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부설 연구소·의약품 선진화 이바지…'제약업계 역사' 그 자체
박카스·베나치오·자이데나 등 굵직한 제품 브랜딩부터 마케팅까지 맡아
창업주 3세 강정석 회장 '구원투수론' 힘받나…지속가능협의회 위원장 예정

국내 제약바이오업계의 산증인이자 국가 경제에까지 큰 영향을 끼쳤던 약업계의 '슈퍼스타' 강신호<사진> 동아쏘시오그룹 명예회장이 3일 향년 96세로 별세했다. 국내 제약기업의 신약 개발 역량 제고에 앞장서 왔을 뿐만 아니라 브랜딩 및 마케팅 분야 등 업계 내에서도 '문무를 겸비'한 이로 손꼽혔던 그였기에 그의 뒤를 이은 강정석 회장이 이끌어갈 그룹의 향배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 정도면, 제약업계 '최초' 마니아
업계를 넘어 재계 영향력까지 

고(故) 강신호 명예회장은 지난 1927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1955년 서울대 의대에서 의학석사 학위를, 1958년 독일 후라이부르크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동아제약 상무로 입사하며 제약업에 뛰어들었다. 1975년부터는 고 강중희 창업주로부터 동아제약 대표이사직을 물려받아 그룹을 이끌어 왔다.

강 명예회장은 이후 독일로부터 당시 최신 생산설비를 들여와 '스트렙토마이신'과 '페니실린' 등 의약품을 생산했다. 하지만 그는 의약품 제조 선진화와 신약 개발이 필요함을 역설해 왔다. 그 결과 1977년 기존 개발부 연구과를 제약업계 중 첫 기업부설연구소(중앙연구실)로 승격시켰고, 1988년 '우수 연구소 관리 기준(KGLP)' 시설을 마련하는 등 노력해 왔다.

그 결과로 1978년에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반합성 페니실린계 항생제인 '탈암피실린'의 합성에 성공했고, 1981년에는 베타락탐계 항생제 제법으로 발명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85년 항생제 '아미카신'의 대량 합성법을 개발, 1990년 첫 국산 항암제 신약 후보물질 도출, 1993년 국내 첫 인성장호르몬 개발 등 말할 수 없는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그 업적 가운데에는 세계에서 4번째로 개발한 발기부전 치료제인 '자이데나'와 슈퍼 항생제 '시벡스트로', 당뇨병 치료제 '슈가논', 국내 첫 천연물 신약 타이틀을 거머쥔 위염 치료제 '스티렌' 등 업계에 큰 영향을 끼친 제품도 다수 포함돼 있다.

또 1977년 보건사회부가 이른바 '우수 의약품 제조 관리 기준(KGMP)'를 지정하자 이듬해인 1978년 국내 체초로 KGMP 규격에 맞춘 종합 제제 공장을 건설, 1980년 완공했다. 1985년에는 업계 최초로 GMP 시설을 지정받는 등 연구와 생산 등에서도 국내 최고 수준을 지켜왔다.

그 결과 강 명예회장은 1987년 한국제약협회장, 1992년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장을 넘어 2004년에는 제약업계 경영인 중 처음으로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이하 전경련) 등을 맡기도 했다. 여기에 1984년 은탑산업훈장(모범 상공인), 1994년 국민훈장 모란장(국민 보건 향상 기여), 2002년 국가과학기술 창조장(신기술 인정 제도 마련 공로) 등을 수훈하기도 했다.

 

이름만 들으면 딱 알만한 '그것' 그의 손에서 나왔다
'사회가 크면, 기업도 큰다' 적극 실천

고 강신호 명예회장은 신약 개발 분야와 더불어 브랜딩과 마케팅에서도 두각을 드러냈다. 그중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대표적인 사례가 70년간 국민 자양강장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박카스'다. 독일에서 박사 학위 취득 후 동아제약 상무로 입사한 강 회장은 자신의 메모 속 남아있던 풍요의 신 이름인 '바커스'를 제품 이름에 담았다.

기존 정제의 앰플형 변경 그리고 이어진 드링크제로의 변화에도 그가 있었다. 여기에 현재까지도 국내 블록버스터 일반의약품의 성공 전략 중 하나로 꼽히는 '3M 전략(대량 생산, 대량 광고, 대량 판매)'을 펼쳤다. 회사가 부도 위기에 몰린 와중에도 소비자의 인지도를 확충하기 위해서는 파상적 공세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결국 그는 부친인 강중희 회장을 설득해 판촉비 1억원을 대출받았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여기에 '한 판 더?', '그 날의 피로는 그 날에 푼다' 등 국민적 호응을 이끌어 낸 광고까지 맞아떨어지며 박카스의 2022년 기준 누적 판매량은 226억병을 달성했다.

