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미국 바이오 패권주의에 맞설 우리들의 냉정

2015년, 한미약품이 울린 '희망의 종소리'를 출발 신호 삼아 너나없이 후다닥 질주하며 소란스러웠던 K바이오생태계가 새벽처럼 고요해졌다. '나 또한 글로벌 빅파마들에게 신약개발 기술을 얼마든 판매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신명을 내던 사람들이 SNS 공간에서마저 잠잠해 졌다. 만선 고깃배의 입항이 멈춘 항구처럼 돈이 돌지 않는 바이오생태계에도 쓸쓸함이 깃들었다.  

① 자신들의 사업적 진전을 겸손으로 포장해 은근히 자랑하거나 ② 같이 고생한 사람들의 노고를 언급하는 식으로 투자받은 사실을 살짝 언플하거나 ③ 나만 알게된 사실을 혼자 간직하기에는 아까워 참을 수 없다는 듯 공유하거나 ④ 과잉 해석된 임상시험 결과 등 문제  사안들에 대해 자신들의 견해를 펼쳐가며 집단지성으로 방향을 찾아가던 바이오인들의 신바람이 잦아들었다. 

근래 바이오생태계를 둘러싼 환경은 좋지 않다. 주가 하락과 함께 기술특례상장 등 IPO 입구마저 좁아지는데다, 믿었던 바이오기업들의 성과 부진으로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바뀌면서 투자심리 또한 악화돼 상장 바이오기업은 물론 비상장 기업까지 다같이 어려움에 빠졌다. M&A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투자를 꺼리는 VC들이 돈이 없는 게 아니라 투자할 곳이 없다고 공공연히 말할 정도로 생태계는 무기력하다.

무기력한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반전의 드라마를 써야 할텐데, 그러려면 스타 기업의 탄생은 반드시 필요하다. 스타기업은 어떻게 태어날 수 있나. 힌트는 '메이드 인 코리아' 코로나19 백신 스카이코비원 개발 과정에서 엿볼 수 있다.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은 5일 '넥스트 팬데믹 준비를 위한 글로벌 파트너십'이라는 주제의 GBC 기조강연에서 10년 걸릴 백신개발을 2년만에 입축 개발에 성공한 사례를 간증했다.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대표는 5일 열린 2022년 글로벌 바이오 콘퍼런스(Global Bio Conference, GBC) 기조강연에서 '넥스트 팬데믹 준비를 위한 글로벌 파트너십'을 주제로 20여 분간 발표했다.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대표는 5일 열린 2022년 글로벌 바이오 콘퍼런스(Global Bio Conference, GBC) 기조강연에서 '넥스트 팬데믹 준비를 위한 글로벌 파트너십'을 주제로 20여 분간 발표했다.

최 부회장의 분석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백신 개발은 백신 회사의 미션이자, 자존심이어서 SK바이오사이언스은 '총력전'을 펼쳤다. 진행중이던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R&D 인력의 90% 이상을 투입했다. 회사가 갖고 있는 '생산 역량이라는 자원'을 중심에 놓고, 갖지 못한 자원을 세계 곳곳에서 찾아내 연결하며 해결을 모색했다. 그 결과 2020년 5월 개발에 나서 2022년 2월 식약처에서 허가를 받았다.

꽤나 근사해보이는 말, 글로벌-국내 파트너십은 디테일로 들어가면 매사, 매순간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극복해야할 도전과제 그 차제다. 워싱턴 대학 IPD는 항원 디자인 및 검증을, GSK는 면역증강제 제공을, 아스트라제네카는 비교 임상 대조약을 제공했다. 기술적 난관에 부딪힐 때는 게이츠재단 사내 GHDC 산하 네트워크의 도움을 받았고, 국제백신연구소는 글로벌 임상을 수행했다. 

그런가하면 국내에서는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범정부 지원위원회가 만들어져 리드했고, 국회는 팬데믹 대응에 필요한 법률을 제정했다.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은 혈청분석을, 질병관리청은 스카이코비원 구매 결정을, 식약처는 세계보건기구와 협력해 비교 임상법 기준을 마련했다. 신속한 임상수행, 품목허가도 가이드 했다. 고려대학교와 국내 5개 임상기관은 임상을 주도했다. 눈길 가는 대목은 또 있다. 글로벌 협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외교부가 문제를 적극 해결했다는 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묻게 된다. 순발력과 공고한 협력체제는 팬데믹에서만 작동돼야 하느냐는 것이다. 반도체, 배터리, 그리고 바이오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끌어나갈 산업이라고 한다면 '스카이코비원' 개발 과정의 파트너십은 팬데믹이 아닌 상황에서도 작동돼야 한다. 외교부, 복지부, 식약처, 질병관리청 등 행정부와 국회가 국익을 위해 유기적으로 맞물릴 때 어떤 효율을 내는지 스카이코비원은 상징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K바이오산업계는 지금이 팬데믹 상황이다. 앞서 말한대로 K바이오생태계는 돈가뭄으로 지금 진행해야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임상시험에 주춤거리며 기회를 잃고 있는데, 미국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보여줬던 자국우선주의를 모든 바이오의약품 제조 생산에서 재현하고 있다. 우리의 대응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처럼 더 분명해져야 한다. 지금은 미국 바이오정책이 유발한 팬데믹 상황이니까 말이다.

저작권자 © 히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