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尹케어에 묻는다 | 유전성 혈관부종(HAE)

아파서 병원에 왔는데, 정작 의사와 싸워야 하는 질병이 있다. 흔히 듣기 어려운 '유전성 혈관부종(HAE)'이다. 의료진마저 사례를 많이 보지 못한 만큼 아픈 이는 병과 함께 혹여나 잘못 되지 않을까, 의사의 판단과도 싸워야만 한다. <끝까지 HIT>는 그 지난한 과정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의료진과 환자의 이야기를 전한다.

[끝까지HIT 7호] 유전성 혈관부종(Hereditary Angioneurotic EdemaㆍHAE)는 'C1-에스터레이즈 억제제(C1-esterase inhibitor·C1-INH)'의 유전적 결함에 의해 반복적인 혈관부종이 발생하는 희귀질환이다. 약 5만~15만명당 1명 정도로 발병하는데, 안면부를 비롯해 사지말단·위장관 점막·상기도 등 다양한 곳에서 발병한다. 호흡기에 부종이 생길 경우 기도가 막히고, 위장관 부종이 발생해 장폐색으로 이어질 수 있다.

HAE의 특성상 일반 알레르기와 구별이 어려워 정확하게 병을 파악하는 것도 의사에게 쉽지 않다는 점, 4분의 1은 유전적 요인이 아닌 이른바 신행 돌연변이 증상이 나타나는 점, 단순 유전적 변이와 증상의 정도가 다르다는 점으로 인해 자신이 환자인지도 모르는 이들도 있다.

HAE환우회 민수진 회장
HAE환우회 민수진 회장

한국HAE환우회 민수진 회장이 이 병을 처음 알았던 때는 12살이었다. 얼굴이 심하게 부은 그가 찾아간 곳은 지역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 하지만 어떤 검사를 해도 부종의 원인을 알지는 못했다. 이후 그가 배운 것은 '극복하는 법'이었다. 증상이 있어도 무슨 병인지 알지 못하니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통증과 부은 몸을 숨기며 30여년을 살았다. 주변의 만류에도 일을 해왔던 것은 가족을 위해 사회생활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앓고 있는 질환에 대한 해답을 얻은 것은 그의 아픔을 걱정하던 직장 동료 덕분이었다. 힘들어하는 민 회장의 모습을 보며 그는 한 내과의를 소개했다. 여기에는 자신의 아이가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던 탓도 있었다. 병원을 찾은 그에게 의사는 기억을 더듬으며 이야기했다. '예전에 공부했던 질환 중 유전성 혈관부종인 것 같다'는 것이었다.

인턴 때 시험에서 몇 줄 나올까 말까 한 내용이라는 말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그를 더욱 답답하게 한 말은 그 뒤였다.

 

내가 지금 당신에게 줄 수 있는 약이 없다.

평생 병의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던 그는 인터넷을 검색했다. 병의 이름은 알았지만 검색 결과 역시 같았다. 이름을 알기 전이나 상황은 다를 바 없었다. 의사들마저 희귀한 병이기에 병과는 관계되지 않는 불필요한 검사 등을 하는 사례도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 HAE를 앓고 있는 이의 경우 부종의 발병 위치가 다양하지만, 의료기관에서는 정작 원인을 모르니 다른 조치를 취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후두가 부어올라 결국 기도 삽관마저 어려워 호흡을 확보하기 위한 절개술로 목에 흉터가 난 이도, 배가 부어올라 멀쩡한 배에 소위 충수염 수술(맹장수술) 을 받는 이도 흔할 정도다.

병을 모르는 이는 불필요한 검사를 수 차례나 받기도 한다. 최악의 경우 질병을 잘못 알아 명을 달리한 이도 있다.

HAE 환우 중에는 후두부종으로 호흡을 위해 절개를 한 자국이 있는 이가 꽤 많다. / 사진=HAE환우회
HAE 환우 중에는 후두부종으로 호흡을 위해 절개를 한 자국이 있는 이가 꽤 많다. / 사진=HAE환우회
얼굴 부위의 부종 역시 HAE 환우에게 자주 나타나는 증상 중 하나다. / 사진=HAE환우회
얼굴 부위의 부종 역시 HAE 환우에게 자주 나타나는 증상 중 하나다. / 사진=HAE환우회

 

우스갯소리지만,

병을 알게 된 이후 의사와 더 잘 싸울 수 있게 됐어요.

민 회장은 "아이가 초등학교 때 (부종으로) 병원에 실려 갔다가 '이상하다'며 병원을 옮기고 그 곳에서 '복수가 가득 찼다'며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 때 '그 병이 아니다. 며칠 지나면 호전된다'고 말을 했다가 의사가 '잘못되면 엄마가 책임질 것이냐’라고 말하면서 싸우고 난리가 났었다. 결국 사흘을 기다려달라고 했는데, 실제로 내려가니 의사도 할 말이 없어진 상황도 벌어지기도 했다"며 자신의 경험을 회상했다.

