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이후 보툴리눔 제제 시장 국내 1위 굳혀

올해 상반기 어닝시즌에 휴젤이 날아올랐다. 지구촌 전체를 2년 가까이 짙게 휩싸고 있는 코로나19 안개 속에서도, 주력 제품인 보툴렉스(botulinum toxin 제제)의 상반기 매출이 전년 동기 447억 원에서, 726억 원으로 무려 62.4%나 뛰었다(휴젤 IR자료 참조).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좋아진 것은 당연하다. 2016년 이후 보톡스(보툴리눔 톡스 제제의 대명사로 봄) 시장의 국내 1위를 굳혔다.

보툴렉스 형제들이 급성장하게 된 배경은, 대표집행위원을 비롯한 임직원들의 시장 개척 및 확대 노력, 소유주인 베인캐피탈(Bain Capital)의 포괄적인 경영 관리 그리고 시장 성장성 등을 들 수 있겠지만, 메디톡스와 대웅제약 간의 지난 6년여에 걸친(아직도 국내에서 진행형이지만) 치열한 '보톡스 전쟁'은, 휴젤의 급성장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이 서로 막대한 전쟁 비용(소송비용)과 시간 및 노력 등을 허비하며 죽기 살기로 난투를 벌이고 있는 동안, 휴젤은 싸움 당사자들이 애써 닦아 놓은 기반과 시장 루트(route) 등을 유효적절하게 활용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해, 일거에 도약할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결과론이지만, 글로벌 10대 사모펀드(PEF, Private Equity Fund)의 하나인 베인캐피탈이 2017년4월 거금 9275억 원을 투자해 휴젤의 최대주주였던 동양에이치씨를 흡수 합병하여 휴젤의 지배권을 차지한 것은, 오늘날 위와 같은 일들이 전개되리라는 점을 훤히 꿰뚫어보고, 돈벌이 투자 차원에서 그랬던 것으로 분석된다. 당시 '베인캐피탈'이 그런 예단을 하지 않았다면 1조원 가까운 막대한 돈을 들여 휴젤에 발을 담그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베인캐피탈의 예측은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다. 현재 휴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높아졌다. 올 상반기 매출액이 제약업계 중형 그룹인 1284억 원임에도, 증권시장의 시가총액은 8월13일 종가기준 무려 2조7980억 원이나 된다. 증시의 투자 바로미터(barometer) 중 하나인 외국인들의 휴젤 주식보유율은 77.44%에 달한다. 

베인캐피탈은 사모(私募)펀드이므로 '수익을 실현할 시점'이 도래돼, 최근 휴젤 보유주식 전부(42.90%)를 매물로 내놨다. 

그 매물의 구매 대상에 신세계, 삼성물산, SK그룹(SK디스커버리, SK케미칼) 및 존슨앤존슨(J&J) 등 쟁쟁한 국내외 재벌 기업체들이 하마평에 올랐으나 풍문에 그쳤고, 지난 11일부터 'GS그룹+3자 사모펀드 컨소시엄(IMM인베스트먼트, 아랍에미리트국부펀드 무바달라 인베스트먼트, 중국 PEF 운용사 CBC그룹)'이 가장 유력한 휴젤의 새 주인이 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만약, 휴젤이 'GS그룹 컨소시엄(consortium)'의 품에 안긴다면, 베인캐피탈 주인 시절보다 배경은 훨씬 더 좋아질 것이 분명하다. GS그룹 컨소시엄(consortium)이 휴젤의 성장과 발전에 올인(all in)할 테니 말이다. GS그룹은 이번의 투자가 LG그룹과 분리된 이래 첫 초대형 투자가 될 것인데다, 글로벌 보톡스 시장에서 성장성이 매우 높은 중국의 사모펀드 운용사인 CBC그룹의 참여가 예사롭지 않다.  

전문가들은 베인캐피탈이 시장에 내놓은 휴젤 보유 주식의 매매 성사 가격이 좀 비싸기는 해도 2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휴젤의 주인 자리에 관심을 보인 재벌그룹의 눈에 휴젤이 그만큼 가치가 있어 보일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이 '보툴리눔 톡신(botulinum toxin) 균주'의 원천 등을 놓고, 옆길로 빠져 사생결단의 긴 싸움을 하는 사이, 휴젤은 요즈음 잘 나가는 바이오 제약인 '보툴리눔 톡신 제제' 국내 시장의 거인으로 탈바꿈했다. 

