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규 브릿지바이오 대표, SNS 통해 의견 밝혀
'펙사벡' 임상중단, 신라젠에 가장 가혹한 징벌

이정규 브릿지바이오 대표
이정규 브릿지바이오 대표

"'실패'에 쉽게 돌을 던지고 싶지 않다."

이정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브릿지바이오) 대표는 4일 개인 SNS에서 신라젠 '펙사벡'의 임상 중단에 대해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이 대표는 "우리는 흔히 '실패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하고, '실패할 수 있어야 바이오텍이 성장한다'는 총론에 동의한다. 그런데 개별적인 실패에는 매우 가혹하다는 인상을 받는다"라면서, "임상1상 과제를 보고 '절대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의 주장이 맞을 확률은 90%이지만, 그래서 신약 개발을 하지 않는다면 개발 못 할 확률은 100%"라고 했다. 

도전적인 과제에서 부정적 전망은 긍정적 전망보다 맞을 확률이 항상 높지만, 부정적 전망을 하는 사람이 과연 제대로 판단했는지에 대해서는 반문해 봐야 한다고 했다. '저건 안 돼'라고 모든 과제를 예언하는 사람은 적중률 최고의 예언자가 되겠지만, 신약 개발 성공률은 0%가 된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신약을 개발하는 모든 회사는 임상 진입 시 누구보다 조마조마하다. 그 조마조마함은 투자자들에게는 확률 문제지만, 신약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사람들과 경영진에게는 인생의 전부"라면서, "임상 중단 자체가 어찌 보면 신라젠 문은상 대표에게는 가장 가혹한 징벌"이라고 했다.

이어 "실패 가능성이 월등히 높은 프로젝트들을 죽을 때까지 시도해야 하는 신약 개발자 입장에서 실패에 쉽게 돌을 던지고 싶지는 않다. (돌을 던져도 된다면) 나도 언젠가는 90% 확률로 돌을 맞게 된다. 현존하는 모든 신약 개발자가 개발 성공 전에 돌에 맞아 죽을 확률은 99.9%"라며, "실패 사례들을 통해 성공 확률을 높일 방법이나 실패 가능성이 큰 과제를 일찍 간파해 '신속히 솎아낼(Kill Early)' 방법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배우려 노력할 뿐"이라고 했다. 

앞서 신라젠은 "간암 항암 바이러스 치료제 '펙사벡'의 글로벌 임상 3상 무용성 평가 결과,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지 시각 1일 오전 9시 DMC(Independent Data Monitoring Commitee, 독립적인 데이터 모니터링 위원회)로부터 임상 중단을 권고받았다"고 지난 2일 공시했다.

DMC은 주기적으로 임상시험의 진행 상황·안전성 관련 자료·중요한 유효성 결과 변수를 평가하고, 해당 임상시험의 계속 진행·변경·중지를 의뢰자에게 권고하는 독립된 위원회다.

이와 관련 신라젠은 "임상에서 간암표적치료제 '넥사바' 단독요법 대비 항암바이러스치료제 펙사벡과 넥사바 병용 요법의 효과성은 입증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사실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신라젠은 4일 오후 무용성 평가에 대한 긴급 간담회를 개최했다. 무용성 평가는 개발하는 약이 치료제로서 가치가 있는지 상업화 가능성을 따져 임상 지속 여부를 판단하는 평가다. 

문은상 신라젠 대표
문은상 신라젠 대표

이날 간담에서 문은상 대표는 실명한 오른쪽 눈을 가리기 위해 한쪽 렌즈가 어두운 안경을 착용했다. 치과의사 출신인 그는 2013년 말부터 신라젠 대표를 역임했다. 문 대표는 "(펙사벡 개발에 모든 것을 걸고 달려오는 과정에서) 지난해 5월 안구 적출과 3개월 시한부 진단을 받아 총 6번의 수술을 거쳤다"고 했다.

문 대표는 "임상 3상 조기 종료는 펙사벡 문제가 아닌, 항암바이러스와 표적항암제 병용요법의 치료 유의성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펙사벡의 항암 능력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다"고 했다. 

또한 "나는 펙사벡의 초기 임상을 통해 병용요법의 가능성을 직접 확인했다. 따라서 당사는 앞으로 병용 임상에 집중할 것이다. 우선 글로벌 임상 3상에 예정됐던 잔여 예산을 신규 면역항암제 병용 임상 및 술전요법에 투입하겠다"고 했다.

펙사벡은 신라젠이 자체 개발한 항암 바이러스 후보 물질로, 2015년 미국 FDA로부터 다국가 임상 3상 승인을 받고 21개국 120여개 병원에서 간암 환자 600명 대상으로 시험에 돌입했다. 신라젠에 따르면, 펙사벡은 임상 1~2상에서 독성이 적으면서도 우수한 항암 효과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펙사벡은 천연두 백신에 사용되는 백시니아 바이러스의 독성을 제거해 타깃으로 삼은 간암세포에서만 증식하도록 해서 암세포를 사멸시키는 기전을 갖고 있다.

이와 관련 이정규 대표는 "이번 기자회견에서 문 대표가 안대를 한 모습을 보고 마음이 매우 아팠다. 그는 펙사벡이 대부분의 가치(Value)를 만드는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큰 부담을 가졌다"면서, "초기 제시한 항암제 임상 개발 예상 일정을 맞출 수 있는 회사가 전세계 몇 군데나 될까? 전세계 항암제 개발 임상 건수가 폭주하면서 환자를 확보하는 건 그야말로 전쟁이라는 점은 항암제 개발자라면 다 아는 사실"이라고 했다.

그는 DMC로부터 자료를 건네받고 자료 분석·DMC 권고의 적절성·대안을 검토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고려한다면, 월요일 주식 시장이 열리기 전에 공시한 것이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 했다.

이 대표는 "종양 내 주사라는 투여 방식의 한계를 가지고도 임상 디자인을 새롭게 해 FDA와 협의하고 특정시험계획평가(SPA) 과정을 거친 것은 매우 중요한 마일스톤(Milestone) 달성이다. SPA 과정은 FDA가 펙사벡이 환자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는 회사 주장에서 상당한 근거를 보고, 시도하도록 적극 지원해주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 대표가 속한 브릿지바이오는 지난 18일 글로벌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에 특발성 폐섬유증(IPF)을 포함하는 섬유화 간질성 폐질환 치료를 위한 오토택신 저해제 계열 신약 후보물질 'BBT-877'을 약 1조4600억원에 기술수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BBT-877은 현재 임상 1상 단계로, 향후 12개월 내 임상 2상에 돌입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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