실제 환자 중 약 3분의 2는 사춘기 이전에 증상이 나타난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힘듦을 겪었던 그가 결국 환자를 모으게 된 것은 아들 역시 같은 병을 겪고 있음을, 그리고 위험한 고비를 여러차례 겪으면서부터다. HAE의 경우 상염색체 우성 유전질환으로 부모 중 1명이 유전자 변이가 있으면 유전 확률은 50%선으로 알려져 있다. 해외 사례에서는 HAE 환자의 가족력은 75% 수준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민 회장은 "내 평생 (HAE를) 본 적이 없다 하니 '세상에 나와 이 아이만 (질병이) 있나보다'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병(의 이름)을 알고 '환자가 있기는 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병명을 알고 난 뒤 아이의 병이 점점 심해졌다"며 "초반에는 얼굴과 손발만 부으니 학교를 다니면서 조퇴와 결석을 번갈아 하다가 나중에는 복수가 차고 구토에 기절하는 경우까지 생겼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중학교 1학년 때 기도를 막는 후두부종이 왔고, 두 번째가 됐을 때에는 생명이 위급한 상황까지 찾아왔다. 약이 없음을 알면서도 혹시 몰라 상관이 없는 '에피네프린(기관지확장제)'까지 맞기도 했다. 그 때 처음으로 증상을 경감하는 '피라지르(성분 이카티반트아세테이트)'를 알게 됐다.

 

후회했어요. 왜 이제야 내가 이 약을 알게 됐던 걸까?

가라앉힐 수 있는 약이 있다는 것을...

민 회장은 제품을 허가받았다는 회사의 한국지사로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제약사에서 돌아온 답은 '한국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였다. 보험급여 협상이 되지 않아 국내 출시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민 회장은 혹여 진료를 위해 서울대학교병원에 연락했다. 알레르기내과에서 유전성 혈관부종 진료가 가능하다는 까닭에서였다.

아직 나이가 어려 먼저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받아야 한다는 간호사에게 민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유전성 혈관부종이라고 전해 달라."

그렇게 만난 국내 전문가인 강혜련 교수는 진료를 시작했다. 강 교수는 진료를 마친 뒤 한마디를 남겼다. "이게 (HAE가) 맞네요. 고생하셨네요." 그리고 두 사람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국에서 피라지르를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데 뜻을 모았다. HAE환우회의 시작이었다.

 

정말 반가우면서도 슬펐어요.

서로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잖아요.

민수진 회장
민수진 회장

현재 60명가량 참여하고 있는 환우회이지만, 그는 이 병을 앓는 더 많은 이들이 환우회로 오기를 소망하고 있다. 국내에서 고생하는 이가 약 200명이 있다고는 하지만, 가입은 3분의 1 수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희귀질환이고 유전성이며 평생 짊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환자가) 정신적으로 무너지는 경우가 많은 데다가, 젊은 이들의 경우 앞으로 결혼과 출산 등을 앞두고 있는 만큼 국제적으로 정해진 병명에 '유전성'이 들어가 있어서 이 병을 지니고 있음을 공개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측면도 있는 탓이다.

그럼에도 환우회는 새로운 희망을 보고 있다. 현재까지 국내에 허가받은 유일한 예방약인 '탁자이로'의 사용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HAE의 치료를 위해서 는 부족한 C1-INH를 보충하거나 브라디키닌 억제제를 통 해 C1-INH 발현 억제를 막는 방법이 쓰인다. 앞서나온 피라지르는 어찌보면 증상을 개선하는 '응급 처치'에 지나지 않는다.

일상적인 예방약으로 나오는 제품은 지난 2021년 한국다케다제약이 허가받은 '탁자이로주(성분 라나델루맙)'가 유일하다. 하지만 급여 등의 문제로 출시는 요원한 상황이다.

12세 이상에게 쓸 수 있어 초기 병증을 맞는 이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약이지만, 국내에서는 희귀필수의약품센터에서 약을 구하는 것 말고는 사용할 수도 없는 데다가 구입 금액 마저 높아 환자의 사용이 쉽지 않다.

서울대병원 알레르기내과 강혜련 교수
서울대병원 알레르기내과 강혜련 교수

국내에서 해당 분야 전문가인 강혜련 서울대병원 알레르기내과 교수는 "국내 치료제 접근성과 검사 등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며 "HAE를 진단하기 위해 혈청 C4 농도 및 C1 억제제의 양과 활성도 등 3가지를 검사하는데, C4 농도 이외의 검사가 비싼 데다가 2번째 검사 이후에는 건강보험도 적용되지 않는 상황이다. 유럽 등은 3가지 검사는 의사 판단에 따라 진행되면 모두 급여가 적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치료제의 경우 미국에서는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인지도가 높지만 국내의 응급 치료제는 10년 이상 늦게 도입된 것이 현실이다. 강 교수는 "현재 유전성 혈관부종 치료제의 급여 상황 을 보면, 혈관부종 증상이 발현하면 그 때 사용하라는 의미와 다름이 없다. 환자는 증상을 겪어야 하고, 언제 증상이 발현할지 몰라 불안해하고 있어 예방요법이 필요하다"며 "HAE로 인한 증상은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붓는 증상만 해소된다면 완전히 정상적인 생산성을 가지고 일상생활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이어 "예방약의 경우 예상 환자부담액은 투여남발이 우려되지 않는 정도"라며 "꼭 필요한 환자들 만큼은 충분히 지불할 수 있는 선에서 금액이 형성되면 그 우려가 사라질 수 있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정부의 전향적 태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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