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터뷰 | 나용진 대한자궁내막증학회 회장(양산부산대병원 교수)

올해 설립 10주년, 해외 연자 초청 학술대회 및 교과서 개정 추진
자궁내막증학회, '한국형 임상지침' 개발로 맞춤진료 환경 조성
"진단 및 진료 패러다임 변화… 가임력 보존 등 환자 상황에 주안점"

국내에는 다양한 의료 분야 학회가 존재한다. 학회는 해당 분야의 학술적 연구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환자들의 치료 및 재활 지원, 혁신적 신약의 허가 혹은 급여를 위한 지식 자문, 정부 정책 개선을 위한 제언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히트뉴스>는 의료 분야 학회들을 찾아 그 역할과 활동을 소개한다.

1. 대한치매학회, 학술적 연구, 진료지침 개발부터 환자 문화 활동까지 지원
2. 대한자궁내막증학회, 한국형 임상지침·교과서 개발과 환자 인식 제고 총력

과거 서구형 질환이라고 생각했지만, 최근 국내에 그 수가 늘고 있는 여성형 질환으로 '자궁내막증'이 있다. 자궁내막증은 자궁내막의 분비선이라는 선조직과 주위에 있는 기질조직이 자궁 외 장소에 존재해 통증 및 난임 등을 야기하는 질환이다. 정상적인 자궁은 중간의 근육층, 바깥쪽에 자궁을 덮고 있는 층, 그리고 가장 안쪽에는 혈관이 풍부한 자궁내막 조직으로 구성돼 있는데, 자궁내막증은 이 자궁내막이 밖에 존재하면서 유발된다.

2023년 세계보건기구(WHO)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가임기 여성의 약 10% 정도가 자궁내막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억명이 넘는 규모인데, 만약 난임 여성으로 그 대상을 한정한다면 자궁내막증이 발견될 가능성은 10%보다 훨씬 높다.

국내 자궁내막증 환자 수 / 그래픽 = 히트뉴스
국내 자궁내막증 환자수 / 그래픽=히트뉴스

상황은 국내도 비슷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는 국내 자궁내막증 환자수를 2017년 11만1214명에서 2022년 18만9044명으로 5년 동안 약 70%가 증가했다고 조사했으며, 매년 증가 추세는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자궁내막증은 수술을 받더라도 통상 1년 후 재발률은 약 10%, 수술 5년 후 재발률은 약 50%에 달해 약제를 통한 지속적인 관리가 중요한 질환으로 꼽힌다.

이같은 상황의 중심에 대한자궁내막증학회가 있다. 학회는 설립 후 10년 동안 환자들의 인식 제고부터 한국형 진료지침 제작, 최근 진단 및 진료 트렌드를 반영한 의학 교과서 개정 등 국내 자궁내막증 치료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히트뉴스>는 설립 10주년을 맞은 대한자궁내막증학회의 나용진 회장(양산부산대병원 산부인과 교수)을 만나 학회의 소개부터, 활동 내용, 그리고 자궁내막증의 치료 패러다임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직접 들어봤다.

대한자궁내막증학회의 나용진 회장/양산부산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 / 사진=황재선 기자
대한자궁내막증학회의 나용진 회장(양산부산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 사진=황재선 기자

 

대한자궁내막증학회은 어떤 일을 하는 학회인가요?

나용진 교수는 "자궁내막증은 1차 진료 때부터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질환이기 때문에, 학회의 대상은 자궁내막증에 관심이 있는 산부인과학회 회원들이 모두 포함된다"며 "이외에도 자궁내막증 지식이 필요한 의료인들과 더불어 환자분들도 속해 있다"고 소개했다.

환자가 월경통이 심해서 내원했다면, 자궁내막증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환자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궁내막증은 장기화됐을 때 여러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초기 진료에서 이를 차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나 교수의 설명이다.

자궁내막증이 대학병원에 와서 진단되면 이미 경과가 상당히 진행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학회는 현재 자궁내막증 관련 임상 지침서 개발, 교과서 개정 및 환자 인식 제고를 위한 홍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자궁내막증은 어떤 질환인가요?

여성의 신체구조 / 사진=대한자궁내막증학회 
여성의 신체구조 / 사진=대한자궁내막증학회 

나용진 교수는 "자궁내막증은 아직까지 미지의 질환으로, 환자가 겪는 고통이 크고, 재발률도 매우 높고, 환자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질환인데 반해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고 소개했다.

현재 학계에서는 질환 원인을 '샘슨(Sampson) 가설'로 설명하고 있다. 보통 월경이 일어날 때 대부분 혈액이 모두 질을 통해 배출된다고 생각하는데, 월경이 위쪽으로 역류돼 올라가 배 안쪽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발병 기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나 교수에 따르면 월경시 떨어져 나온 조직들 안에는 자궁내막 조직들이 섞여 있는데, 이 자궁내막 조직들이 배 속으로 떨어진 후에 배 속에 붙고 혈관 공급을 받아 안으로 파고 들어가서 증식하게 된다. 체내 방어기전으로 90%는 자멸하거나 대식세포에 잡아 먹히지만, 이 외에 약 10%가 자궁내막증으로 발전하게 된다.

