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사 중 SI 투자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역시 유한양행 꼽아"
"단순 FI 투자도 그 자체로 어느 정도 의미 있지만 SI 투자 더욱 의미"

'바이오플러스-인터펙스 코리아 2023' 기조강연. 사진 가장 오른쪽이 김열홍 유한양행 연구개발 전담 사장.
'바이오플러스-인터펙스 코리아 2023' 기조강연. 사진 가장 오른쪽이 김열홍 유한양행 연구개발 전담 사장.

[끝까지HIT 7호] "유한양행은 앞으로 가능한 전략적 투자(SI)는 배제하고, 유망한 신약 후보물질이라면 직접 라이선스 인(License-in)하거나 지분 인수를 통해 피투자기업의 최대주주가 되는 전략을 추진하겠습니다."

김열홍 유한양행 연구개발(R&D) 전담 사장이 지난 7월 12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바이오플러스-인터펙스 코리아 2023' 기조강연에서 이같이 밝히면서 제악업계 안팎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한양행은 그동안 국내 유망 바이오 벤처에 직접 투자하는 전략적 투자자(SI)의 대명사로 꼽히는 제약사였기 때문이다.

SI 투자로 대표되는 유한양행의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전략은 유망 파이프라인(신약 후보물질)을 직접 도입(L/I)하거나 해당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바이오 벤처를 인수합병(M&A)하는 방식으로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국내 제약업계 매출 부동의 1위인 유한양행의 이같은 전략 수정은 다른 제약사들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오픈 이노베이션의 일환으로 지난 10여년간 적극적으로 SI 투자에 나섰던 유한양행이 투자 이후 엑시트(Exit·투자금 회수)할 방법이 없음을 토로하면서 SI 투자의 어려움이 직간접적으로 수면 위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유한양행 뿐만 아니라 대웅제약, GC녹십자 등 대형 제약사와 동화약품, 동구바이오제약 등 중견 제약사들도 잇따라 SI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었던 만큼 국내 제약업계의 SI 투자에 대한 시선도 갈리고 있다. 자금력이 충분한 제약사와 상업화 성공 전까지는 항상 자금 조달 수요가 있을 수밖에 없는 바이오 벤처간의 든든한 가교 역할을 해온 SI 투자에 대한 명과 암을 <끝까지 HIT>가 들여다봤다.

 

SI 투자, 제약사에는 유용한 오픈 이노베이션 수단 
바이오 벤처에는 R&D 협업 및 기업가치 제고 발판

국내 전통 제약사의 경우 과거 제네릭(복제약) 기반이 대부분이었던 데다 신약을 개발한다고 하더라도 과감하게 혁신신약 개발에 투자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연구개발(R&D) 비용이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고착화된 조직 문화도 한몫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5년을 기점으로 유한양행이 적극적으로 국내 유망 바이오 벤처를 대상으로 SI 투자에 나서면서 이같은 기류에도 변화가 감지됐다. 유한양행은 현재까지 누적 기준 5000억원 이상의 SI 투자를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한양행 사옥

김현욱 현앤파트너스 대표는 "국내 제약사 중 SI 투자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역시 유한양행을 꼽을 수 있다"며 "다른 국내 제약사들과는 달리 이사회를 중심으로 한 전문경영체제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평가했다. 김 대표는 이어 "글로벌 제약사 대비 유무형 자산이 제한적인 국내 제약사들의 현실을 비춰볼 떄 최근 트렌드로 자리 잡은 SI 투자는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제약사 입장에서 SI 투자는 유망 파이프라인을 선제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다는 측면에서도 유용한 수단이다. 국내 바이오 전문 A변리사는 "피투자기업이 신약 개발 벤처인 경우 통상 혁신신약(first-in-class), 적어도 계열 내 최고 신약(best-in-class) 형태의 약물을 개발하거나 더 나아가 가장 최신의 신규 모달리티(modalityㆍ치료 접근법) 형태의 약물을 개발하고 있다"며 "제약사가 SI 투자를 단행한 신약 개발 벤처와 R&D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바이오 벤처 입장에서도 SI 투자 유치는 호재로 받아들여진다. 국내 바이오 투자 시장은 기관투자자 위주의 재무적 투자(FI)가 주를 이루는데, 해당 기술과 파이프라인에 대한 이해도가 상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는 제약사가 SI 투자를 단행한 바이오 벤처는 그만큼 기술력을 인정받았다는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령(옛 보령제약)이 SI 투자자로 나섰던 바이젠셀은 성공적으로 코스닥 시장에 입성했다. A변리사는 "피투자기업인 바이오 벤처 입장에서는 국내 제약사의 SI 투자가 자신의 기업가치(밸류)를 상승시키는 효과로 작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SI 투자가 성공적으로 귀결된 경우 바이오 벤처와의 상생도 도모할 수 있다. 김용환 진평회계법인 대표(회계사)는 "제약사의 유통 라인과 마케팅 역량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바이오 벤처가 신약 개발 등에 성공할 경우 상생을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SI 투자라고는 하지만 FI 성격 여전히 강해
협업 대상임과 동시에 단순 투자 후 엑시트 대상으로 여기기도

