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尹케어에 묻는다 | 유전성재발열증후군

안종균 세브란스병원 어린이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급여 적용으로 환자, 보호자 삶의 질 개선해야”

며칠간 수 차례 고열이 오르내린 아이의 피부는 우둘투둘해진다. 열꽃인줄만 알았는데, 유전자 이상이라고 한다. 알고 보니 우리 나라에 몇 명인지 파악조차 안되는 병이라고 한다.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 의료진도 애를 먹는다. 

가상으로 꾸민 이야기이지만, 현실에서 이 병의 보호자들은 거의 동일한 모습으로 오늘도 불안에 떤다. '유전성재발열증후군'이라는 희귀한 병인데, 국내에는 아직 치료제도 마땅치 않고, 희귀약센터를 통해 '직구'를 해야만 약을 받을 수 있다. <끝까지 HIT>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어린이병원 소아청소년과 안종균 교수와 해결책을 찾아본다.

[끝까지HIT 8호] 유전성재발열증후군은 유전자 이상으로 염증이 조절되지 않는 희귀 자가염증질환으로 △크리오피린 관련 주기적 증후군(CAPS) △종양괴사인자 수용체 관련 주기적 증후군(TRAPS) △고면역글로불린 D증후군(HIDS) △메발론산 키나아제 결핍증(MKD) 가족성 지중해 열(FMF) 등을 모두 가리키는 말로 평생 질환 관리가 필요하다.

큰 카테고리에 묶여 있지만, 이들의 증상은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CAPS는 추운 온도에서 증상이 짧게 나타나거나 열을 동반한 두드러기 모양의 발진, 청력 상실, 관절 변형이 나타난다. FMF는 홍반과 복통, 가슴 통증이 있고 증상이 12~72시간 간격으로 비교적 짧은 주기로 나타난다. TRAPS는 발진이 심해 피부과 치료를 고민할 정도며, 눈이 아프고 증상이 7일 이상 장기간 지속된다. MKD이나 HIDS는 복통과 함께 설사, 구토가 나타나고 예방접종이나 감염 등 외부 자극이 있을 때 증상이 더 오래 지속된다.

특히 유전성재발열증후군은 주로 영유아기에 발생해 이유 없는 발열, 발진 등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증상이 장기화될 경우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근골격계 이상, 아밀로이드증, 청각 상실 등의 합병증을 유발하고 심하면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안종균 교수는 “일반적으로 생후~10년 내 질병이 발생하는데, 발열이 생겼다가 또 사라지는 기간이 있기도 하고, 발열이 사라진 주기에는 특별한 이상을 보이지 않을 때도 있어 진단이 쉽지 않다"고 밝혔다.

진단이 쉽지 않은 이유는 영유아기는 열이 자주 나다 보니 해열제를 복용하게 하고 다른 질환을 의심하지 않고 넘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신생아나 유아가 이유 없이 39도 이상의 열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면서 피부에 두드러기 같은 붉은 발진이 일어나는 경우 그리고 근육통, 관절염, 복통 같은 통증을 동반하는 경우 유전성재발열증후군을 체크해야 하는데, 이른바 '열꽃' 등의 이유로 열 이외 다른 증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 영유아기에 발열 증상이나 붉은 발진이 나타났다 특별한 이상 없이 사라지기 때문에 진단이 쉽지 않다.

피부 발진 등의 증상이 나타나도 피부과적으로 진찰해 진단이 미뤄지는 경우도 많다. 다른 질환 증상과 비슷하기 때문에 조기 진단이 어렵고 매우 희귀한 질환이라 진단을 어렵게 한다. 증상을 앓는 이를 겪어본 적이 없기에 의사 역시 다른 질환과 혼동할 수 있다. 의심 증상이 있다면 소아면역질환 전문가나 소아류마티스 전문의 등과 상의해보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이 같은 난점으로 인해 유전성재발열증후군 환자는 치료가 지체돼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면서 증상이 악화되는 경우까지 많다. 그나마 가족력이 있다면 의심할 수 있지만, 가족력이 없는 경우에도 발병할 수 있는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안 교수의 설명이다.

의료진의 경우 발열 증상 지속기간이나 빈도, 발진의 유무와 형태 등 증상을 통해 진단할 수 있는데, 정확한 진단을 위해 혈관 속 염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지표인 ‘C-리액티브 프로틴(C-reactive protein)’ 수치와 적혈구 침강 속도 및 유전자 검사를 병행해 진단할 필요성도 있다.

당장 1차 치료제도 못 구하는데…
허가 8년차 신약은 ‘언감생심’

현재 나와 있는 유전성재발열증후군의 치료법은 ‘인터루킨-1베타(IL-1β) 차단제’를 사용한다. 유전자 이상으로 면역체계가 해당 물질을 과다 생성해 발생하는 질환이기 때문에 IL-1β가 수용체에 결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전의 치료제가 한국노바티스의 ‘일라리스’와 암젠의 ‘키너렛’ 등이다. IL-1 수용체와 IL-1β의 상호작용을 차단하고, IL-1β 유도 유전자 활성화 및 염증 매개체 형성을 방지하는 역할이다.

문제는 이들 약제를 사용할 수 있는 치료환경이 너무나 열악하다는데 있다. 특히 질환별 치료환경의 차이도 큰 편이다. CAPS는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해 ‘키너렛’을 입수해 치료받는 이들이 있다. 120여명에 불과하지만 환자들 역시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또다른 치료제인 일라리스는 이들에게 급여가 요원한 상황이다. 이들에게는 치료제가 있는지, 없는지는 치료에 큰 영향을 준다. 치료제가 있으면 질환에 대한 의료진의 인지도가 올라가고, 이로 인해 환자들이 치료방법이 없어 포기하고 병원을 찾지 않는 경우가 줄어든다고 한다.