나 교수는 "다만 이를 아직까지 '가설'이라 부르는 이유는 자궁내막 조직이 드물게 다른 부위에도 생기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라면서 "이외에 유전적, 환경적인 요인도 작용한다. 만약 어머니 또는 자매가 자궁내막증을 겪었다면 발병 가능성이 약 7배 정도 증가하고, '프탈레이트' 성분 등 환경호르몬에 노출되면 발병할 수 있는 것으로 지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용진 교수는 자궁내막증이 유발하는 가장 중대한 삶의 질 저하 요소로 '통증'과 '난임'을 꼽았다. 나 교수는 "월경 시기에 맞춰 통증이 나타날 수 있고, 심해지면 월경 며칠 전부터 통증이 나타난다"며 "질병이 더욱 진행된 경우 월경 시기에 관계 없이 지속적으로 통증을 느낄 수 있다. 통증이 너무 심해서 생활이 안 되는 경우도 있고, 부부 관계시 성교통이 심하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나 교수는 이어 "자궁내막증은 암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비슷하게, 배 안쪽에서 지속적으로 염증 반응을 유발한다. 이로 인해 자궁 주위의 나팔관, 난소 등 자궁부속기가 들러붙을 수 있고, 배 안에 복막액도 고여 있는 경우가 있다"며 "이 부위에는 염증 세포들이 많아서 정자와 난자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치고 결국 난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자궁내막증의 진단과 치료는 어떻게 진행되나요?

나 교수는 "과거 자궁내막증 질환 자체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을 때는 단순한 월경통으로 생각하고, 자궁내막증의 가능성은 후순위로 생각했었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의료진들이 1순위로 자궁내막증 가능성을 의심해 본다. 이러한 점에서 자궁내막증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크게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과거 자궁내막증의 진단은 주로 복강경을 통해 이뤄졌다. 하지만 최근 초음파, CT, MRI 등 영상 촬영 기법이 글로벌 가이드라인에서 권고됨에 따라 두 방법 중 환자 상황에 맞는 진단 방법을 임상의가 선택하는 추세로 변화하고 있다. 이런 영상 촬영이 자궁내막증 진단시에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된 점도 크게 작용했다.

그는 "자궁내막증 진단에서 '표준법(Golden standard)'으로 여겨져 온 복강경 검사가 잘못됐다는 말은 아니다. 이제는 영상 진단으로도 자궁내막증 진단을 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라며 "자궁내막증 의심시에 진단을 위해 복강경 수술과 전신 마취를 권유하면, 환자들은 부담을 느낀다. 수술 자체를 싫어하는 환자들이 많아서 결국 진단과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진료 지침 변화를 통해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이 높아졌고, 영상 진단 후 약물 치료 급여가 가능해지면서 약물 치료 등을 빠르게 적용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나 교수에 따르면, 자궁내막증 진단에 활용되는 영상 진단 기계의 민감도와 특이도가 약 90% 이상 수준으로 확인되고 있다. 다만, 영상 진단도 한계점도 있다. 혹이 항상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영상 진단에서 혹이 보이려면 어떠한 덩어리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만약 자궁내막증 병변이 배 안에 얇게 고여 있어서 덩어리를 만들지 않으면 아무리 초음파나 MRI를 이용해도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경우에는 복강경 검사가 필요할 수 있다.

자궁내막증 관리 접근법. 과거(a)와 달리 다양한 경우(b, c, d)의 경우에 맞춰 진료가 진행된다. / 사진 제공=대한자궁내막증학회
자궁내막증 관리 접근법. 과거(a)와 달리 다양한 경우(b, c, d)의 경우에 맞춰 진료가 진행된다. / 사진=대한자궁내막증학회

한편, 최근 자궁내막증의 치료에도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었다. 환자의 증상 완화에 효과적인 약제들이 개발되고, 그에 더해 임신 계획 등 환자가 처한 상황에 따른 맞춤 치료가 이뤄지기 시작한 것이다. 글로벌 가이드라인은 자궁내막증 약물 치료로 디에노게스트(오리지널의약품 비잔) 등 황체호르몬 제제, 경구피임약, 생식샘자극호르몬방출호르몬 작용제 등을 사용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이 중 프로게스틴 성분인 디에노게스트 제제는 자궁내막증의 통증 개선 효과뿐만 아니라 장기간 안전성과 내약성 측면에서 이점이 있다는 점에서 국내 의료 현장에서 활발히 처방되고 있다.

