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상비약 시민네트워크 30일 출범
'편의점 상비약' 수요 조사 결과 발표
반대 측 "논의의 장 끌어내기 위한 목적"

새로울 것 없는 '상비약 확대' 이슈가 지난해부터 최근 들어 이슈의 전면으로 나서기 위한 채비를 하는 모양새다. 작년 편의점업계를 시작으로 이번에는 시민사회단체까지 나서서 확대를 촉구하고 있다. 다만 약업계 내에서는 '동어 반복'이 이어지고 있다는 데서 이해당사자들의 '논의의 장' 진입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 아니겠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바른사회시민회의, 서울시보건협회,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미래건강네트워크, 행복교육누리, 그린헬스코리아, 한국공공복지연구소, 고려대 공공정책연구소, 소비자공익네트워크 등 9개 단체로 구성된 '안전상비약 시민네트워크(이하 상비약 네트워크)'는 30일 오전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출범과 함께 상비약 네트워크가 자체 수행한 '편의점 상비약 수요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상비약 네트워크 측의 핵심 주장은 2가지로 요약된다. '상비약의 품목 확대'와 '의약품 편의성'이다.

 

"국민들 품목 확대 원해…논의의 장 필요"
오남용? "정부·전문가 단체, 안전성 체계 먼저 만들어야"

먼저 품목 확대의 경우 이들이 공개한 수요조사를 보면 조사 대상 1000명 중 응답자의 94.4%가 편의점 상비약을 알고 있으며, 구입 경험이 있다는 이는 71.5%였다. 구입 경험이 있는 사람 중 96.8%가 "편의점에서 상비약 구입이 편리하다"고 답했다. 구입 이유로는 "급하게 약이 필요해서"라는 답이 68.8%(그 외 접근성 23.2%, 기타 8%) 나왔다. 또 구입 경험이 있는 응답자의 62.1%는 "품목 수가 부족해 확대가 필요하다"고 응답했고, 확대 및 개선 방향에서는 △새 효능군 추가 60.7% △새로운 제형 추가 46.6% △기존 제품 변경 및 추가 36.6% 등으로 새 약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특히 소아용 해열진통제는 자녀가 있는 30~40대가, 파스는 중장년층 남성이, 감기약은 30대 강원도 회사원 등이 접근성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 중 제산제가 70.9%, 화상치료제 52.7%, 소아용 감기약 41.4%, 소아용 소화제 33.7% 등을 원했으며, 액상파우치는 추가 제형에 높게 선정되는 등 시대와 수요를 반영한 제품을 추가해달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상비약 네트워크 측은 "편의점에서 약을 못 산 이유는 '편의점에 약이 없거나 안전상비약에 해당되지 않아서'로 과거 조사와 동일하게 상당히 높은 답변이 나타났다"며 "안전상비약 도입 10년을 맞이한 시점에서 소비자의 패러다임을 고려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상비약 도입 초기와 비교해 (국민) 인지도가 매우 높아졌다. 현시점에서 본 제도의 획기적 변화의 여건은 충분히 조성됐다. 우선적으로 규정에 맞는 수만큼 품목을 확대하도록 개선안을 논의하고, 판매 채널인 편의점에 대한 장기 관리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며 소비자·판매자·제약사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과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이와 함께 상비약은 이른바 '건강 자기 결정권'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며, 상비약 자체를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만듦과 동시에 정부와 전문가 단체가 안전성을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부작용 문제에서도 "(상비약 확대와 관련해) 약이 문제인지 외부적인 요인인지 기준을 정해야 한다"며 "상비약은 (공공심야) 약국의 대체재가 아닌 약국이 문 닫는 시간의 '보완재'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2018년 이후 지정심의위가 열리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무자격자 판매에 대해서도 지금 교육을 하고 있는 기관이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법 개정이 필요한 약 배송과 약 자판기와 달리, 2012년 5월 이후 계속 운영되고 있고 20개 이내로 하겠다는 상비약 확대 시도를 논의의 장으로 끌어내야 한다"며 "(상비약의) 편의성은 공감하고 있으니, 안전성 강화는 정보를 제공하고 판매자 모니터링을 비롯해 부작용 및 불편 사례 지원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안전성 확보를 위해 국가는 좀 더 체계적인 역할을 확보해야 한다"며 "보건복지부는 약사법 시행규칙에 규정된 내용이 준수될 수 있도록 정기적인 실태조사와 상비약 심의위의 운영 재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상비약 네트워크가 30일 상비약에 대한 국민 인식조사 결과인 '편의점 상비약 수요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사진=이우진 기자
상비약 네트워크가 30일 상비약에 대한 국민 인식조사 결과인 '편의점 상비약 수요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사진=이우진 기자

