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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합리적 '약가 인하' 고민, 업계 풍선효과 막으려면

지난 9월 6일 무려 7600개 품목이 넘는 약에 대한 약가 인하가 이뤄진 이후 약업계는 혼란을 겪었다. 최종소비자 격인 약국과 유통은 반품 문제로 끊임없이 마찰을 겪었다. 또 제조 및 영업을 담당하는 제약사와 영업대행조직(CSO) 등까지 가격 내림을 두고 반품 책임 소재는 물론, 향후 영업 방향을 어떻게 전환할 것인지 혹은 이번 약가 인하에 굴복하느냐 반발하느냐를 두고 고민을 이어갔다.

추석 연휴를 포함해 불과 3주밖에 되지 않던 9월 동안 제약업계는 이번 약가 인하에 대해 혹은 그 이전부터 제품 판매 방향을 어떻게 틀어야 할 지를 고민해 왔다. 가격이 인하되는 품목을 좀 더 높은 약가의 품목으로 어떻게 바꿀 것인지를 정하며 처방에 필요한 상병코드를 이리저리 맞추고 있는 것이다.

약가 문제는 아니지만 이런 사례도 있다. 진통제로 흔히 쓰이던 '록소프로펜' 성분의 적응증 중 처방액 300억원 상당의 상기도감염 적응증이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업체들이 조금 더 약가가 높은 '덱시부프로펜'과 '모니플루메이트' 등에 힘을 더 쏟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이야기다. 특히 이 과정에서 기존 120원대의 제품을 150원, 170원대의 2개 제제로 변경하면서 시장에서는 더 비싼 약으로 대체할 틈바구니를 정부가 열어준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동안 영업 분야에서는 알고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른바 'JT010' 처방 코드 문제 역시 비슷한 사례다. 비용효과적인 함량 의약품으로 '플루코나졸' 등 수개 의약품이 지정되면서 절반 용량의 의약품의 배수 처방이 삭감될 위기에 처하게 됐다. 그러자 업체들은 오히려 원료 문제 등으로 생산이 어려운 특수한 상황을 내밀며 저용량 배수 처방을 임시적으로 허용하는 JT010 코드를 영업 현장에 사용했다. 그러면서 적게는 1.3배에서 많게는 1.7배에 달하는 보험약가를 받은 회사들도 나왔다. 이는 위 사례와는 내용은 다르지만 약가 획득을 위한 꼼수를 썼다는 측면에서 동일한 셈이다.

약업계 일각에서 이 현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이야기한다. 정부가 이들 제제의 처방 변경을 묵인해주듯 약가 인하를 해주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에는 어폐가 있는데 다가, 상황 역시 보험당국을 마냥 비난할 수는 없다.

앞서 나온 약가 인하, 적응증 삭제, 배수 처방 삭감 문제 등은 전부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라는 방안을 위해 고심한 흔적이다. 상대적으로 신뢰도 없는 제품에 재정을 더 내어줄 수 없다는, 임상적 효용성을 인정받지 못한 약에게 돈을 줄 수 없는, 더 저렴한 처방이 가능함에도 더욱 많은 건강보험 재정을 낭비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적에 부합한 일이다. 국민 입장에서도 당장 받을 급여에서 턱하고 '썰려나가듯' 공제되는 건강보험료가 허튼 곳에 쓰여지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다.

다만 그 노력과는 별개로 업계에서는 앞으로도 이어질 고가 처방 변경과 그로 인한 풍선 효과를 막기 위한 또다른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약가 인하를 비롯한 주요 약제 사용 제한 등은 처방 과잉성을 높여 결국 사용량을 늘린다는 지난 2002년 연구 결과는 아직 많은 이들의 지지를 얻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조치 이후 뒷 상황을 관리할 수 있는 방법까지 있어야 하고, 그리고 그 해답을 위해 업계와의 꾸준한 조율 역시 필요한 시점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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