허가를 앞두고 있는 곳들도 있어 기대감도 고조되고 있다. 5년 뒤, 10년 후에 우리는 국내 제약바이오업계의 2024년을 어떻게 기록할지 재차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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