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HIT
정산거부·낱알반품 등 산적한 과제, 무엇을 말하는가

역대급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7700여개 품목의 약가 인하를 두고 약국가와 유통업계가 연일 시끄럽다. 회의 이후 대한약사회의 브리핑 내용이 유통업계의 심기를 건드렸고, 약사회가 결국 의약품 유통업체 중 가장 큰 소위 '빅3(지오영, 백제, 동원)'와 합의를 이끌어냈지만 이후 과정에서 약사회가 협의 내용의 조건을 모두 이야기 하지 않았다는 점, 이후 다시금 시작된 빅3 중 두 곳이 추가 협의를 거절하는 등 상황은 그야말로 악화일로다.

누가 약속을 깼고 누가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는지 따지기 이전에 이번 반품이 어떤 흐름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지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먼저 이번 사태를 되짚으려면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약사회발 반품의 매끄럽지 못함을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대한약사회는 불용 재고 의약품 반품사업을 진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그해 11월 말 한국의약품유통협회와 간담회 과정에서 다소 잡음이 일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비협조 제약사의 반품을 비롯한 일부 문제에서 꽤 큰 의견 충돌이 있었다. 약사회가 일방적으로 협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모든 품목을 일방적으로 적을 수 있도록 한 것에 대해서도 협의를 중단한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분개했었다.

여기에 제약사도 당초 협의를 진행한다고 했지만, 약사회의 결정을 괘념치 않듯 '그들의 길'을 갔다. 반품 사업 전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제품을 거둬들이는 제약사도 있었고, 반품 의사를 밝히지 않고 진행하지 않는 곳까지 있었다. 결국 반품 사업은 당초 약사회가 예상했던 150개 이상이 아닌 지역마다 다른 결과를 낳았다. 그나마 인구밀도가 많은 지역, 지역약사회가 일일히 제약사와 유통업체를 찾아다니며 설득한 곳은 사정이 나았지만 반품 사업에 응해준 제약사가 3분의 1에 불과한 지역까지 있었다. 그리고 이들 제품의 정산 과정은 현재 '마지막까지 제대로 끝나지 않은' 곳도 있다.

이번 반품 역시 '약가 인하'라는 배경이 있다는 점에서 다르게 느껴지지만, 결국 모양새는 비슷하다. 약가 인하 소식이 처음 등장했던 때는 지난 6월이다. 7월 약가설, 8월 약가설, 9월 약가설까지 '다음달 내린다'라는 이야기가 이어졌었다. 유래없는 반품과 정산 과정에서 정부가 유관단체와 이야기를 나눠가면서까지 노력했던 것은 이같은 문제를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약가 인하 대상 품목이야 정확히 알 수 없었다고 해도 '실재고 서류 반품'이라는 방식을 적용하기 이전에 각 주체들에게 일방적인 통보가 아닌 이들과 논의를 나눠야 했다. 약사회 입장에서는 피해가 있는 약국이 있다면 왜 그랬는지를 설득해야 하고, 유통업체는 기존에 써왔던 '2개월ㆍ30%'라는 룰을 왜 이번에도 쓸 수밖에 없는지를 적극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관행이라는 말이 아닌, 현실적 상황을 서로 알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양측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곳, 즉 제약사와 상황을 합의까지는 아니더라도 협의할 필요도 있었다. 모든 약가 인하 품목의 매출 추이는 모르더라도 어떤 회사가 많고, 이들이 어떤 패턴으로 의약품을 판매하고 있으며, 반품 문제에서 어느 정도 책임을 질 수 있을지를 감안했어야 한다. 왜 지금 제약업계가 약가 인하일에 최대한 맞춰서 빠르게 반품을 '받지 않으려는' 모양새를 취하는지를, 그동안의 배경 속에서 짐작해야 한다.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약가 인하라는 당연한 사실이 있는데, 왜 반품을 안해주느냐고. 누군가는 다른 말을 한다. 처음부터 하루 기준 몇 번의 배송을 받으면서 약국은 자신이 필요한 약이라며 사들이면서 재고 관리도 못하냐고. 다른 누군가는 이야기한다. 평상시 반품의 기회가 어느 정도 있었음에도 왜 지금을 기회로 가장 민감한 때 일방적인 정산을 요청하냐고.

재발을 막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은 이미 여러 곳에서 나온다. 당장 정부기관도 "이미 유통되는 의약품의 양이 필요량 대비 너무 많다"며 "적정 재고를 위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등의 말이 나온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상호 신뢰와 이해다. 왜 상대방이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그리고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어떤 주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주체가 '우리가 내줄 것은 무엇이고, 얻을 것은 무엇인지' 먼저 생각하는 것이 자기 합리화나 정신 승리보다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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