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중단 비판받을 일 아냐...곳곳 드러나는 모럴헤저드가 문제

신라젠은 8월2일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에, '1) 당사는 2019년8월1일 오전9시(미국 샌프란시스코 시간)에 독립적인 데이터 모니터링 위원회(Independent Data Monitoring Committee, DMC)와 펙사벡 간암 대상 임상 3상시험(PHOCUS)의 무용성 평가 관련 미팅을 진행하였으며, 진행 결과 DMC는 당사에 임상시험 중단을 권고하였습니다. 2) 당사는 DMC로부터 권고 받은 사항을 미국 FDA에 보고할 예정입니다.'라고 공시했다.

이 소식에 증권시장이 즉각 가차 없이 반응했다. 신라젠 주가는 3일 연속 하한가를 맞았다. 하한가는 30% 급락함을 말한다. 3일간 매일 30%씩 빠졌다. 4일째도 7.19% 떨어졌다. 기대가 높았던 만큼 실망도 커서 그랬을까. 증권가에서는 이런 유례를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사태 터지기 바로 전날 8월1일, 신라젠 주가는 4만4500원이었는데 8월7일에는 1만4200원으로 수직 하락했다. 8월2일부터 7일까지 4일 만에 무려 68.1%나 폭락했다. 이에 따라 시가총액(시총)도 3조1654억 원에서 1조89억으로 나흘 만에 2조2000억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시총이란 기업체 가치에 대한 공개시장의 회사 거래가격이라 할 수 있다. 상장주식수에 주당 가격을 곱하여 산출된다.

아직도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8월23일 종가는 1만5000원으로 2016년 11월 주식공개 당시의 공모 확정가격 1만5000원과 같은 가격이다. 그동안 숱한 화제를 불러일으켰으나 2년8개월 만에 겨우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 화려했던 화제들은 결국 물거품이 되었다.

펙사펙 임상중단 관련 기자회견에서 신라젠 문은상 대표가 사과하고 있다.
펙사펙 임상중단 관련 기자회견. 인사하는 신라젠 문은상 대표.

이러한 신라젠 사태의 밑바닥에는 지금, 신라젠을 신뢰하고 기대하며 투자한 개미군단 소액주주 15만 명(14만7053명, 최근 주주명부 폐쇄일 기준)의 '눈물'이 흐르고 있다. 이들 개미군단은 '바이오벤처'사들의 신약연구개발을 위한 결정적 '자금원'이다. 신라젠의 경우, 총발행주식 중 85.68%가 소액주주들의 소유다. 

신라젠은 기술특례로 상장 된 후, 2016년12월6일 코스탁 시장에서 첫 주식거래가 시작됐다. 첫날 주가는 1만2850원으로 마감됐다. 그날 시총은 8004억 원으로 형성됐다. 이듬해 2017년2월24일에는 주가가 장중 8900원까지 떨어졌다. 시총도 당연히 5625억 원으로 감소됐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9개월만인 2017년11월24일 장중 한때 주가가 거침없이 15만2300원까지 훨훨 날았다. 최저가 8900원의 17배가 넘는다. 시총이 자그마치 10조1265억 원으로 부풀었다.

만약, 그해 2월24일 8900원 최저가에 1000만원을 투자하여 11월24일 15만2300원에 팔았다면, 현찰로 1억7000만원을 챙겼을 것이고 원가 1000만원을 공제하면 1억6000만원을 벌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게 '바이오'라는 단어와 '펙사벡 간암대상 임상3상 소식'이 합작한 마술의 결과였다. 임상성공 소식이 아니었다. 판매허가 소식도 아니었다. 세계를 상대로 마케팅을 성공했다는 소식도 물론 아니었다. 펙사벡으로 신라젠이 돈을 엄청 벌었다는 소식은 더더욱 아니었다.

단지 임상 3상에 들어가 '성공을 기대케 하는 소식'뿐이었다. 그런데도 신라젠 시총은 한때지만 10조원 넘게 치솟았다. 말이 10조원이지 이게 어디 보통 돈인가. 숱한 바이오벤처를 비롯한 우리나라 모든 제약사들 중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단연 으뜸이었다.

