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7.7 약가제도 개정안과 제네릭 정책이 절망적인 이유

대한민국 제약산업 이곳 저곳에서 신음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행여 담장을 넘을까 봐 이불을 뒤집어 쓰고, 제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속으로 끙끙 앓는 소리다. 큰 일이 닥쳤을 때조차 각종 규제에 길들여진 제약산업계는 소리내어 울지 못했다. "뚝~. 뚜욱~." 울음을 그치지 않으면 한대 더 쥐어박힐 수 있다는 시그널인 '부드럽지만 위압적인 목소리의 공포'를 잘 알고 있는 까닭일 것이다. 기업들은 곧 잘 소송 맞대응을 들먹이다가도, 현장 실사 같은 행정력 한방이면 가을낙엽처럼 한풀 꺾이고는 했다. 현장 실사라는 용어에 대해 행정기관은 '방문'이라하고, 기업은 '쳐들어왔다'고 받아들인다. 밤과 낮같은 인식의 간극은 각종 정책에서 상존한다.

얼마 전 한 제약회사 최고경영자를 만났을 때 "솔직히 신약개발이 (우리 기업 현실에서) 어렵잖아요"라며 내게 동의를 구하려는 듯했다. 신약개발 포기선언처럼 다가와 일순간 실망스럽고 안타까웠지만, 그의 말엔 옳은 측면이 많다. 수 백명의 급여를 만들며 매일 치열하게 현실을 사는 기업 입장에서 최소 5000억원이상 든다는 신약개발에 기업의 미래를 다 맡기기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신약보다 좀 수월하다는 개량신약 연구도 마찬가지다. 'R&D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다'는 믿음이 없는 사회에선 역시 모험이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연구비가 들어간 경구용 항암제가 나왔지만 정부는 제네릭 수준의 약가를 제시하고 물러서려 하지 않는다. 모순은 곳곳에 도사리며 기업 R&D 투자의욕을 꺾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미 FTA 개정협상에 따라 심평원이 지난 7일 내놓은 소위 '7.7약가제도 개정안'은 국내 제약산업계에 깊은 좌절감을 안겨줬다. 한마디로 '이솝우화의 신포도'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2016년 나온 7.7약가제도 개선안이란 게 대체 뭔가. 국내 혁신형 제약기업 등이 연구개발로 생산한 약제에 대해 대체약 최고가격보다 10%까지 약가를 더 쳐주는 내용이다. 이 제도는 매우 어렵게 나왔다. 의약품 가격을 빠르고, 높게 받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다국적제약회사들의 견제를 '위험분담제와 경평면제'로 풀어낸 끝에 탄생한 제도였다. 위험분담제 등으로 다국적사들은 상당한 혜택을 보았다. 반면 7.7 약가제도 덕을 본 국내 제약사는 아직까지 없지만, 그래도 유일한 희망이라면 희망이었다.

심평원이 낸 개정안에 따르면, 국내 제약기업들에게 R&D 투자를 장려하기위해 마련했던 '7.7 신약 약가우대 정책'은 사실상 다국적사 프렌들리하게 변경됐다. R&D 투자에 관한한 그나마 국내 제약산업의 미래 희망 노릇을 했던 옵션이 정부 마음대로 변질된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유한양행이 얀센 바이오텍에 계약금만 550억원을 받고 기술수출한 내성표적 항암신약이 국내에서 나온다해도 '7.7약가제도 혜택'을 받기 매우 어렵게 됐다는 이야기다. 국내 기업에게 유리한 조건이 빠진 자리에 국내 기업이 입증하기 쉽지 않은 대략 5가지 조건들을 신설했기 때문인데, 조건을 보면 차라리 다국적사 맞춤형 제도로 뒤바뀐 모습이다. 정책이 신기루도 아니고, 어떻게 잉크도 마르기 전 한방에 훅 날라갈 수 있을까.

뭔가 이상하다. 의약품 관련 정책은 우리 정부가 입안하고 실행하는 것 같은데 국내 제약기업들에게 친화적인 내용은 별로없어 보인다. 발사르탄 문제에서 비롯된 정부의 '제네릭 종합대책'도 그렇다. 솔직히 혁신신약에 매진하기 어려운 국내 기업들의 생명줄인 제네릭 약가에 손을 대는 것은 국내 기업들의 숨통을 조이는 행위와 같다. 7.7 약가제도가 한미 FTA협상 테이블에 오르게 배경에 다국적제약회사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추정하는 내용이다. 다국적사들이 끊임없이 국내시장을 자기들 놀이터로 만들기 위해 애쓰는 상황에서 정부까지 국내 기업들을 핍박하면 어쩌자는 것인가.

키 큰 옥수수 아래서 햇볕 좀 받아보려 고개를 내밀며 온몸으로 무진 애를 쓰는 키 작은 콩에 비료를 주지는 못할 망정 옥수수에게 퇴비를 몰아 주고, 이도 모자라 콩을 솎아 내려는 것은 옥수수로 배를 채우겠다는 각오가 아니라면 매우 어리석은 짓이다. 이런 환경에서 누가 제약회사를 경영할 수 있겠는가. 또 기업이 쪼그라드는 현실에서 어떻게 고용을 창출할 수 있을까. 백번양보해 7.7 약가제도야 거시적인 나라 경제 현황을 고려한 고육지책이라고 한발 물러설 수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제네릭 정책은 기업과 산업의 육성까지 할 수 있어야 한다. 제네릭은 결코 부끄러운 비즈니스가 아니다. 누가 뭐래도 혁신 신약개발과 글로벌 진출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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