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초고가 킴리아와 저가 아세트아미노펜의 공존

세상은 확실히 요지경 속이 맞는 듯하다. 지금껏 의약품을 둘러싼 걱정은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며 킴리아나 졸겐스마와 같은 초고가 혁신의약품을 건강보험에 등재시켜 급여할 수 있는지와 같은 유형들이었다. 다시 말해, 혁신 의약품들의 환자접근성 강화와 건강보험 재정건전성 간 균형점 모색에 관한 고민들이 주류였다. 이런 점 비춰보면, 감기약 수급안정화를 위한 조제용 아세트아미노펜 650mg 보험 상한금액 인상은 마치 매일 등교 잘하던 모범생이 사고를 친 것처럼 낯선 장면이다. 정당 51원에서 70원으로, 여기에 1년 가산으로 최고 90원까지 인상해 줄테니 해당 제약사들은 공급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부디 최선을 다해달라는 당국의 간절함이 '정책 인센티브'로 나타난 현상이다.

맥락이 다를수도 있지만, 보건복지부를 비롯해 식품의약품안전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근래 매우 긴밀하게 움직여 영풍제약의 '영풍클로미펜시트르산염정 상한금액'을 종전 103원에서 256원으로 인상 조정했다. 문제를 감지한 지 두달 만에 신속히 처리됐다. 배란장애에 의한 불임증의 배란유도에 쓰이는 이 약은 국내서 영풍제약 한 곳이 생산하고 있는데, 채산성이 낮아 생산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동일성분 대체약제가 없는 상황이라서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 됐고, 이로 인해 의료현장은 수급 불안을 겪었다. 당국은 제약회사에게 상한금액 조정신청서를 신속하게 제출하도록 한 뒤 신속하게 인상 처리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퇴장방지의약품 목록을 정례적으로 공개하고 있는데, 2023년 2월 기준으로 '시장에서 사라져서 안될 의약품 등'은 638품목이다. 2000년 3월 도입된 퇴장방지의약품관리제도는 환자진료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경제성이 없어 생산또는 수입을 기피하는 약제로, 생산또는 수입원가의 보전이 필요한 약제를 관리하기위한 것이다. 생산원가를 보전하거나 요양기관이 이 의약품을 사용할 경우 사용장려금을 지급해 환자진료에 필수적인 의약품의 퇴장을 방지함으로써 필수의약품생산 및 사용을 활성화하려는 목적이 있다. 매우 흥미롭게도 이 목록에 ①삼남아세트아미노펜정300mg ②알파아세트아미노펜정500mg ③세리콘정(아세트아미노펜500mg) ④삼익아세트아미노펜정500mg ⑤삼남아세트아미노펜정500mg이 포함돼 있다. 의료현장의 2만 가까운 의약품 가운데 아세트아미노펜의 위치란 필요하지만, 경제성은 없는 계륵이었던 셈이다.  

그런가 하면 희귀필수의약품이란 이름으로 511품목도 목록으로 정리돼 관리되고 있다. 약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제약회사의 이익 보전이 어려워 치료현장에 투입되기 어려운 의약품들이다.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에 따르면 2022년 12월 기준으로 511품목 가운데서도 100여종이 넘는 의약품이 국내에 안정적으로 공급되지 않고 있다.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는 2022년 총 50억원의 예산을 확보해 국가필수의약품의 안정적 공급 방안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의 주요 내용은 국내서 생신되지 않아 자급화가 우선적으로 필요한 국가필수의약품(원료의약품 또는 완제의약품) 중 매년 2품목 이상씩 총 5년간 10품목이상에 대해 '국내 제품화를 위한 생산 기술 개발'이 목표다. 국내 자급기술개발이 우선 필요한 후보 목록들을 검토해 1단계사업기간 2022~2023년 기술개발 대상 후보 의약품을 선정했다.  

우리는 지난 3년 코로나19나, 불안한 국제정세에 제약주권 혹은 의약품주권을 육안으로 확인했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지만 백신 접종은 백신 개발국가, 경제력이 있는 나라 순이라는 것을 잔인하게 지켜봤다. 그런가 하면, 평소 멀쩡했던 원료의약품이나 완제의약품도 코로나19 등에 의해 갑자기 공급망이 불안정해면 속수무책이 되는 현장도 보았다. "국가필수의약품이란 질병관리, 방사는 방재 등 보건의료 상 필수적이나 시장 기능만으로는 안정적 공급이 어려운 의약품으로 보건복지부장관과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해 지정하는 의약품을 말한다." (약사법 제2조 제19호). 그런데 이 같은 필수의약품들은 목록에 들어 있든, 없든 상관없이 국제정세나 국제 공중보건 위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특히 사회가 모두 킴리아, 졸겐스마에만 심취해 있는 사이 '아닌 밤중에 강도처럼 예고없이 다가오'는 것이다.

진료 현장에 필요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의약품을 국가가 창고에 쟁여 놓고 완벽하게 관리할 수 없다 해도, 관리능력을 최대치로 끌어 올려야 하는 것은 정책 당국의 지속적 과제다. 현재 대한민국 의약품 정책의 큰 흐름은 재평가를 통한 의약품 시장 다이어트며, 이를 통해 틈나는대로 보험재정 여력을 키우려 하고 있다. 제네릭 의약품 가격은 당국이 '호시탐탐 눈여겨 보는 절약 포인트'다. 일상화 된 허가당국의 임상재평가, 보험당국의 급여재평가는 그 존재대로 필요성이 있다. 다만, 이렇게 해서 절감되는 보험재정은 혁신의약품 등재는 물론 경제성을 잃은 희귀필수의약품, 퇴장방지의약품 등이 진료현장에서 기능하도록 하는데도 고루 쓰여야 한다. 바이러스는 다시 오고, 백신과 치료제가 필요하며, 해열제 아세트아미노펜도 빼놓을 수 없다. 문제는 정책의 균형인데, 완제 아세트아미노펜 가격인상을 할 때 원료의약품도 함께 고려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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