(사진 왼쪽부터) 국내 제약업계 최초 부설연구소, 초기 박카스 드링크제, 박카스 매출 1000억원 기념 사진에서 포즈를 취하는 고 강신호 명예회장, 전경련 회장 취임 이후 연설을 하는 강 명예회장 / 사진=동아쏘시오홀딩스 홈페이지
(사진 왼쪽부터) 국내 제약업계 최초 부설연구소, 초기 박카스 드링크제, 박카스 매출 1000억원 기념 사진에서 포즈를 취하는 고 강신호 명예회장, 전경련 회장 취임 이후 연설을 하는 강 명예회장 / 사진=동아쏘시오홀딩스 홈페이지

이후에도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이름의 제품들은 모두 강 명예회장의 손에서 태어났다. '오란씨'와 '나랑드' 등의 음료부터 '써큐란'(현재는 건강기능식품), '암씨롱', '베나치오' 등의 일반의약품 그리고 발기부전 치료제 '자이데나'를 필두로, '스티렌', '슈가논' 등 회사에서 출시된 주요 제품 2000여개가 모두 그의 손을 거친 이름들이다. 심지어 또다른 국민 제품인 현대자동차의 '아반떼' 역시 강 명예회장의 작명 작품이기도 하다.

강 명예회장은 이런 작명 센스뿐만 아니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 전까지 각 제품의 마케팅 전략 등을 고민해 오면서 회사를 키우는 구심점이 돼왔다는 것이 업계의 압도적인 평가다.

강 명예회장은 여기에 기업의 사회적 경영에도 힘써왔다. 공익성을 위한 활동이 회사의 사회적 가치는 물론 기업가치의 향상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실제 지난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당시부터 시작된 '국토대장정'은 회사의 이미지 제고와 동시에 사회에서 반향을 일으켰을 만큼 기업가치와 공익성을 모두 잡은 프로젝트로 평가받는다.

또 전경련 회장을 맡을 당시에는 회원사가 자발적으로 자사의 경상이익 1%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는 '전경련 1% 클럽'을 만드는 등 공익성에 힘써왔다. 아울러 1994년 그가 동아제약그룹을 제약업계에서도 낮설었던 '동아쏘시오그룹'으로 바꾼 것 역시 사회라는 의미를 담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쌓인 사회적 경영을 토대로 지난해에는 동아쏘시오그룹의 통합 ESG보 고서인 '가마솥'이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평가에서 국내 제약기업 중 최고 등급인 AA등급을 받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사면 후 경영길 열린 창업 3세 강정석 회장
'구원 투수'로 조기 등판하나

한편 강 명예회장이 별세하며 그룹 내 새 구심점이 필요한 상황 속에서 강정석 회장의 경영 참여가 가속화되지 않겠느냐는 주장 역시 나오고 있다. 강 회장은 지난 2007년부터 2017년까지 회사 자금 횡령 등을 이유로 특수경제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뒤 2018년 6월 1심에서 징역 3년 및 벌금 130억원을 선고받았다. 이후 2심과 3심에서 징역 2년 6개월 선고를 확정했다. 이후 2020년 출소했지만, 형을 마친 이후 '5년간 취업 제한' 규정이 있어 실제로 회사로의 경영 복귀는 요원했다.

강정석 회장은 지난해말 기준 동아쏘시오그룹 지주사인 동아쏘시오홀딩스 주식 186만5525주(지분율 29.38%)를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이자 창업 3세다. 이 때문에 특별사면 이후 경영 일선 복귀를 위한 보폭을 넓힐 것이라는 분석이 이어졌었다.

특히 강 회장은 지난 9월 18일 열린 에스티팜 제2올리고동 기공식에 참석하면서 복권 이후 처음으로 공식 일정을 소화하면서 업계의 관심을 끌었다. 당시 관계자들은 전문경영인 체제를 10년간 유지하며 경영을 지속하고는 있지만, 오너십을 가진 인물이 '큰 결정'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동아쏘시오그룹에서는 강 회장의 경영 활동 복귀는 진행되지만 지금의 상황과는 결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동아쏘시오그룹 관계자는 "(강 회장의) 공식적인 복귀는 이사회 등의 절차가 남았다"며 "향후 이사회 동의를 거쳐 동아쏘시오그룹의 '지속가능협의회 위원장(Chief Sustainability OfficerㆍCSO)'으로 경영활동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속가능협의회 위원장은 사회 책임 경영과 신약 연구개발(R&D) 부문, 디지털 헬스케어 등 미래 먹거리와 신성장동력 발굴에 대해 그룹사 전문경영인들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며, 그룹의 성장을 함께 이끌어 나갈 것"이라며 "동아쏘시오그룹은 지난 10년간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돼 왔다. 앞으로도 전문경영인 체제를 보다 안착시키고 자율 책임 경영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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