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하의 CLUE
"고사직전 일반약 시장, 이대로 두면 안된다"

보건복지부가 20일 한국제약바이오협회와 일반의약품 생산실적 상위 업체 7곳을 불러 모아 '일반약 물가인상 대책 회의'를 열었다는 소식에 뒷맛이 씁쓸하다. 명목상 타이틀은 회의라 못 박았지만 '물가안정을 위한 가격인상 관련 논의'를 소집의 목적으로 잡았으니 회의 자체가 해당 업체들에게는 일반약 공급 가격을 올리지 말라는 압박과 다르지 않다. 당일 회의에 참석한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복지부 측은 일반약 가격 인상을 자제하되 불가피할 경우 물가와 관련한 국민 정서가 민감해지는 시기는 피해줄 것 등을 요청했다고 한다.

소비자물가지수가 윤석열 대통령 취임 월인 2022년 5월 107.56으로 시작해 2023년 9월 112.99까지 상승했으니 물가 안정을 위한 정책적 지원 활동이 다급한 상황이라는 점은 십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2023년 9월 의약품의 물가지수는 103.05로 전체 지수 대비 한참 아래이고 등락률도 전월 대비 하락한 -0.2라는 점 등을 감안하면 복지부가 나서 이렇게 까지 할 일인가 싶기도 하다. 가격이 올라 좋아할 소비자는 없지만, 균형이 어느 정도 맞아야 압박을 받아내는 산업계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는 점에서 아쉬운 일이다.

고사 직전인 일반약 산업을 놓고 가끔은 제도적 진흥책을 진지하게 논의하는 실질적 움직임을 정부 당국이 그동안 보였더라면 오늘의 가격 통제 압박은 시비 거리에 오르지도 못했을 것이다. 2021년 기준 일반약 품목 수는 총 4807개며 생산액은 3조692억원으로 국내 의약품 총 생산액의 13.7%를 차지하는데 그쳤다. 의약분업 전후의 급변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일반약 비중은 2017년 16.8%에서 매년 하락해 최신 통계인 2021년에는 13.7%까지 떨어졌다. 오죽하면 일반약 허가를 취하하거나 성분 조성을 바꿔 건강기능식품 루트를 타려는 업체들이 생겨날까. 이른바 '못해 먹겠다'는 이런 기업 심리의 저변에는 제도적 한계점이 분명 도사리고 있다.

OEM 공급 단가가 기본 30% 인상되는 현실 앞에서 일반약 판매가를 올리지 말라는 복지부의 협조 요청에 눈치야 보겠지만 수긍하는 업체들이 얼마나 될지 불 보듯 뻔하다. 경증 질환에 대한 소비자 접근성 및 의료비용 절감 등 보건의료 정책 측면에서의 대의명분을 생각하면 하락일로인 일반약 산업의 현실은 더더욱 아이러니다. 의약분업이라는 보건의료 제도의 대변혁이 일반약 침체의 핵심 요인이었다고 정부도 인정한다면 제도적 전환 같은 진지한 논의로 그 균형점을 찾아주는 일에도 적극적이어야 한다. 그렇게만 한다면 물가관리 같은 범국민적 이슈에 어찌 화답하지 않겠는가. 산업계는 이미 △일반의약품 전담 조직 신설 △의약품 표준제조기준 확대 △전문약↔일반약 재분류 활성화 등 의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상태다.

표면적으로 복지부가 이번 시비의 빌미가 되긴 했지만, 일반약 산업 진흥에는 허가 당국인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전향적인 자세가 절대적이다. 2023년 3월 '제약바이오산업 육성·지원 종합 계획' 발표 때 처럼 '관계부처 합동'의 정신이 일반약 부문에도 적용되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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