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특수' 옛말... 건기식 시장 확대서 약국 소외
개인맞춤형 건기식도 대형마트·백화점에 매장 열어
"어렵다고 손 놓으면 영영 잃어버릴 것" 자성 목소리도

코로나 재유행, 고물가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에도 추석이 다가왔다.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추석이라 명절 분위기 내기가 어렵다 하지만, 유통가와 제조사는 명절 이벤트로 분위기 띄우기에 고군분투하고 있다. 

약국의 추석 특수는 옛말이 됐다. 명절을 앞두고 가족과 친지를 위해 약국에서 건강기능식품을 구매하는 사람을 찾기 쉽지 않다. 급성장하고 있는 건기식 시장 규모를 생각했을 때, 약국의 소외 현상은 약국 입장에서 더욱 씁쓸하다. 

 

건기식 시장 연 5조원 돌파...소분판매 허용되며 또 한번 전기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가 집계한 건기식 시장 규모는 2019년 4조6699억원, 2020년 4조9273억원, 2021년 5조454억원을 기록했다. 식약처가 집계한 건강기능식품 국내 시장규모는 2011년부터 2020년까지 10년 간 연평균 10.9% 성장률을 보였다. 국내총생산실적 역시 최근 10년 간 매해 10.4%씩 성장했다.  

출처: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 홈페이지
출처: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 홈페이지

매년 10%씩 커지는 '노다지'에 제약사, 식품업체, 신생 업체들이 대거 뛰어들었다. 이중에는 '약사가 만든', '의사와 상담하는', '전문가가 권해주는' 등 전문성을 강조한 브랜드가 적지 않았다. 실제 약국 유통에 주력한 한 브랜드는 약국 한 켠에 영양사 테이블을 두어 소비자가 영양사와 상담을 거쳐 제품을 구매하도록 해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정부가 건강기능식품 소분·포장 판매를 허용하면서 시장은 또 한번 변화를 맞이했다. 생산된 포장 그대로를 판매해야 했던 규제를 완화해 정부는 업체를 선정해 '개인맞춤형 건강기능식품 추천 판매' 시범사업을 허용했다. 

식약처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개인맞춤형 건강기능식품 소분·포장 판매 시범사업 매장 수는 86개로, 시범사업 선정 업체는 △풀무원건강생활 △아모레퍼시픽 △한국암웨이 △한국허벌라이프 △빅썸 △코스맥스엔비티 △모노랩스 △한국야쿠르트 △한풍네이처팜 △녹십자웰빙 △누리텔레콤 △다원에이치앤비 △바이오일레븐 △온누리H&C △유니바이오 △투비콘 등이다.

이들 업체는 대부분 대중과 접점이 많은 곳에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다. 개인맞춤형 건기식 1호점 '풀무원건강생활 올가홀푸드 방이점'을 시작으로 모노랩스 '아이엠'은 이마트에, PHC '모해'는 백화점NC에 입점했다. 풀무원은 최근 올가홀푸드 매장을 통해 개인맞춤형 건기식 '퍼팩' 서비스를 선보였다. 빅썸 '핏타민'은 AI를 활용해 개인 맞춤형 건강기능식품을 추천한다고 홍보하고 있다. 

출처:요기요 횸페이지
출처:요기요 횸페이지

이밖에 맞춤형건기식은 아니지만 배달업체도 건기식 시장에 뛰어들었다. 요기요는 이번달부터 농협홍삼 '한삼인'을 주문하는 즉시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도입했다. 서비스 론칭 시기를 9월로 잡은 것은 추석선물 구매 수요를 노린 것으로 해석된다.

시장 커지는데 약국건기식만 고요...유통망으로 '시들'

반면 약국 건기식 매대에 큰 변화는 없다시피 하다. 제약사 몇 곳과 '약국 전용 건기식'을 표방하는 브랜드가 영업 중이다. 최근에는 광동제약이 약국전용 건기식브랜드 '프리미엄 포커싱'을 출시했다. 대원제약 '장대원'도 약국 전용제품을 표방했다. 

