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영 성균관대 약대 교수 "민감도 분석 수행·보수적 접근 노력"
경제성 평가 보완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편익 산출 도구 도입 필요

최근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으로 인한 질병 부담과 이 환자에서 기존 치료제를 '엔허투'로 대체할 경우 기대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편익에 대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국민건강보험 청구 데이터를 기반으로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분야에서 처음 이뤄진 연구다.

우리 사회의 손실과 신약 치료가 가져올 수 있는 사회경제적 가치가 급여 평가과정에서 어떻게 반영될 수 있을지, 사회적 요구도가 높은 신약들의 급여적정성 검토를 위해 어떤 보완책이 필요한지를 연구에 참여한 약물역학 전문가인 신주영 교수(성균관대 약학대학)에게 들었다.

 

최근 약학회지에 게재된 허투(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질병 부담 분석 연구와 엔허투 사회경제적 편익에 대한 연구에 참여했는데요.

"신약 도입으로 사회경제적 부담을 추정한 연구들을 보면 목표 질환의 치료로 발생하는 직접 비용과 간접 비용을 추정한 연구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골절 예방 신약이 도입된다고 하면 현재 골절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의료비를 사용하고 있는지 추정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도입되는 신약으로부터 생존 기간이 얼마나 연장되고, 이를 통해 어느 정도의 편익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연구였다. 구체적인 방법론을 참고하고자 많은 연구를 찾아보았지만, 유사한 연구나 정립된 방법론이 많지는 않았다.

여러 고민 끝에 유방암 전문 교수님에게 해당 연구에 관심이 있는지 문의했고, 답변에서 '유방암을 보는 의사로서 평생 만나보기 어려운 신약'이라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약제 도입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편익을 학술적으로 규명하는 것에 한 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방암을 보는 임상의사, 경제성 평가 경험이 많은 약물경제학자와 함께 팀을 이뤄 연구 방향성을 잡기 시작했다. 또 약물역학 분야의 장점을 살려 '리얼월드데이터(RWD)'에서 무진행생존기간(progress-free survivalㆍPFS)을 추정하는 과정, 또 여기에 임상시험 값을 대입하는 과정을 융합해 연구를 진행했다."

 

다른 질환이나 치료제 대비 전이성 유방암에서 특징적인 결과가 있었나?

"경제적 비용을 추정한 기존 연구의 한계점은 직접 의료 비용만 산출하고 사람들이 질환에 걸려 일을 하지 못해 발생하는 비용, 여성의 경우 가사 노동을 하지 못하거나 엄마의 부재가 가정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서는 추정을 하지 못한 것이다.

반면, 이번에 진행한 연구는 직접 의료 비용이 아닌, 환자가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거나 가정을 유지하지 못하면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모두 포함해서 추정하려고 했다. 주로 여성의 암인 유방암이 연구 대상 질환이기 때문에 더 이런 방법을 택한 것도 있다. 혁신신약 카테고리에 있는 치료제인 만큼 새로운 접근이 필요했다."

 

연구 결과에 대해 설명해달라.

"진행한 연구는 총 2가지다. 첫 번째 연구는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환자의 조기 사망으로 인한 질병 부담에 대한 연구다.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은 암 중에서도 환자 생존기간이 짧으며, 대부분 40~50대에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연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여성들이 보통 80대 중반까지 생존한다고 가정했을 때,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환자들은 조기 사망으로 36년 정도 더 살 수 있는 기회를 잃는다. 이를 잠재수명손실연수(Years of Potential Life LostㆍYPLL)라고 한다.

또 여성들이 65세까지 노동이나 이에 상응하는 활동을 할 수 있다고 가정했을 때,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환자들은 15년 더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잃는다. 이를 잠재생산수명손실연수(Years of Potential Productivity LostㆍYPPLL)라고 하는데, 돈으로 환산하면 인당 약 26만달러, 원화 기준 인당 3억원 정도다.

여기에는 유방암 환자 생존의 사회적 가치, 즉 엄마의 부재가 가정 안녕에 미치는 영향은 반영되지 않았다. 만약 이러한 사회적 가치가 반영된다면 환자의 조기 사망으로 인한 생산성 손실은 더욱 커질 것이다.

두 번째 연구는 기존 치료제 대비 신약 사용의 사회경제적 편익을 추정한 연구다. 신약 임상 데이터와 비교약에 대한 RWD 2가지를 합성해 추정했다. 신약 임상 데이터에는 아시아인 환자의 데이터가 대거 포함돼 있었고, 질병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 기간인 PFS를 유방암 환자들이 사회에 돌아와 일할 수 있는 기간이라고 봤다.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환자의 연령별 PFS 중앙값을 분석한 결과, 40대 환자가 신약 치료를 통해 34.2개월을 질병 진행 없이 생존했다. 즉 자녀를 양육하는 40대 유방암 환자가 치료를 통해 약 3년은 일상적인 엄마의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의미다. 연구 대상 신약은 PFS를 비교약 대비 3배 이상 연장했다. PFS는 질병이 진행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하기에 실제로는 환자들의 생존기간이 더 길 것이라고도 추정할 수 있다.