 

'해묵은 논쟁, 새로운 것 없는 주장'…이야기 왜 계속 나오나

다만 이들의 주장은 기존 제도와는 다른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지난 2012년 11월 도입된 '안전상비약 판매제도'는 현행 약사법 제44조 및 시행규칙 제20조에 따라 20개 품목 이내로 범위를 지정할 수 있게 돼 있다. 현재 판매되는 품목은 13개에 불과하므로 소비자에게 필요한 품목을 늘리기에는 문제가 없다는 게 찬성 의견을 내는 이들의 입장이다.

특히 품목 확대와 관련한 논의는 보건복지부가 지난 2017년 1월 '안전상비의약품 제도 개선방안 검토를 위한 기초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불붙었던 바 있다. 당시 조사에 참여한 국민(전국 19세 이상 소비자 1389명, 판매자 중 283명) 중 49.9%는 "현재 판매 중인 수준이 적정하다"는 의견을, 43.4%는 "품목 수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은 바 있다. 당시 추가 희망 품목에는 상처 및 화상치료를 위한 연고와 인공누액, 알레르기약, 지사제 및 제산제 등이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후 복지부는 이같은 결과를 기반으로 의약 단체와 시민단체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를 구성해 2018년 8월까지 총 6차례의 논의를 벌였다. 그 결과 제산제 및 지사제 효능군의 제품 추가를 검토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찬성과 반대 측이 극명히 갈렸다.

반대 입장을 보이던 대표적 단체인 대한약사회는 복지부에 품목 확대보다는 약국의 공공성을 높이기 위한 이른바 '공공심야약국 운영' 등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약사회 측 모 인사가 회의 도중 이른바 자해 소동을 벌이기도 하는 등 극렬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을 비롯한 일부 시민단체 등은 '품목 확대 반대는 약사들의 직역 이기주의라며 국민의 약품 접근성을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결국 정부는 상비약 품목을 확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2022년 8월 전국편의점가맹점주협의회가 상비약 판매 품목 확대를 담은 제언을 국회 토론회에서 공개하는 등 지난해와 올해 들어 품목 확대 요구가 늘어나고 있지만, 새로울 것은 마땅히 없는 상황이라는 게 반대 측의 인식이다.

특히 이날 행사를 주최한 소비자공익네트워크와 서울시보건협회는 2011년과 2017년 임원급 인사가 상비약 지정 혹은 확대 논의에 참여한 바 있다. 또 바른사회시민회의는 지난 2011년 상비약 약국 외 판매를 위해 구성한 시민사회단체 모임인 '가정상비약 약국 외 판매를 위한 시민연대'에 주축으로 참여한 단체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약업계에서는 '상비약 확대'라는 새롭지 않은 논의가 나온 것은 결국 확대를 원하는 측이 이를 반대하는 쪽을 논쟁을 벌이기 위한 '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 약업계 관계자는 "(이날 확대 찬성 쪽에서 언급한) 논의 내용이 2011년 그리고 확대 논의가 있던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며 "그런데도 산업계부터 시민단체까지 이를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지금의 논의를 부각시켜 반대 측이 이 논의에 뛰어들게 하려는 가능성이 보인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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