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PAIGN | 약이 '독'이 되는 만성질환자를 그냥 둘 수 없다

다제약물 관리 범부처 참여 정식사업 전환해야
심각성이 담겨있는 송석찬 약사의 '상담수첩'

[끝까지HIT 8호] 다제약물 복용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만성질환을 1개 이상 보유하고 있으면서 '먹는 약(경구약)' 10개 이상을 60일 이상 복용하는 환자를 '다제약물 복용자'라고 부르는데, 고령 인구와 만성질환자 증가로 그 수는 2019년 81만5000명에서 2022년 117만5000명으로 크게 늘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노인의 부적절한 다약제 사용 관리 기준 마련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부적절한 다제약물을 복용한 노인의 경우 부적절 복용이 아닌 경우와 비교해 입원 비율은 1.32배, 응급실 방문 비율은 1.34배, 사망은 1.3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제약물 관리가 어려운 이유는 크게 의료공급자와 제도, 환자 요인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의료공급자 및 제도 관점에서 인센티브 제도가 미비하거나 복합질환자의 경우 진료과, 진료 의료기관 등 통합적 관리가 어려운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로 꼽힌다. 환자 관련 요인은 질환별로 다른 의사에게 처방 받고, 질환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다른 의료기관 방문으로 이어지며, 이 때 처방받는 복용 약이 많아지면 부작용이 높아질 수 있다는 인식이 부족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대한약사회는 2018년부터 다제약물 관리사업을 시작했다. 첫해인 2018년에는 6개월간 684명을 대상으로 99명의 자문약사가 참여하며 사업이 시작됐고, 2022년까지 누적 1만2331명에게 상담 서비스가 제공됐다.

다제약물 관리사업은 크게 2가지 모형으로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다. 지역사회 다제약물 관리사업과 병원 모형이 그것인데, 이는 기존 지역사회 다제약물 관리사업에서 발견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강구됐다.

지역사회 다제약물 관리사업에서 발견된 한계점은 결국 약사와 의사간 연계였다. 약사 상담 결과가 의사 진료시 검토되기가 힘들고, 복용약 조정이 이뤄지더라도 의료진 간 혹은 약사 간에도 정보가 공유되지 않아 지속성이 낮았다.

병원 모형은 이같은 다학제간 연계가 용이하다는 장점과 입원과 퇴원 간 약물 불일치 등 포괄적인 약물 검토 조정 효과성이 주목받으면서 2020년부터 개발이 추진됐다. 특히나 환자들 이동이 통제된 입원 환경은 복용약을 모두 점검하고 조정하기 수월하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혔다. 이같은 병원 모형은 현재 전국 48개 병원이 참여하고 있으며, 향후 시범사업에서는 입퇴원 모형 외에 외래 진료를 이용하는 만성질환자 노인의 등록, 약물 평가, 처방 조정, 외래 모니터링 등이 예정돼 있다.

송석찬 약사(사진 왼쪽)이 대면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송석찬 약사(사진 왼쪽)이 대면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바구니에 담긴 15개 약제 보며 다제약물 관리 필요성 절감"

[ 사업참여 전문가 인터뷰 ] 송석찬 약사(다제약물 관리사업 TF팀 간사)

경기도 시흥시에 살고 있는 A씨(83세)는 다제약물 관리사업에 참여하기 전까지 15개의 의약품을 처방받아 복용했다. A씨가 갖고 있는 질환은 △당뇨(아침, 저녁, 총 3개) △고혈압(아침, 2개) △고지혈증(아침, 2개) △위장약(아침, 저녁 총 6개) △지사제(1개) △두통 △변비 △갑상선 △전립선 등이었다.

송석찬 약사(경기도약사회 정책위원장, 다제약물 관리사업 TF팀 간사)은 A씨의 약 바구니를 보며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 다제약물 관리의 현실이라는 점을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노인 인구가 많은 경기도 특성상 다제약물 관리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생각해 사업 필요성을 적극 어필했고 참여에 나섰지만, 우리나라 노인들은 많은 의료기관에서 생각보다 많은 약물을 처방받아 복용하고 있다는 점을 새삼 느꼈습니다. 소위 많이 먹으면 위를 상하게 하는 약을 먹기 위해 위장약을 처방받는다는 사실과 그 약조차 여러 의료기관에서 처방된 의약품들을 보면서 다제약물 관리의 필요성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송석찬 약사는 먼저 유사한 효능의 의약품을 줄이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대면 상담 △비대면 상담(전화 등) △비대면 상담 △대면 상담으로 이어지는 4회차 약물관리 중 첫 대면 상담 이후 줄일 수 있는 의약품 중 위장약 관련 제품 줄이기에 나섰다.

