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나라와 민족을 생각한 백신의 아버지 목암  

고 목암 허영섭 회장
고 목암 허영섭 회장

휴대폰 사진첩을 훑어보며 정리를 하다 한 인물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2009년 세계를 공포로 내몰았던 신종플루 팬데믹 상황에 대한민국에게 예방백신을 선물하고, 자신은 홀연히 별이 된 혁신 기업가 '고 목암(牧岩) 허영섭 GC 녹십자 회장'이다. 몇해 전 경기도 용인 수지 본사에 들렀을 때 추모 공간에서 인상적인 장면 몇 장을 촬영했었다. 오늘(15일) 서거 14주기를 앞 두고 우연히 다시보게 되었는데, 강인한 기업가 이미지에 가려졌던 목암의 온화한 미소를 재발견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성경 시편, 42편 5절). 포스트잇에 직접 필사해 붙여 놓은 것으로 볼 때 기독교인이었던 목암에게 기업에 관한 고민이든, 건강에 관한 염려든 간에 크게 위안을 준 말씀이 아닐까 한다. '백신의 아버지'라고 평가받고, 큰 기업을 움직였던 목암이지만, 그도 예외없이 고뇌하는 인간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희망과 실망의 감정이 수시로 교차'하는 사람들에게 무릎꿇어 기도하는 목암이 공감되고, 위로를 받는다.

경기도 용인 수지 GC녹십자 본사 건물에 마련된 목암 추모 전시공간. 
경기도 용인 수지 GC녹십자 본사 건물에 마련된 목암 추모 전시공간. 

1941년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난 목암은 생명과학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에서 '만들기 힘들지만 꼭 있어야 할 의약품 개발'에 매진하며 필수의약품의 국산화를 이룩하기 위해 소명감을 갖고 끊임없이 도전했다. B형간염백신·유행성출혈열백신·수두백신·유전자재조합 혈우병치료제, 혈액분획제제·백신은 모두 목암이 밤낮으로 갈아놓은 토양 위에서 결실을 맺은 성과물들이다. 하지만 이같은 성공들은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고 대부분 어려움을 극복하며 도전한 끝에 얻은 것들이다.

기업문화를 고민하며 한땀한땀 생각을 정리해 적고, 선친의 추모예배 기도문을 쓴 목암은 나라와 민족을 먼저 생각한 인물이었다. '먼지가 쌓여도 이 땅에 쌓이게 해야 한다'는 것은 그의 굳건한 믿음이었다. 1983년 세계 3번째로 개발에 성공한 B형간염백신을 통해 얻은 이익으로 '목암생명공학연구소'(現 목암생명과학연구소)를 설립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다른 곳에 투자하면 돈이 더 된다'는 주변 반대를 물리치고 민간 연구재단을 설립한 것은 우리 사회에 무엇인가 쌓이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삶은 통틀어보면 대개 쓸만한 추억이지만, 잘라서 보면 어렵고 힘겨운 것인데 '우연히 만난 목암의 사진들'은 '다 괜찮을 것'이라고 위안을 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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