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유지' 등 기존 색채 그대로
마퇴본부사 편찬 등 '화합' 위한 정책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최근 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된 '마약퇴치운동본부(이하 마퇴본부)'와 관련한 일각의 '갈등설'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신중한 접근 태도를 이어가고 있다. 국고보조금 중단 소동에 이어 최근 마퇴본부장의 불명예 사퇴까지 이어진 상황에서 덩치를 키운 마퇴본부의 정체성은 유지하며, 회계 등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정체성을 살리겠다는 것이다.

채규한 마약안전기획관은 최근 식약처 전문기자단과 함께한 자리에서 지난 1월 31일 기타공공기관으로 거듭난 마퇴본부의 방향성과 대폭 늘어난 관련 예산 활용 문제 등의 방향성을 알렸다.

채 기획관에 따르면 마퇴본부 내 새로 늘어나는 지역별 재활센터 등 관련 예산과 행정 절차는 기타 공공기관의 범주에 맞춰 처리하되, 마퇴본부가 가진 정체성은 큰 변화를 주지 않을 방침이다. 마약류 관련 심각도가 높아지면서 정부가 주도해 예산을 추가하고 기타 공공기관으로 지정한 것으로, 일각에서 요구하는 지역 약국 약사 기반의 마퇴본부의 체질을 바꿀 이유는 없다는 게 채 기획관의 설명이다.

채 기획관은 "제도 변화에 있어 현장에서 동의하지 않으면 실행하기 어렵다"며 "약사회는 핵심 파트너"라고 밝혔다. 여기에 식약처는 마퇴본부 32년을 맞이해 '마퇴본부 32년사'를 발간하는 등의 작업도 진행할 예정이다.

그는 "그동안 마퇴본부를 위해 기여한 사람들과 지난 32년의 역사에 대한 기록을 통해 약사사회 정신을 계승하고, 마약 퇴치에 이바지한 바를 '기억하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며 "중독 재활자들도 함께할 수 있는 마약퇴치의 날로 거듭나고, 기억이 앞으로도 이어질 수 있도록 하려 한다"고 말했다.

식약처의 이같은 방향은 당초 지난해 어느 정도 예정됐던 사안이기도 하다. 실제 지난해 김영주 마약정책과장은 이같은 내용을 들며 공공기관화 재추진 방향을 설명한 바 있다.

여기에는 그만큼 깊은 사정도 있다. 한국마약퇴치본부는 지난 1992년 대한약사회 내 약사들의 주도로 이뤄졌다. 교육과 활동을 위한 초기 자금이 들어갔다. 이후 이사회가 점차 비대해지고 약사회 전현직 임원들을 비롯한 다양한 이가 참여하면서 덩치를 키웠다.

그러나 상담, 재활, 교육 등의 과정에는 이보다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나마 2000년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며 지원이 시작됐지만, 만성적인 기금 부족과 이로 인한 낮은 직원 급여, 지역 약사의 자원봉사 활동에 의존하는 구조는 쉽게 바뀌기 어려웠다. 결국 운영자금의 국고보조금은 이미 80% 이상에 달한다. 이 때문에 기타 공공기관 지정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사회가 이사장을 선출하고 이사회의 권한이 큰 것은 실제 공공기관 지정의 어려움으로 겪어온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정관 개정으로 명예직인 이사장인 만큼 이른바 약사들 내부에서 명망이 있는 사람에게 주는 '명예'의 의미가 강했었다. 이 때문에 이사회 구조를 개편하기도, 이사장을 식약처가 임명하기도 어려웠던 것은 관련 있는 이들에게는 알음알음 전해지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난 2022년 지역 13개 마퇴본부 중 4개가 국고보조금 지급을 두고 갈등이 본격화됐다. 13개 지부의 통폐합, 조직 내 이사장의 사무총장의 권한 설정, 후원금의 사용처 변경 등의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실제 식약처 감사관실에서 마퇴본부에 행정상 조치 통보 4건, 신분상 조치인 주의 1건, 재정상 조치인 환급 1건 등의 시정을 요구했다. 식약처는 효율적인 운영을 위한 것이며 실태 평가와 개선을 위한 조치라고 밝힌 반면, 약사회 측은 사실상 식약처가 돈줄을 잡고 사업과 마퇴본부를 식약처 마음대로 하려는 것 아니냐는 날 선 반응이 일었다.

마퇴본부를 식약처 산하 '원'의 개념으로 개편해 원장 중심의 조직 운영을 검토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약사사회의 반응은 더욱 격앙됐다. 앞서 나온 본부 상부의 구조를 감안하면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이기도 했다. 결국 식약처가 2023년 다시 한 번 공공기관화를 추진하면서 나온 이번 안과 2024년의 방향성을 보면 식약처가 운영 문제는 한 발 물러선 상태로, 식약처의 감사기준을 맞출 수 있는 어느 정도의 타협점을 찾은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마퇴본부 입장도 2022년과는 어느 정도 달라진 것이 사실이다. 이사장의 공백이 컸고, 새로 임명됐던 김필여 전 이사장도 불미스러운 문제로 결국 사퇴하면서 내부는 대행 체제로 움직이고 있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한 인사의 취임이 사실상 확정적인 가운데, 이번 문제로 마퇴본부 내부에서도 강경론만을 내세울 수 없다는 분위기도 있다는 것이 내부의 전언이다.

결국 한 발씩 어느 정도 물러선 상황에서 양측이 신중론으로 새로 구축할, 의약품안전원 이상의 규모를 가진 마퇴본부가 향후 문제 없이 자연스럽게 기타공공기관 아래서 호흡을 맞출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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