"우선은 수산화알루미늄 복합제 중 가스 제거, 점막 보호, 위산 분비 억제제 등 수산화알루미늄에 과다 노출될 수 있는 제품들을 줄이기 시작했습니다. 수산화알루미늄은 과다 노출될 경우 노인성 치매, 비결절성 폐섬유증, 신장 질환이 있는 환자들은 신장 독성 등 중요한 피해가 유발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송 약사는 이어 말했다. "당장 줄일 수 있는 일반의약품 사용을 우선 중단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이미 수산화마그네슘 성분의 일반의약품을 2종 이상 복용하고 있었기에 그 부분과 함께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를 복용하고 있어 파모티딘, 니자티딘류 등 위산 분비 억제제 사용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습니다."

4차례 상담 후 A씨는 현재 약물을 복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3개 약물을 줄일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다는 송석찬 약사였지만, 의료기관과의 연계가 어려웠던 부분은 개선이 필요하다는 게 송 약사의 시각이다.

"첫 상담을 끝내고 2회차 전화 상담까지만 해도 환자 약물은 줄지 않았습니다. 의료기관에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것이 이유였습니다. '약사가 찾아와 약물을 줄이라' 정도의 설명을 하다 보니 의료기관에서도 '건강상에 큰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으니 일단 드셔보시라'는 답변이 왔다고 합니다."

송 약사는 그러면서 말을 이어갔다. "마침 지인 약사와 관계가 있는 의료기관이 있었던 터라 사업 취지와 약물 관리 필요성을 설명했고, 다행히도 우리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처방을 변경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려움은 또 남아 있었습니다. 약 갯수가 변하니 이제는 환자가 의문을 가졌습니다. 약 숫자를 의료기관의 성의로 받아들이는 노인들에게 '지난 번에는 4알이었는데 이번에는 2알'이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건강기능식품 복용에 따른 영양성분 과다 노출이었다. 송 약사는 노인들이 생각보다 많은 경로를 통해 건기식을 접하고 있으며, 이를 구분해야 하는 것도 어려움이라고 덧붙였다.

"노인들은 자식이나 형제자매 등 친인척은 물론이고 복지단체, 사회단체, 지방자치단체 등 구매한 제품 외에도 정말 많은 경로로 건기식을 접합니다. 따라서 마그네슘, 비타민 D, 비타민 K 등 과다 노출될 경우 심각한 위험 우려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정부기관에서 추적 가능한 처방의약품 외에 일반의약품, 건강기능식품 등 노인들은 다양한 약제·영양 성분에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송 약사는 이런 상황을 목격할 때마다 지역 보건의료에 깊게 관여할 수 있는 약사들이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고 말했다.

"의약품은 다다익선(多多益善)이 아닙니다. 모든 의약품, 건강기능식품이 만들어진 이유는 건강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 제품들이 잘못 어우러졌을 때는 복용하지 아니함만 못한 결과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국가사업 규모로 확대해야… 필요성 충분해

송석찬 약사는 다제약물 관리 시범사업이 정식사업으로 전환돼야 하고, 여러 상담 서비스를 접목할 수 있도록 범부처, 범정부적 과제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공지능(AI), 디지털 기술 등을 통해 약물관리 사업 효율성을 추구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바랄 것이 없겠지만, 당장은 우리가 파악할 수 없는 경로로 사용되는 의약품 및 건기식은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최신 기술들을 이용하는 것이 진입장벽일 수 있는 노인들을 위해 다제약물 관리사업의 정식사업 전환은 필수이며, 필수적인 교과목을 정해 약사들을 교육하고 현장에 내보낼 수 있는 제도적, 재정적인 지원이 절실합니다."

 

"좌절도 있지만… 내일도 다음해에도 방문 상담은 계속될 것"

송 약사의 상담이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다. 늦은 시간 약사 방문이 꺼려지는 환자, '혼자 계신 부모님이 혹시 사기를 당하지는 않을까'하는 무조건적인 의심을 보내는 객지의 자식들은 송 약사의 걸음을 무겁게 했다. 그렇지만 송 약사는 건강한 의약품 사용 환경 조성을 위해 맡은 바 소임을 다 한다는 포부를 밝혔다.

"건보공단 직원이 동행하지 않고 약사만 2명이 동행할 경우도 있습니다. 건보공단으로부터 상세한 안내를 받지 못한 어머니 같은 경우, 때로는 '늦은 시간에 남자 약사님이 방문하는 것을 꺼려서 안 왔으면 좋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객지에 사는 자제분이 부모로부터 약사의 방문 상담 이야기를 듣고는 '그거 사기일 수도 있다'고 거부하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남의 가정을 방문한다는 것은 서로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겠구나'하는 사실을 느낀 순간도 분명 있었습니다."

송 약사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상담을 통해 식생활 습관 개선, 운동 습관 교정, 처방약 조정 등을 함으로써 불편한 증상이 줄어들거나 오래된 병이 근본적으로 개선되는 것을 경험하시고는 '너무나 감사하다'고 하십니다. 또 입체적인 설명을 통해 복용약은 줄어들고, 약과 질병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건강 관리의 자기주도성을 부여하는 것 또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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