제약사의 SI 투자는 단기금융상품이나 부동산 등 안정적인 투자와는 결이 다르다. 피투자기업이 명확한 R&D 또는 L/O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투자금을 날릴 수 있는 위험성을 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부 제약사들은 SI 투자를 단행하지만 FI 투자 성격으로 자금을 집행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김현욱 대표는 "제약사의 바이오 벤처에 대한 SI 투자는 장기간의 시간과 적지 않은 규모의 현금이 수반되기 때문에 투자 경향, 즉 투자 대상ㆍ투자 규모ㆍ투자 방식ㆍ투자 시기ㆍ투자 목적ㆍ투자 책임 등 투자 활동 모두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일부 제약사들 중에는 SI 투자를 단순한 사업다각화 내지는 타분야로 진출하기 위한 확장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했다"며 "SI 투자를 가장한 투자 및 재무활동에만 집중해 단순 투자사와 다름없는 역할을 한 제약사들의 경우 신약 개발이나 글로벌 진출의 목적이 아닌 단지 현금을 활용해 손쉬운 돈벌이 수단으로 SI 투자를 전락시키기도 했다"고 꼬집었다.

A변리사 역시 "한국 제약사가 바이오 벤처 등에 투자하는 경우 SI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FI 측면이 더 강한 경우가 많다는 점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며 "신약 개발 벤처를 협업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엑시트 수단으로 보는 경향도 높다"고 지적했다.

특히 제약사가 SI 투자를 통해 바이오 벤처와의 협업을 도모하지만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는 점에서 SI 투자의 의미가 퇴색되는 경우도 무시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공하면 '윈윈(win-win)'이지만, 실패할 경우 '같이 망한다(lose-lose)'는 측면에서 바라볼 때 피투자기업의 R&D나 L/O 실패시 제약사와 바이오 벤처 모두 거액의 자산 손상 이슈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김용환 회계사는 "SI 투자를 단행한 제약사와 바이오 벤처는 협업을 통해 시너지를 창출해야 하지만, R&D 역량이 공유됐음에도 불구하고 시너지가 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며 "게다가 불확실성이 큰 투자이고, 투자 후 투자자의 영향력이 제한적일 수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A변리사도 "제약사와 바이오 벤처 사이에서 진정한 협업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연구자들간의 교류 등이 필수적이지만, 조직문화가 다른 회사끼리 서로 협업하는게 쉽지만은 않다"면서 "특히 제약사와 신약 개발 벤처와 같이 그 분야가 겹치는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제약사와 인공지능(AI) 기업간의 협업은 시너지가 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유한양행의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R&D 전략. / 출처=유한양행 IR 자료
유한양행의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R&D 전략. / 출처=유한양행 IR 자료

 

SI 투자, 오픈 이노베이션 활용한 간접투자 방식 '시너지'
제약바이오 산업 생태계 살리는 선순환 투자로 의미 있어

김현욱 대표는 국내 제약사 중 SI 투자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인 유한양행을 본보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SI 투자도 엄밀히 말해 오픈 이노베이션을 활용한 간접 투자 방식이라고 피력했다.

김 대표는 "국내 일부 제약사들이 펀드의 LP나 다른 금융기관을 통한 공동 투자 방식으로 SI 투자한 것과는 달리 유한양행은 직접적인 투자를 대부분 단행해 왔다"며 "단순 FI 투자도 그 자체로 어느 정도 의미가 있지만, 제약바이오 산업 생태계를 살리고 건전화하면서 선순환을 지향한다면 SI 투자가 더욱 의미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자금 조달 시장 경색과 투자자의 외면, 시대적 트렌드의 급변 등 어려운 환경 속에서 SI 투자는 분명 의미가 있다"며 "더 큰 산업 생태계 구축과 선순환 구조를 위해서는 직접 투자가 중심을 잡고 그 보완방안으로써 FI 투자가 따라와야 한다"며 "절대 본질을 훼손하는 '주객전도'가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A변리사는 "한국의 전통 제약사는 제네릭 기반이 대부분이며, 신약 개발을 하더라도 혁신신약 개발에 과감하게 투자하기 힘든 구조"라며 "SI 투자를 통해 제약사와 바이오 벤처가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너지가 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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