이러한 현상이 과연 정상적인 것일까? 아마도 신라젠은 '임상소식을 전하는 홍보(publicity) 능력'이 '홍보전문회사(Business-Connected Agency)들'보다 훨씬 더 탁월한 제약사인 것 같다. 홍보가 마케팅의 꽃이라는 점을 체득한 듯, 임상 홍보만 가지고 신라젠에 관심이 있는 주변사람 모두를 내편으로 설득(sales)해, 500원짜리 주가를 저렇게 300배가 넘는 15만2300원까지 끌어 올리는 능력을 발휘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신라젠을 신약개발의 기술적·전문적 측면이 아니라 경영 윤리적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눈에 가시처럼 걸리는 게 있다. 그동안 신라젠의 핵심 경영진 행태를 보면, 사정이야 물론 있었겠지만, 정보의 비대칭을 활용한 '모럴 해저드(moral hazard)'를 의심케 할 대목이 발견된다. 바이오벤처 업계의 미래 발전을 위해 유념했으면 한다.

신라젠의 모 전무는, 사태 발생 1개월 전에 보유하고 있던 자사 주식 16만7777주를 모두 팔아치웠다. 지난 7월1일 9만2777주를 주당 5만4645원에, 7월2일 2만7690주를 5만162원에, 7월4일 1만9273주를 4만9758원에, 그리고 7월5일 마지막 남은 2만8037주를 4만9061원에 한 주도 남기지 않고 몽땅 매도했다. 처분주식 중 76%인 12만7777주는 스톡옵션(stock option) 행사 주식으로 평균단가(평단)는 고작 3913원밖에 되지 않았다(금감원DART, 신라젠 공시자료 중 '임원·주요주주 특정증권등 소유상황보고서' 등 참조, 이하 같음). 처분금액은 총 87억9300여만원에 달한다.

신라젠 최고책임자는, 자사 주가가 2017년11월24일 최고가인 15만2300원으로 치솟은 후, 비등한 주가 거품 논란과 함께 하락해 가자, 그해 12월28일부터 바로 다음해(2018년) 1월3일까지 3회에 걸쳐 보유 자사주식 520만9481주 중 30%에 해당하는 156만2844주를 평단 8만4822원에 팔아넘겼다. 그 금액은 자그마치 1325억6000여만원이나 된다. 이 외에도 그 최고책임자와 특별관계자인 친인척 등의 매도 물량까지 합치면 2000억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은 사실들은, 그동안 신라젠은 기회 있을 때마다 "돈을 벌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노력으로 암을 정복하겠다는 꿈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진 회사"라고 알리어 온 것과는 상당히 괴리가 있어 보인다.

신(神)의 영역이라 봐지는, 신약성공 확률(후보물질: 0.01~0.02%, 임상1상: 9.6%, 임상2상: 15.2%, 임상3상: 49.6%, 허가신청: 85.3%, 미국바이오협회)을 생각하면, 신라젠의 '펙사벡 간암 대상 임상3상 중단'에 '돌을 던질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다. '임상 디자인' 문제는 결과에 따른 아쉬움에서 지적한 것일 테고, 정보를 숨겼든 공개하여 공유했든, 이번 신라젠의 임상실패에 대한 그 자체의 문제는, 누굴 탓할 사항은 아니라고 본다.

신라젠은 증권시장에서 자금조달과 지배권을 공고히 할 수 있는 수단 방법은 다 동원했다. 전환사채 발행 및 '스톡옵션' 제공 등의 수단을 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활용했다.

문제는 '모럴해저드'를 의심 받도록 하는 행위다. 이는 시장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주범이다. 그렇게 되면 바이오벤처 전체 업체들의 연구개발 자금원이 막힌다. 행여 이러한 행동은 없었으면 한다. 막 새순이 돋기 시작하고 있는 국내 바이오벤처 제약업계에 신라젠의 사태가 타산지석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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