아울러 △그린스토어 △네이처스팜 △더팜 △비타민하우스 △셀메드 △J&H바이오 △DRS 등이 약국 유통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다. TV광고를 내세운 대형 건기식은 브랜드는 약국 유통과 일반 유통과의 차별점을 두어 용량이나 포장을 달리한 '약국 전용제품'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 

이마트에 매장을 연 개인맞춤형 건강기능식품 브랜드 아이엠.
이마트에 매장을 연 개인맞춤형 건강기능식품 브랜드 아이엠.

약국 건기식 시장이 외형을 유지하고 있지만, 질적인 면에서 하락세에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듯 하다. 건기식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세, 하루가 멀다하고 출시되는 건기식 신제품, 대형자본의 유입 등 외부적 조건이 모두 약국을 비껴가고 있기 때문이다. 약사들은 주요 원인으로 온라인몰 활성화를 지목한다. 

서울의 한 약사는 "온라인에서 가격을 할인해 판매하고 1+1, 사은품 증정 등 프로모션을 적극 활용하면서 순식간에 약국 경쟁력이 없어졌다"며 "아무리 상담을 해도 결국 대다수 소비자는 저렴한 가격으로 끌려가기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온라인몰 뿐만 아니라 대형마트와 편의점까지 가세해 건기식 유통에 뛰어들었고, 박리다매를 내세운 이들의 판매전략과 개개인의 약사, 약국이 경쟁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잇달았다. 온라인구매에 익숙해진 소비자들, 대량생산을 통한 판매가격 인하에 더해 미디어에서 넘쳐나는 건강정보도 약국을 안고가진 않았다.

아울러 약국 건기식 쇠퇴의 원인이 약국 외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건기식 판매·공급처에게 약국이 까다로운 유통망이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가장 빈번한 갈등은 반품이다. 판매사들은 약국이 일반 유통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유리한 반품조건을 고수한다고 입을 모은다. 결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시대와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한 건기식 업체 관계자는 "요즘은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약국은 관리하기 어려운 유통라인"이라며 "약사 개인의 재량에 따라 주문, 결제, 반품이 이뤄진다. 재고가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는 곳은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을 무조건 반품하겠다고 한다. 조건을 다 들어주다 보면 제조·수입사가 손해를 다 떠안게 된다"고 푸념했다. 

이어 "마트나 편의점, 백화점은 본사 정책에 따라 일괄적인 행정처리가 가능하지만 약국은 다르다. 약사마다 성향이 다르다 보니 일괄적인 업무 처리가 어렵다. 그만큼 관리인력이 많이 필요하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이같은 분위기에서 약국 스스로도 점차 건강기능식품 취급을 기피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부산의 한 약사는 "약국 건기식 시장은 거의 축소됐다고 본다. 최근에는 약국도 반품이 원활한 제품 몇 가지로 건기식 제품이 정리되는 모양새"라며 "약국 전용 브랜드 중 일부 입소문을 탄 특화 제품 외에 비타민, 오메가3 등 섭취가 일반화된 건기식은 약국에서 판매하기 어렵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의 한 약사는 "약사가 건강 전문가, 상담가로 특화되어 있으면서 건기식을 놓치고 있는 건 정말 아쉬운 일"이라며 "약국 안에서 성공하는 제품이 나와야 큰 업체들이 까다롭다 하면서도 약국을 안고갈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진단했다.

이어 "외부 환경이 변화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약국이 할 수 있는 것부터 바꿔나거야 한다. 팔리지 않아도 매입해 진열하고 계속 판매를 유도해야 한다"며 "당장 상담이 힘들고 재고 관리가 힘들다 해서 아예 손을 놓으면 건기식 시장은 영영 놓치는 것이다. 지금처럼 조제와 전문약에만 매달려선 약국에 미래가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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