나 교수는 "자궁내막증으로 인해 콩팥(신장) 한 쪽을 절제한 내원 환자는 매번 고통으로 진료실에 들어올 때 항상 울면서 들어와서 걱정이 많았다. 실제로 비잔 등 디에노게스트 제제를 복용하고 나서 한 두 달 이내로 '너무 편하다', '안 아프다'고 웃으면서 말하는 걸 보니, 환자들의 상태에 맞는 약제가 존재하고 차선으로 선택할 약제의 존재 유무가 중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나 교수에 따르면, 과거에는 환자가 자궁내막증으로 진단받으면 처음부터 수술을 하고, 이후에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을 차단하는 주사제를 처방하거나 황체호르몬 제제 등의 약제들을 써서 억제하다가 재발되면 다시 수술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하지만 최근에 와서는 임상의들은 자궁내막증 환자들에게 '개인 맞춤식 치료'로써 각 환자가 처해 있는 상황, 특히 향후 '임신 계획'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수술 후 나이가 젊은데도 폐경 상태가 돼 버릴 수 있어 여성의 '가임력 보존(Fertility preservation)' 차원에서 자궁내막증에 대한 수술은 평생 동안 1회 미만으로 하자는 주장과 함께, 임신 계힉 중에는 호르몬 치료를 이어가자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이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난소의 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사람은 체내에 가지고 있는 난자의 숫자를 반영하는 'AMH 수치(anti-Mullerian hormone)'가 낮게 나타났다. 다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궁내막증 수술 후 평균 AMH 농도가 약 38% 정도 감소했고, 난소 조직의 손상과 난포의 소실이 확인됐다.

 

학회가 최근 개발한 진료지침은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

나용진 교수는 자궁내막증 관련 대표 글로벌 지침인 '유럽생식학회(European Society of Human Reproduction and EmbryologyㆍESHRE)' 가이드라인을 국내 실정에 맞게 개발한 후 배포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대한자궁내막증학회가 개발한 진료지침은 단순하게 유럽생식학회의 지침을 반영하는 것을 넘어, 보험제도 등 우리나라의 실정을 고려해서 의료진들이 진료할 때 실질적으로 참조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회를 구성하고 있는 전문가들이 모두 감수에 참여했고, 내용을 연독하는 방식으로 감수했다"며 "진료지침은 포켓 사이즈로 만들어서 의료진들이 가운에 넣고 언제든지 참조할 수 있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이 진료지침에는 권고 수준도 포함돼 있다. 권고 수준은 근거 수준에 따라 가장 높은 A단계부터 가장 낮은 D단계까지로 구성된다. 나 교수는 이 지침을 올해 대한산부인과학회지에 게재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막바지 작업을 진행 중이며, 오는 3월 17일 부산 벡스코 학회에서 참석자들에게 무료로 배포할 예정이다.

 

학회 설립 10주년을 맞아 준비하고 있는 행사를 소개해주신다면?

나용진 대한자궁내막증학회 회장이 자궁내막증 교과서를 소개하고 있다. 
나용진 대한자궁내막증학회 회장이 자궁내막증 교과서를 소개하고 있다. 

2014년 1월 26일 창립된 대한자궁내막증학회는 올해 가을 1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나용진 교수는 "이번 10주년 기념 학술대회 때는 자궁내막증 관련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는 동남아 등 외국 전문가들을 초청해 학회의 규모를 조금 더 늘려보고자 한다"며 "외국 연자를 초청하는 만큼 10주년 행사가 올해의 제일 큰 학회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아울러 학회는 10주년 행사 시기에 맞춰서 자궁내막증학회 교과서의 두 번째 판 개정본을 발행한다. 자궁내막증학회 교과서 첫 번째 판 발행 이후 7년 만이다. 나 교수는 "이번에 발행될 교과서에는 진단과 치료 패러다임 전환 등을 비롯해 다양한 변화 내용이 포함될 것"이라며 "이전 버전과 큰 틀은 비슷하되, 세부 내용이 달라진다. 자궁내막증 치료 파트에는 내과적 약제 및 외과적 치료 중에서 과거에 비해 바뀐 내용들이 주로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또 학회는 '자궁내막증의 달'인 3월에 질환 홍보 포스터를 제작해 병ㆍ의원에 배포해 국민 인식 제고에 나설 예정이다. 더불어 학회 홍보위원장인 이사라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교수가 오는 3월 의학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질환 홍보에 나설 계획이다.

 

국내 자궁내막증 환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신가요?

"자궁내막증은 가임기 여성에서도 생기지만, 폐경 때도 지속되거나 폐경 무렵에 새로 생기는 경우도 있고, 아주 어린 아이들이나 10대 초반 환자 등 어느 연령에서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평생 관리라는 말이 나오는 게 바로 이 때문입니다.

환자들이 아프면 혼자 참지 말고, 적극적으로 진료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통증이 있어도 혼자 약을 먹는 등의 방식으로 대처하면 진단이 늦어지고, 결국 임신 가능성이 떨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환자들이 조기 진단이 가능할 수 있게 자궁내막증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산부인과를 방문해보시면 좋겠습니다. 학회 의료진들도 환자들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계속 노력해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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