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아도 문제 없다는데, 발목 잡는 '안전성 평가'
'ESG 문제 풀어야' 목소리 높지만... 평가기준 완화 필요

세계 시장의 흐름은 '건강한 제약을 위한 건강한 환경'을 외치고 있다. 최근에는 이미 친환경 플라스틱을 1차 포장으로 활용하는 제품까지 등장했다.

업계는 말한다. 우리의 방향성은 당국의 의지에 달렸다고. 이미 현실로 다가온 친환경 의약품과 그 사이 규제를 함께 이야기해본다.

① 아스텔라스는 왜 새로운 시도를 했나

② ESG와 규제

"생각 안해봤습니다. 그런 고민을 할 만한 곳이 업계에서 많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하려고 해도 쉽지가 않아요. 그 것을 하려면 기본적인 자료 외에도 해야 하는 게 좀 복합해서….“

세계 제약바이오업계가 ESG와 지속가능한 경영의 일환으로 약을 둘러싼 포장을 바꾸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이같은 과정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점이 충분함에도 정작 현실적으로는 이를 해결하기에는 규제 등이 발목을 잡는다는 것이다.

당국도 기준자료 등 필요서류가 있다면 고려 가능하지만 안전성 등을 입증해야 한다는 반응이어서 업계가 '진짜 친환경'을 이루기에는 고민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반론도 고개를 든다.

 

소재기업서도 '가능하다' 지만

안전성 평가 등 제약사 부담에 "생각 안해봤다"

국내 제약바이오업계는 과연 약과 가장 가까운 친환경에 성공할 수 있을까. 업계 밖에서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소재기업 업체 관계자는 "바이오매스 성분 플라스틱이라고 해도 용기의 기밀성이나 차광 등에서는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최근 몇 년 동안은 석유 소재와 친환경 소재 제품의 가격 차이도 크지 않을 만큼 줄어든 이상 교체는 이론상으로는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소재기업의 긍정적인 평가와는 달리 제약업계관 계자의 대답은 "생각해보지 않았다"라는 답변으로 돌아왔다.

업계 관계자의 말을 모아보면 의약품 허가 과정에서 제품과 접촉하는 1차 용기는 허가기준에 부합해야 하고, 허가 과정에 맞는다고 해도 처음 쓰이는 소재인 이상 이를 평가할 수 있는 안전성 기준 관련 자료를 추가 제출할 확률이 높다.

똑같은 폴리에틸렌(PE) 재료라고 해도 장기보관에도 의약품의 유효성과 안정성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같은 품목 변경을 하나하나 할 경우 적게는 수백 많게는 수천 개의 품목을 가진 국내사가 이를 쉽게 할 수 있겠냐는 것이 그들의 말이다.

한 상위제약사 관계자는 '용기를 바꾸는 게 단순히 쉬운 과정이 아니다. 각 품목에 맞춰 허가를 변경해야 하는데 단순히 필요서류 외에 추가로 (허가당국이) 요청할 서류가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며 "소재에 따라 다를 수는 있지만 완전히 (친환경 소재가) 기존 제품을 대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지금 파는 제품을 허가변경까지 하면서 용기만 바꾸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전했다.

그는 하나의 예시를 들었다. 용기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36개월짜리 의약품이 있다고 하면 허가변경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36개월동안 제품이 안전한 지를 확인하는 자료를 기존 용기관련 허가서류와 함께 제출해야 한다.

해당 용기의 안정성과 기밀성, 차광성 등을 일정 기간마다 평가해야 하는 데 약에 힘을 들이기도 어려운 시간에 용기까지 바꿔가면서, 그 것도 수백 수천 품목을 하는 것이 쉽겠냐는 게 이어지는 설명이다.

또다른 관계자 역시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의 일이라고 전한다. 제네릭 경쟁이 강한 우리 나라에서 무엇보다 하나의 제품을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제품을 내야 하는데, 이런 번거로운 절차를 거치기는 상위사 급의 인력이 없으면 힘들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제약사의 경우 상대적으로 1차 포장에는 차마 도전하지 못하고 박스 등 의약품의 2차 포장 혹은 의약품 이외의 상황에 친환경 제품을 쓸 수밖에 없다고 항변한다.

 

업계 약점 'ESG' 위해 필요하다 지적도

평가기준 완화 필요한가

업계 일각에서는 다른 측면에서 봤을 때 그 변화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환경부의 환경성 평가체계 가이드라인에서 찾을 수 있다.