국내 건강보험 청구 데이터에 대입해 기존 치료제를 '엔허투'로 대체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편익을 분석한 결과, 엔허투는 기존 치료제 대비 환자들의 무진행생존기간 중앙값을 최소 16.3개월(65세 이상, 23.4개월 vs. 7.1개월)에서 최대 28.6개월(30대, 41.1개월 vs. 12.5개월) 연장시켰으며, 이에 따른 사회경제적 편익은 환자 1인당 평균 1억18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건강보험 청구 데이터에 대입해 기존 치료제를 '엔허투'로 대체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편익을 분석한 결과, 엔허투는 기존 치료제 대비 환자들의 무진행생존기간 중앙값을 최소 16.3개월(65세 이상, 23.4개월 vs. 7.1개월)에서 최대 28.6개월(30대, 41.1개월 vs. 12.5개월) 연장시켰으며, 이에 따른 사회경제적 편익은 환자 1인당 평균 1억18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약 치료의 사회적 편익 추정을 위해 유급 노동의 가치를 장기적 무진행생존기간, 월별 유급노동 시간, 여성 고용률, 경제활동 복귀 확률, 환자 작업 능력으로 계산했다. 유방암 환자들이 사회에 복귀했을 때 생산성이 떨어질 수 있는 점까지도 최대한 보수적으로 가치를 추산하려고 노력했다. 가사 노동, 자녀 양육 등 무급노동의 가치는 장기적 무진행생존기간과 월별 무급노동 시간, 환자 작업 능력으로 추산했다.

40대만 보았을 때, 유급노동 및 무급노동을 고려한 신약 치료 사회경제적 편익은 인당 1억원 정도의 가치를 지닌다. 이는 첫 번째 연구에서 인적자본 접근법으로 추산한 3억원보다 훨씬 적은 수치다.

해당 연구에서는 사람들이 보통 65세까지 산다고 가정해 계산했고, 두 번째 연구에서는 40대의 PFS 중앙값인 34개월이라는 수치를 가지고 보수적으로 환산했기에 차이가 있다. 대상 질환인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이 예후가 나쁜 유방암이기 때문에, 과대 추정을 방지하기 위해 이와 같이 보수적으로 추정하는 것이 맞다고 결론을 내렸다."

 

기존 연구와 달리 무급노동까지 포함됐다. 방법론 측면에서 가장 주요하게 고려한 부분은 무엇인가?

"가장 고려한 것 중 하나는 유방암의 특징을 최대한 반영하자는 것이다. 유방암은 여성에서 생기는 암이다 보니 사회경제적 가치에 가사 노동이나 자녀 양육 등 무급노동까지도 적절히 반영하려고 했다.

또 연구의 결과를 과대 추정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이번 연구를 대한약학회지에 투고했는데, 심사에 참여한 약물경제학 전공 교수님들이 리뷰를 굉장히 열심히 해 주었다.

해당 신약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기 때문에 결과가 과대 추정되지 않도록 더 신중을 기해서 검토했던 듯하다. 특히 민감도 분석을 많이 하라고 요구했고, 무급노동 가치 환산시 생활시간 조사 결과를 활용하고, 무급노동 행위별 시간을 각각 반영하는 전문가대체법을 활용하라고 제언했다.

보수적인 추정을 위해 지수모델(Exponential Model)을 사용했는데, 어떤 모델을 적용하느냐에 따라서도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이렇듯 다양한 민감도 분석을 진행하며, 연구가 자칫 신약에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했다.

신약의 가치에 대한 연구를 하다 보면 신약에 대해 유리한 근거를 만들고 싶어진다. 연구 심사자분들이 이 부분을 많이 견제해 줘서 객관적인 연구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고 본다. 사실 논문 출판시 이런 동료 심사(Peer Review)는 아무런 대가 없이 이뤄진다. 심사자들이 본인의 시간을 쓰며 다각도에서 검토를 잘 해줘서 너무 감사한 마음이다."

 

이 같은 질병 부담이나 약제의 사회경제적 편익 분석 연구가 약제 급여적정성 평가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나?

"약제 사회경제적 편익 분석 연구가 급여적정성 평가에 참고가 될 수 있는 좋은 모델이 되면 좋겠다. 사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입장도 이해가 간다. 재정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건보공단과 심평원에서 모든 약을 급여해주기에는 어렵다는 현실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약제 급여적정성을 판단할 때 과학적인 도구가 분명히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비용효과성이라는 것이 도입됐는데, 신약 개발 트렌드가 계속 변화하고 초고가 신약이 지속 도입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약제 경제성 평가에도 이런 부분들이 반영될 필요가 있다.

또 경제성 평가를 보완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편익 산출 도구가 도입되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단 보건경제학자와 정책 전문가, 의료 현장에 있는 임상의들의 오랜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 경제성 평가의 경우도 국내 도입을 위해 전문가들의 오랜 논의와 합의가 있었다."

 

현재 계획 중인 다른 연구가 있나?

"요즘 가장 흥미 있게 진행하는 연구는 임상시험의 외부 대조군 관련 연구다. 연구는 계속 진화하고 발전해야 한다. 연구를 평가할 때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똑같은 방식을 되풀이한 연구는 학술적 가치가 낮다고 평가되기 때문에 더 새로운, 발전된 연구를 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RWD 연구가 현실에 빠르게 반영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성균관대에서 8년여간 RWD 관련 국가 연구를 수행해 왔는데, 연구 결과가 현실에 반영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인 듯하다. 현실의 규제들로 인해 빠른 반영이 어려울 것이라 생각은 하지만, 그간 연구한 것들이 정말 연구로만 끝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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