그렇다면,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은 왜 6년 동안 협상하지 않고 끝을 봐야 했을까? 그 속사정을 추리해 봤다.

이들 두 제약사의 지루하고 감정적인 격한 싸움은 2015년4월 'Dubai Derma 2015' 학회 일정 중, 메디톡스가 '대웅제약의 나보타 세션(session)'에 참석해 "나보타의 균주 기원에 대해 말해 달라"는 질의를 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내 균주, 네가 그냥 가져갔지? 균주 배양과 제제방법까지" "뭐라, 그 균주가 어떻게 해서 네 건데? 정식으로 분양 받은 건지 들춰볼까? 난 어렵사리 그 균을 용인 마구간에서 직접 발견해 제품으로 개발한 거야" 이러한 두 회사의 다툼은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법적 과학적 다툼으로 전개됐다. 미국의 관련 제약업체들까지 함께 뒤엉켜 싸움판이 커졌다.

대웅제약은 1995년 우리 한국에 맨 처음 보툴리눔 톡스 제제인 엘러간의 '보톡스'를 도입한 장본인이다. 힘든 시장개척의 노력이 열매를 맺어 년 매출 300억 원 규모의 블록버스터 효자 상품이 되자, 엘러간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웅제약과의 계약기간이 3년이나 남은 상황에서 2009년 일방적으로 판권을 회수해 갔다. 

대웅제약은 도입상품의 비애를 뼈저리게 느꼈을 테고 '엘러간과 보톡소'에 한(恨)이 맺혔을 것 같다. 절치부심(切齒腐心) 끝에 2013년 말 보툴리눔톡신 제제인 '나보타'를 개발해 낼 수 있었다. 얼마나 '나보타'가 소중하고 대견했을까. 대웅제약은 엘러간에 여봐란듯이 미국이라는 호랑이 굴에 직접 들어가 심히 어렵다는 FDA의 판매허가까지 받아냈다.

메디톡스는 1970년대 후반 미국 위스콘신대학교에서 연구하던 양규환 박사가 KAIST에 부임하면서 보툴리눔 균주를 가져왔고, 이를 양 교수의 제자인 자사의 정현호 대표가 승계했다고 밝히고 있다.

메디톡스는 그 균주를 배양시켜 한국 최초로 '보툴리눔 톡신(botulinum toxin) 제제'인 '메디톡신'을 자체 개발해 2006년3월 식약청(당시)으로부터 국내 판매허가를 받아 같은 해 6월부터 판매하기 시작했다. 메디톡스는 '보툴리눔 톡신(botulinum toxin) 제제'의 한국 원조(元祖)라는 자부심이 어느 업체보다도 대단히 강하다. 

메디톡스 입장에서는 보툴리눔 균은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만 자라기 때문에 발견하기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지극히 어렵다는 점, 균주 종류의 지리적 편향성이 강하다는 점, 고도의 정교한 균주 배양 기술이 요구된다는 점 등을 볼 때, 대웅제약의 '나보타' 균주 출처와 균주 배양 기술 등이 자신들 회사의 것이라고 확신에 찬 의심을 품은 것으로 보이고, 대웅제약 입장에서 이 싸움은 자칫 잘못하면 균주 도용으로 오해를 살 수 있는 사회적 신뢰와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고 판단했을 것 같다.

이런 연유로, 보기 민망한 두 회사 간의 보톡스 전쟁은 협상으로 일찍 끝내지 못하고 올 데까지 온 것이 아닐까? 상식적으로 봐도 두 회사가 스스로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기는 대단히 거북한 일로 보인다.

하지만, 세칭 '보톡스 전쟁'의 출구 전략이 궁해서 그렇지, 스님 본인 머리 스스로 못 깎으니 양자가 신뢰할 수 있는 업계나 학계 등의 원로에 부탁해서라도, 솔로몬의 지혜를 짜내서라도, 협상은 일찍부터 시도됐어야 했다. 협상의 성패 여부는 조건의 문제이므로 그 다음이다.

이 전쟁의 미국 싸움판은, 대웅제약 주보(Jeuveau, 나보타의 미국명)의 미국 판매 파트너(partner)인 '에볼루스'가 금년 2월23일 홈페이지를 통해 자사의 작년 4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자사(에볼루스)와 메디톡스 및 애비브(종전 엘러간) 3자가 협상에 합의한 사실과 내용을 밝힘으로써 일단락 됐다. 끝나는 마당인데도 예외 없이 치고받는 두 회사 간의 여진(餘震)은 계속됐다. 

