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료약산업 발전? 옥석 가리는 엄정한 심판이 먼저다

원료약 자급률이 허수임을 일깨운 대봉엘에스 행정처분

2018년 발사르탄 원료 및 완제의약품 NDMA 검출사태가, 영원히 묻힐 뻔했던 원료의약품 업체의 일탈행위를 소환했다. 이번 일탈의 공개가 국산 원료의약품에 대한 신뢰를 실추시킬까 우려되지만, 국산 원료의약품의 경쟁력은 적폐 위에서 세워질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조명한다. 편집자 주

1. 대봉엘에스 발사르탄 원료약의 비밀
2. 완제 제약회사들을 속인 대봉엘에스
3. 적폐를 걷어내야 국산원료약 경쟁력 가능 

대봉엘에스가 n-헥산 처리를 하지 않아 행정처분을 받을 당시 제조업무정지 처분과 원료의약품 등록 취소 처분 모두 가능한 행정처분 기준이 시행되고 있었다.

"의약품등 안전에 관한 규칙"(총리령) 별표 행정기분 기준에 원료의약품을 등록한 자가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등록, 변경등록 또는 변경보고를 한 경우 1차 행정처분으로 해당 원료의약품에 대한 등록취소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인보사 사건 이후에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허가 등을 받은 경우 허가취소 등 처벌기준을 신설했으나 원료의약품 등록에 대해서는 이미 등록취소가 가능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대봉엘에스가 '대봉홍화유'와 '발사르탄' 원료에 n-헥산 투입 공정을 하지 않은 것이 2018년 8월 약사감시에서 적발됐기 때문에 이를 상습적인 위반으로 보고 엄격한 처분기준을 적용할 만했지만 경인지방청은 등록 취소 처분 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제조업무 정지 처분 기준을 적용했다

n-헥산을 공정 중에 투입하지 않은 행위가 등록사항에 위반한 일인지, 등록을 거짓으로 한 일인지는 해석하기 나름일 수 있지만 식약처는 등록사항을 위반한 행위로 간주하고 처분했다.

그런데, 행정처분이 제조업무정지를 염두에 두고 위반행위를 정리하였다면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관점에 이의가 생긴다.

합성의약품 공정 전문가에 따르면 대봉엘에스 발사르탄 조품 정제공정 단계는 에틸 아세테이트 처리와 n-헥산 처리 공정으로 나뉘는 데, 에틸 아세테이트 처리는 n-헥산 처리를 위한 사전 용해 공정으로 n-헥산 처리를 하지 않는다면 에틸 아세테이트 처리 공정을 할 필요가 없으며, 만일 에틸 아세테이트 처리만 하고 n-헥산 처리 공정을 생략할 수는 없다.

발사르탄은 결정물이며 에틸 아세테이트로 용해했다면 결정화를 하지 않고서는 완성품이 되지 못하며 n-헥산 처리는 결정화 공정이기 때문이다.

행정처분 내용은 n-헥산 처리를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마치 정제공정 중 일부 공정을 생략한 위반행위로 정리하고 있지만 전문가들 의견은 n-헥산 처리를 하지 않았다면 전체 정제공정을 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n-헥산 처리이든지 전체 정제공정이든지 국내에서 공정을 수행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 정제되지 않은 조품을 들여와 그대로 국내 이름난 제약업체에 납품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럴리는 없어 보인다. 중국 조품 제조회사에서 판매하는 발사르탄 완성품 가격이 납품가격에 한참 못미치는 데 굳이 조품을 들여와 품질이 떨어지는 완제품을 생산하게 하여 혹시나 있을 수 있는 책임을 지려고 했을까 합리적인 의심이 드는 것이다.

세관업무에 밝은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조품을 들여온다고 신고하고 완성품 원료를 수입해도 세관에서 자세히 들여다 보지는 않는다고 한다.

마음만 먹으면 조품 대신 완성품을 들여와도 거를 수 있는 절차가 없는 상황인 셈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만일, 대봉엘에스가 전체 정제공정을 하지 않은 위반행위로 적발되었다면 거짓 등록행위인지, 등록사항 위반행위인지에 대해 어떻게 판단했을지 궁금한 일이다.

대봉엘에스 행정처분 사례는 원료의약품 산업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이지만 이런 행위가 반복되는 이유가 심판자인 관리당국이 거짓으로 볼 수 있는 위반행위를 척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관련 업계에서 나온다.

거짓 허가서류 제출은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데 식약처 허가심사 담당자들이 허가서류에 거짓이 있는 사항을 어렵게 알아내도 민원처리기간 중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고작 반려하거나 자진취하를 유도하는 정도다.

그래서, 식약처 내부에서 미국 FDA가 시행하고 있는 블랙리스트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계속되어 왔지만 여전히 시행되지 않고 있다.

인보사 사건으로 처벌조항을 만드는 정도에 그치고 있고 대봉엘에스에 대한 행정처분 사례로 볼 때 그 처벌조항을 엄격하게 적용하여 시행할 수 있을 지에 대한 의문이 드는 실정이다.

n-헥산을 공정 중에 투입하지 않은 행위가 등록사항에 위반한 일인지, 등록을 거짓으로 한 일인지는 해석하기 나름일 수 있지만 식약처는 등록사항을 위반한 행위로 간주하고 처분했다.
n-헥산을 공정 중에 투입하지 않은 행위가 등록사항에 위반한 일인지, 등록을 거짓으로 한 일인지는 해석하기 나름일 수 있지만 식약처는 등록사항을 위반한 행위로 간주하고 처분했다.

 

원료약 산업발전 위해선 실질적 국산 원료 구분 필요

한편, 대봉엘에스 발사르탄 행정처분은 우리나라 원료의약품 자급률이 허수임을 보여준다. 원료의약품 제조업체인 대봉엘에스가 발사르탄을 생산실적에 포함해서 보고하면 자급률에 반영된다.

국제무역 규정 등에 따라 상당한 부가가치를 더해야 원산지가 바뀔 수 있음을 고려할 때 조품을 정제하는 정도로 국산이 되지 못할 수 있지만, 국내 생산실적 보고 기준은 국제기준에 따른 원산지를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10여단계에 이르는 원료의약품 제조공정에서 조품을 수입해서 정제과정만 거쳐도 원료의약품 제조로 인정해주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이나 유럽은 2~3단계 공정을 수행해야 원료의약품 제조로 인정하고 있다고 한다.

조품을 수입해서 정제과정만을 거쳐 제조판매하면 관세율에서 이점이 있을 수 있고 해당 업체 생산규모를 부풀리는 데 도움이 되며, 규제나 상거래에서 원산지에 대한 법규 및 인식이 미비함에 따른 여러 이점이 있을 수 있다.

정제공정에 특별한 노하우가 있어서 완성품 수입보다 조품을 정제하면 고품질 원료의약품을 만들 수 있을 수도 있겠지만 대봉엘에스 발사르탄 행정처분 사례는 조품을 정제하여 제조판매하는 이유가 품질보다 이익을 얻는 데 치우쳐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원료의약품 산업 발전을 위해 조품 정제에 대한 등록기준이나 국산 인정 등을 어떻게 할 것인지 관리당국과 업계가 함께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이유이다. 그런 연후 정부 차원의 지원책 실행돼야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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