환경부는 해당 가이드라인에서 향후 환경성 평가가 환경책임과 투자의 영역에서 이점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가이드라인을 보면 '금융기관이 환경책임투자를 함에 있어 환경관리 성과가 우수한 기업의 범위를 결정할 때 본 평가체계의 평가 결과를 자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내용과 함께 당국이 다양한 금융기관으로부터 의견수렴을 거쳐 지속적으로 환경성 평가체계를 고도화할 수 있도록 정기 협의체를 구성 및 운영하면서 환경책임투자 금융상품이 활발하게 개발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또 환경성 평가체계 내 기본 부문 내 온실가스, 대기오염물질, 용수, 폐기물 등을 포함한 기준을 총 100점으로 설정하되 최대 10점을 주는 '가점부문'을 포함했는데 여기에는 환경경영시스템(ISO 14001) 인증과 함께 저탄소 제품 등을 인증하는 데에 따른 가점을 최대 10점까지 부과하도록 했다. 

현행 환경성 평가 가이드라인(출처=환경부)
현행 환경성 평가 가이드라인(출처=환경부)

정부를 시작으로 ESG 평가 과정에서 환경 여부가 중요한 작용을 하고 있는 상황, 특히 국내 제약업계의 환경 부문 점수가 높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산을 통한 추가점수 획득은 향후 투자가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은 이 때문에 나온다.

다만 업계 내에서도 식약처가 이같은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주장은 이어진다. 앞서 나온 관계자들 역시 같은 주장을 던진다.

한 중소제약사 관계자는 "식약처가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과연 시장에서 환경 문제에 얼마나 큰 관심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며 "단순히 환경이 아니고 의약품 허가와도 직결된 사안인데 이에 따른 고민은 잘 하지 않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다른 중소제약사 관계자는 "식약처 관련 가이드라인에도 이같은 내용은 서류를 내면 된다는 사항 외에 명확한 지침이 부족하다"며 "해외에서는 이미 제품이 나오는 데 그 때는 서류만으로 (용기에) 문제가 없었다고 말할지 궁금하다. 그렇지 않다면 세계적으로 친환경 정책을 하는 회사들이 오히려 비환경적 소재로 약통을 바꿔야 하는 불상사도 있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현재 의약품의 1차 포장과 관련한 규정은 '의약품 등의 안전에 관한 규칙' 내 별표1에 있는 의약품제조 및 품질관리기준(GMP)에 담겨 있다.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는 문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이 지난 2015년 발간한 '의약품 용기 및 포장 덕합성 평가 가이드라인'이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내복용 정제와 경구용 캡슐제(경질, 연질 젤라틴)에는 각각 △빛과 수증기 보호성 △용기 및 마개 시스템의 구성 성분과의 상호작용을 할 가능성이 낮은 고형 제형(Case 3C) △일반적으로 산접 식품첨가제 규정을 적절히 참조하면 충분한 수준(Case 4s) △거의 고려되지 않는 사항의 성능(Case 3d) 등을 규정하고 있다.

또 1차 포장에는 제안한 용기 및 마개 시스템이 사용 용도에 적합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료 외에 신청서에는 포장 구성 성분의 일관성을 보증하기 위한 품질관리 방법을 기술하도록 하고 있다.

또 제품과의 배합 적합성과 제품에 제공된 보호등급의 관점에서 용기 및 마개시스템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안정성 시험을 수행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나와 있다. 다만 안전성과 관련해 포장체계와 구성 성분의 모니터를 위한 방법을 일반화하고 있지는 않다.

이를 모아서 정리를 해보면 업계가 말했던 '기준에 충족하는 PE 등의 성분이라고 해도 안정성 시험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는 말과 함께 안정성의 기준을, 자체 평가기준에 맞춰 평가한 뒤 식약당국에 제공해야 할 가능성을 높이 볼 수밖에 없다는 말이 얼추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

식약처 측은 이와 관련 '친환경 수지의 경우 어떻게 허가를 받을 수 있느냐'는 질의에 "포장재질에 특별한 제한을 두고 있지는 않다"면서도 "기존에 사용한 적이 없는 포장자재의 경우 안전성 및 유효성 확인을 위해 규정에서 정하고 있는 안전성시험 자료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이같은 답변에 역으로 묻는다. 해외에서 인정을 받은 의약품 수준이 갖춰지는 등 어느 정도 안전성을 입증할 수 있다면 이 역시 '긍정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실제 유럽 시장에서도 오는 2030년까지 친환경 플라스틱 사용 비중을 끌어올리기 위한 비전을 발표했지만 의약품 분야는 예외를 적용하는 등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규제 당국 입장에서는 고려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지만 이를 위한 선제적인 대처 역시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상위제약사 관계자는 "당연히 식약처 입장에서는 국내에 도입되지 않았던 새로운 포장자재를 조심스럽게 봐야 할 수밖에 없다"며 "다만 최근에 선진화된 규제라는 대의명분을 가진 식약처가 정작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시작된 지속경영 가능 문제에 주도적으로 움직일 필요도 있다"고 조심스레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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