일라리스는 8주 1회 복용이라는 장점 등으로 주목받지만, 연간 약제비가 8000만원에서 1억원에 달할 만큼 고가에 해당한다는 점 등이 결정을 어렵게 하는 이유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임상적으로 그 가치는 입증받은 것이 사실이다.

일라리스 150mg를 투여한 CAPS 환자를 대상으로 8주 간격으로 피하주사한 임상 결과를 보면, 투여자 중 97%(35명 중 34명)가 오픈라벨 기간 동안 1회 투여로 8주 이내 완전 관해를 달성했다. 위약 대조 기간 중에서도 해당 약을 8주 간격으로 투여한 환자군 전원(15명)이 6개월 이상 완전 관해를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타국에서 1차 치료제로 사용 중인 ‘콜키신’에 내성을 보이는 환자 중에서도 FMF 환자 중 61%, HIDS/MKD 환자 중 35%, TRAPS 환자 중 45%가 완전 관해를 보이기도 했다.

더욱이 CAPS를 제외한 질환은 극희귀질환인 만큼 현재는 일라리스 외에는 직접적인 치료방법이 없다. 이 때문에 의료진 역시 대증적 치료를 하거나 치료반응이 충분히 나타나지 않는 1차 치료 실패 이후 예후가 나빠지는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더욱이 1차 치료제인 ‘콜키신’의 경우 국제 가이드라인에서 FMF 치료의 1차 치료에 사용할 수 있다고 권고했지만, 국내에서는 통풍 치료에만 급여등재돼 있어 비급여 상태로 환자가 모든 부담을 지어야 한다. 관련 학회가 콜키신의 급여 확대를 신청한 상황이라는 점이 그나마 다행처럼 여겨질 정도다.

안종균 교수는 “콜키신의 치료에도 일부 환자는 치료반응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는데, 이럴 때 치료제로 권고하고 있는 것이 ‘일라리스’이지만 급여가 되고 있지 않아 사실상 콜키신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 환자들에게는 다른 치료옵션이 없다”며 “이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되면 지속적인 염증 반응으로 인한 아밀로이드증으로 신부전 등 여러 장기가 기능을 상실할 수 있는데, 실제로 콜키신 치료 중 사망한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며 치료제들의 급여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안으로 여겨지는 키너렛 역시 투약이 쉽지는 않다. 단순히 희귀필수의약품센터를 통해 구입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공급을 해야 하는 품목이 아니라서 수급이 어려운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더욱이 매일 피하주사를 집에서 맞아야 하는 자가 투여 환자와 그 가족들은 체중에 맞게 용량을 조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그나마 공급이되는 일라리스를 두고 환우들의 요청은 이어지고 있다. 올해만 봐도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국민신문고에 글을 올려 어려움을 호소했다. 결국 올해 국정감사에서 강중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이 급여등재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지만 이후 논의 내용은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다.

공식통계 자료도 없는 초희귀질환
“정부 보장성 강화 보여달라” 호소도

안종균 교수
안종균 교수

안 교수는 단순히 이번 사안이 어떤 특정 약제가 아닌 관련 질환 전반의 이해도 향상과 함께 보장성 강화라는 정부의 정책기조가 실효성을 거둘 수 있는 하나의 단초가 돼야 한다고 전한다.

실제 TRAPS와 HIDS/MKD는 아직까지 국내 발병률을 다룬 정확한 통계자료가 없다.심지어 질병관리청 희귀질환 등록의 경우 역시 TRAPS는 2023년에야 등록됐고, HIDS/MKD는 2024년 예정이다

치료 과정에서도 TRAPS와 MKD 환자 치료에는 근본적인 치료에 사용할 수 있는 약제는 없고, NSAID나 스테로이드를 이용해 일시적인 대증 치료만 가능하다. 그럼에도 부작용, 효과, 합병증 등을 고려했을 때 장기간 사용할 수 없다. 발병 시기가 소아임을 생각한다면 쓸 수 있는 약은 더욱 제한적이다.

앞서 이야기한 콜키신 역시 제한이 크다. 공식 환자의 수도, 치료제도 없는 지금의 상황은 결국 제도 개선을 위해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안종균 교수는 “이번 정부 들어서 소아 희귀질환 보장성 강화를 위해 제도가 개선된 것으로 알고 있다. 소아청소년과 의료진 입장에서 매우 환영할 만한 소식이었다”며 “그런데 그 제도가 개선된 지 시간이 꽤 지났는데, 아직까지 이 성과가 보이는 약제는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제도 개선이 말뿐이 아니려면 결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아 치료는 성인의 치료와 또 다른 관점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어렸을 때 진단을 제대로 빨리 받고 그 이후에 치료를 잘 받으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사실 이 사람의 한 평생의 삶이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라며 “모든 질환이 그렇겠지만 소아 희귀질환은 아이의 질병으로 온 가정이 다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아이의 치료 예후와 삶의 질 개선이 가족 모두의 삶의 질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안 교수는 “유전성재발열증후군의 경우도 단순히 열만 나는 것이 아니라 이 질병으로 인해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후유증, 거기에다 치료 방법이 없다는 좌절감이나 혹여 있다 하더라도 온 가족이 매달려야 하는 고통 속에 사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며 “관련 약제의 급여를 통해 환자뿐만 아니라 환자 가족들의 삶의 질까지 개선될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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