이로써 에볼루스는 지난해 12월 ITC(미국국제무역위원회)의 최종 판결인 '대웅제약의 주보(나보타) 판매 21개월 금지 제재'에서 벗어나 마음 놓고 주보를 판매를 할 수 있게 됐고, 대웅제약은 미국 내 보툴리눔 톡신 사업의 모든 리스크(risk)가 제거됨으로써 미국은 물론 글로벌 시장 공략에 더욱 박차를 가할 기회를 잡았다.

메디톡스와 애브비(옛 엘러간)는 에볼루스로부터 상당한 합의금과 21개월간 로열티(royalty)를 공동으로 지급 받게 됐고, 메디톡스는 단독으로 10년 동안 로열티 수취와 에볼루스의 2대주주가 되는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메디톡스는 '보톡스 전쟁'을 치르면서 한국 보툴리눔 톡스 시장의 주도권을 휴젤에게 완전히 내 줬고, 3위 자리 유지마저도 위태롭게 됐다. 중국 허가 진행도 아직까지 지지부진 답보 상태다. 

게다가 지난해 식약처로부터 허가받지 않은 보툴리눔 톡신 원액 사용, 허위 서류작성, 국가 출하승인 없는 해외 수출 등으로 메디톡신 등 일부 주요 제품의 허가취소 처분을 당했다. 이러한 처분에 대해 메디톡스가 낸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이 법원으로부터 받아들여져 본안 소송이 마무리될 때까지 그 제품들에 대한 판매를 계속할 수 있어 한숨은 돌렸지만, 그러한 일이 벌어지게 된 데는 '보톡스 전쟁'과 무관하지 않은 제보에 의해 야기됐다는 세간의 소문이 있다.

이 보톡스 전쟁은, 미국에서는 벼랑 끝에서 협상과 합의를 통해 서로 윈윈(wín-wín)하며 끝을 맺었지만, 국내 싸움은 두 회사 간의 악감정이 서로 극에 달하고 있는 점으로 봐 상고심에서 끝날 것으로 판단된다. 대법원은 최종 어떻게 가르마를 탈까? 만약 딱 부러지게 이기고 지는 판결이 내린다면 어느 한쪽은 지더라도 본전이겠지만 어느 한쪽은 치명상을 입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텐데 말이다.

이러한 보톡스 싸움판은 당사자나 수혜자 및 관중 모두에게 공통적인 물음표 겸 과제를 던지고 있다.

미국 땅에서는 에볼루스와 애브비(엘러간의 인수자) 및 메디톡스가 협상을 하고 합의 했는데, 우리 한국 땅에서는 왜 메디톡스와 대웅제약 간에 협상과 합의가 안 될까? 나라 풍토 때문일까? 싸움 방식 등이 달라서 일까? 아니면 감정 문제까지 개입돼서 그럴까. 

문제 발생으로 법적 다툼을 벌이게 되면 법리와 증거 등에서 우위(優位)에 서면 될 일인데, 이번 두 회사의 보톡스 싸움을 보면 여론전에서도 승리하고자 함인지 서로 상대방의 치부나 약점부터 후벼 파는 경향이 역력했다. 관중은 싸움 당사자와 달리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양쪽 입장을 함께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비교적 공평할 텐데, 보도 자료를 보면 은연중 억지로 자기 쪽으로 기울기를 강요하는 내용이 눈에 띄어 괜히 눈살이 찌푸려질 때도 있었다. 보톡스 전쟁의 관중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고 봐서 그랬을까? 

두 회사의 보톡스 전쟁은 이성보다는 서로 감정에 북받쳐 협상이라는 훌륭한 '전쟁의 출구'를 안타깝게도 당사자들 스스로 완전히 막아버렸다. 협상이 될 리 없다.

"병법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고, 전쟁은 오래 끌면 안 된다"는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손자(孫子)의 잠언이 있다. 이 교훈에 따르면 보톡스 전쟁은 상책은 못되는 것 같다. 우리 한국 땅에서도 미국 땅에서처럼 협상으로 전쟁을 종결시키는 지혜를 짜냈으면 한다. 

앞으로 3~5년 후, 휴젤과 대웅제약 및 메디톡스의 '보툴리눔 톡신 제제' 시장 판도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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