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암희귀질환사업단, '소아 고형암 정밀의료 사업 STREAM 프로그램'
"간신히 미허가 약 들여와도 약제비·보관 등 전적으로 환자 부담"
"소아, 환자 수·임상 증거 제한적… 전향적인 접근성 개선책 고려 필요"

(사진 왼쪽부터) 김미경 식품의약품안전처 임상정책과 사무관, 이연재 레코르다티코리아 대표, 환자 보호자, 고경남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 교수 / 사진=황재선 기자
(사진 왼쪽부터) 김미경 식품의약품안전처 임상정책과 사무관, 이연재 레코르다티코리아 대표, 환자 보호자, 고경남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 교수 / 사진=황재선 기자

"우리 아이가 소아 고형암으로 괴로워 하는 상황에서 정부 및 검색 포털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제가 직접 해외 제약사와 연락한 뒤, 주치의 도움을 받아 국내에 도입되지 않은 약을 들여오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이 조성한 기금으로 운영되는 '소아암희귀질환사업단'은 2일 서울대병원에서 '소아 고형암 정밀의료 사업 STREAM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국내 소아암 환자들의 임상 및 치료 실태를 논의하는 장을 마련했다. 'STREAM 프로그램'은 국내 소아 고형암 환자들의 유전체 정보를 수집해 추후 정확한 분자ㆍ병리학적 진단을 제공하고, 치료 타깃을 찾아 정밀의료를 실현하기 위해 운영되고 있는 사업이다.

이날 행사 패널토론에는 '신경모세포종'을 앓고 있는 소아 환자의 보호자가 패널로 자리했다. 이 보호자는 국내에 도입되지 않은 치료제를 들여오기 위해 직접 고군분투해 아이 치료에 활용하기까지의 여정을 소개했다. 신경모세포종은 신경세포가 악성 종양(암)이 되는 질환으로, 대표적인 소아암 중 하나다.

그는 "2019년 4월 둘째 아이가 3살 나이에 신경모세포종 진단을 받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상황 속에서 우리 아이를 위한 최적의 치료가 무엇일지 검색해봤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 관련 질환 사이트 등 국내 검색 포털을 통해서는 그 어떠한 정보도 찾을 수 없었다"며 "우연히 서울삼성병원 주치의로부터 '콰지바(성분 디누투시맙 베타)'라는 의약품이 해외에 허가돼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구글링을 통해서 이 약의 정보를 검색하고, 회사 개발사에 연락해 한국에서의 허가 계획 및 어떻게 한국으로 도입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 돌아오는 답은 언제가 될지 모르겠고, 한국 허가당국과 논의 후 임상을 진행해야 한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다행히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해 주문하면 약제를 받을 수 있다고 들었지만, 의사ㆍ간호사ㆍ환우회 대표가 아니므로 '소비자 직접 마케팅(Direct ConsumerㆍDTC)' 이슈로 더 이상 대화를 이어나갈 수 없다"면서 "주치의와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받았다"고 설명했다.

이 보호자는 다행히 추후 주치의들의 도움을 통해 서명 및 처방전을 받아, 복잡한 행정 처리 후 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해 약을 주문했다. 하지만 이 약은 치료 사이클에 사용할 수 있는 양인 1 바이알당 1700만원이었고, 모든 사이클을 돌리기에 필요한 금액을 계산한 결과 약 4억이라는 계산이 나왔다고 전했다.

그는 "약제를 사용하기 위한 부담은 경제적인 것을 떠나서도 모두 환자의 부담이었다. 고가 및 보관 온도가 2~8℃라는 이유로 즉각 가져가 달라는 얘기를 들었고, 아이스박스에 온도계를 꽂아 직접 의약품을 수령해 가정 내 냉장고에 알람 등을 설정한 뒤 아이 치료가 끝날 때까지 가슴을 졸이며 직접 보관했다"며 "두 바이알 3500만원 상당의 약제에 대한 안정성 책임은 모두 제가 지게 됐고, 정보를 얻고 의지할 곳은 치료 주치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이 보호자는 '감정적 호소'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다양한 성인 질환들은 환우회나 미디어 등을 통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과 달리, 소아들은 그럴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허가, 약가 문제 등 다양한 규제가 소아 환자들에게 큰 장벽으로 다가와 있다"며 "소아암이라는 특수 상황을 일반적 규제로 해석하지 말고, 아이들을 살리기 위한, 그들의 밝은 미래를 보장해주기 위한 제도적 보완 및 개편을 조심스럽게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고경남 서울아산병원 교수
고경남 서울아산병원 교수

고경남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 교수도 국내 소아 고형암 진단은 조금씩 개선되는 모양새를 보이지만, 치료의 영역은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고 교수는 "암 진단 면에서 많은 노력이 이어져 최근 2~3년 새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GS)이 보험급여화되는 등 분자진단 측면에서 미국이나 유럽을 따라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겼다"면서 "다만, 치료의 영역에서는 아직 장벽이 존재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즉, 진단은 병원 차원에서 경제적으로 부담해 검사를 진행하면 되는 등 환자에게 위해가 되는 부분이 적지만, 치료제를 구해 사용하는 부분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국내에 허가되지 않은 경우는 물론이고, 허가된 의약품이라도 소아를 대상으로 적응증을 획득하지 못하거나 급여되지 않은 경우에는 사용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고 교수는 "소아의 환자 수가 적다 보니, 제공되는 증거(evidence)들도 제한적인 상황"이라며 "이들의 특수한 환경을 고려해 다국적 제약사, 식약처, 임상의들이 함께 전향적으로 소아의 치료 접근성을 높일 수 있을지 고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연재 레코르다티코리아 대표
이연재 레코르다티코리아 대표

콰지바 개발사인 레코르다티코리아의 이연재 대표는 "제약사 입장에서도 국내에 미허가된 제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환자와 접촉할 수 있는 특정 직원을 제외한 사람이 하게 되면 바로 '약사법 위반'이 된다. 그리고 허가된 전문의약품이라고 할지라도 광고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며 "이렇게 제약사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없는 상황에서, 환자들은 인터넷에 노출된 잘못된 정보를 얻기도 한다. 이런 정보 접근성은 개선돼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일각에서는 '제약사도 이윤만을 바라보고 이런 상황을 방치한 것 아니냐'는 말을 하지만, 기업의 특성상 이윤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다"며 "우리를 비즈니스 시선보다는 환자 삶의 질을 위해 노력하는 파트너로 봐주셨으면 좋겠다. 환자를 위한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하나라도 바꿀 수 있다면 우리도 적극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정부 관계자로 참여한 김미경 식약처 임상정책과 사무관은 "재정적ㆍ제도적 문제에 대한 어려움에 더해 자신의 아이가 아프다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힘든 점이었을 것 같다"면서 "행정기관이 행정력으로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을 바꾸기 위해선 법을 바꾸고, 규정을 바꿔야 한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입장을 듣고 신중하게 결정할 수밖에 없다. 해외의 모범 사례, 국내 환자들이 겪고 있는 애로사항 및 개선 방안 등을 제시해주면 최선을 다해 반영할 수 있도록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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