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와 박능후 복지부 장관의 어이없음

이쯤 되면 토끼사냥을 마치고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을 약사들이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무 개념 발언들이 약사들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친 때문이다.

정부가 공공의 이름으로 호출했을 때 기꺼이 호응했던 약사들에게서, 4개월 이상 욕받이 노릇을 하며 공적마스크 판매에 참여해 공공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약사들에게서, 두 장관은 보람을 강탈했다. 아니 보람보다 훨씬 깊은 분노를 안겼다.

홍 부총리는 지난 달 3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3차 추경안 심사에서 머릿속에 담긴 약국과 약사에 대한 평소 인식을 드러냈다.

민주당 서영석 의원이 "정부가 고생한 보건의료인들에게 보건용 마스크를 지급했는데 공적마스크 공급을 위해 방역일선에서 고생한 약사와 종사자에게는 공급되지 않았다"고 하자 "만약 편의점에서 팔았다면 편의점 주인한테 마스크를 제공해야 하는지..."라고 답변했다.

'자기장사 한 것 아니냐'는 인식이 발언의 기저에 깔려있는 것이다. 약국 앞 마스크 구매행렬에서 그가 느낀 것은 국민들의 불편함과 약사들의 고충이 아니라 장사였을까?

약사회는 지난달 30일 2020년도 제5차 시도약사회장회의를 열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원격 화상투약기 도입 추진에 반대하는 입장문을 냈다.(사진제공=대한약사회)
약사회는 지난달 30일 2020년도 제5차 시도약사회장회의를 열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원격 화상투약기 도입 추진에 반대하는 입장문을 냈다.(사진제공=대한약사회)

보건의료 주무 장관의 인식도 다르지 않았다.

박 장관은 2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회의에서 "화상투약기 대안으로 약사회가 제시한 공공 심야약국은 지난 3년간 실효성 있게 시행됐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화상투약기 필요성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화상투약기 허용에 관한 전향적 자세를 내비친 것인데 보건의료자원을 공공의 이익으로 시의적절 하게 운용해야하는 위치에 있는 장관의 인식치고는 참 얄팍하고 안이하다. 약사 전문 직역에 대한 그의 인식은 아무 때나 뽑아 코를 푼 뒤 쓰레기통에 버리고 또 뽑아 쓸 수 있는 '곽 티슈'라고 여기는 것일까?

코로나19처럼 위급한 상황에서 공공의 이름으로 전문 직역을 호출하려면 평소 최소한의 자존감은 세워주는 것이 마땅하다.

관련하여 흥미로운 설문조사가 있다. 서울시약사회 온라인 설문조사(6월9일~15일 5447명 대상 실시)에 따르면 설문 응답 약사 2501명 가운데 92.5%인 2134명이 약국을 통한 공적마스크 판매가 감염 예방과 마스크 공급 안정화에 기여했다고 봤다.

경제적 측면보다 공적인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응답자도 58.3%(1457명)에 이르렀다. 약국의 사회적 공공성에 대한 두 장관의 희박한 의식에 비해 약사들은 스스로를 공공재로 생각하며 국가적 위기에 앞장서는, 이 아이러니의 간극을 채워주고 이어주는 이가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안쓰럽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적마스크 제도 만료가 4일 앞으로 다가온 7일 제35회 국무회의 자리에서 '마스크 긴급수급조정조치 제정안'을 심의 의결한 뒤 마스크 수급 안정에 기여한 국민들과 약사, 관계 부처와 업계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사회 건강지킴이 전국의 약사 분들이 봉사의 마음으로 공적 마스크 보급에 크게 기여해 줘 감사하다"고 했다.

대통령은 마스크 판매가 본격화 되던 3월 6일에도 자신의 SNS에 "국가재난 대응을 위해 온 힘을 다해 협조한 약사 노고를 기억하겠다"고 쓰기도 했었다. 

두 장관은 그들의 발언이 문제가 되고, 발언에 깔린 속내를 들키자 이렇게 저렇게 말을 수정했다. 그런데, 그들의 생각은 조금이라도 바뀐 것일까, 비판세력을 따돌리기 위한 임기응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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