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성균관대 교수의 '스페셜 정책 리포트'

[하] 한국과 미국 일련번호 제도 비교 및 시사점

지난 10월 10일부터 12일까지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2018년도 'IFPW(국제의약품유통업체연맹) 정기총회'가 열렸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20여개 국에서 의약품 유통 분야의 협회 및 단체, 그리고 기업 관계자 등 전문가 200여명이 참가하여 세계 의약품 유통시장의 트렌드와 문제점을 공유했다. 본인은 한국의약품유통협회 IFPW 참가자의 일원으로써, 동 기간 중에 의약품 일련번호 제도(serialization)와 관련하여 IFPW 회장단 및 일본의 유통업계 관계자와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를 계기로 제약 선진국인 미국에서 시행 중인 의약품 일련번호 제도의 추진 과정을 살펴보고 우리나라와의 비교를 통해 시사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2018년도 국제의약품유통업체연맹('IFPW) 정기 총회에 참석한 이재현 교수. 이 교수는 한국의약품유통협회 정책 연구소장직도 맡고 있다.

2. 한국과 미국의 일련번호 제도 비교 및 시사점

□ 우리나라와 미국의 제도 비교

우리나라와 미국의 의약품 일련번호 및 공급내역 보고 제도의 추진 배경과 정책 목표를 비교해 보면, 두 국가 모두 일련번호 제도를 통해 의약품의 유통체계를 확립하려고 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일련번호와 공급내역 보고를 통한 ‘유통 투명화’를 강조하고, 미국은 일련번호 및 track and trace를 활용한 ‘불법 및 위·변조 의약품 근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련번호 표기 방식에 있어 우리나라는 2015년부터 완제의약품을 대상으로 2D 바코드 또는 RFID tag 형식 중 선택적으로 일련번호를 표기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미국은 법과 제도의 조화 측면에서 캘리포니아에서 시행하던 RFID tag 부착 의무를 폐지하고, 2017년부터 2D 바코드 표기를 의무화했다. 2D 바코드 및 RFID 운영 방식은 두 국가 모두 각각의 GS1 표준을 따르고 있다.

우리나라와 미국은 공급내역 보고에 있어 누구에게 보고하는가에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는 제약업체 및 유통업체가 제품 출하 시에 정부기관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의약품관리종합정보센터로 실시간 보고하게 되어있다. 미국은 의약품 공급자가 제품 출하 전 또는 출하 시점에서 다음 거래 당사자에게 보고하고, FDA 요청이 있거나 의심이 가는 의약품인 경우에 이해 당사자와 FDA에 보고해야 하며, 약국 등 의약품 판매자도 요청 시에 관련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의약품 공급내역 정보가 의약품관리종합정보센터로 모아지는(Centralized) 반면, 미국은 이해 당사자들이 해당 정보를 공유(Share)하는 시스템의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는 묶음번호가 의무화되지는 않았지만 유통업계에서 업무의 효율성을 위해 묶음번호 의무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2017년 8월 묶음번호 가이드라인이 배포되어, 현재 2차 묶음번호 시범사업이 진행 중에 있다. 미국 또한 현재 Aggregation이 법으로 명문화 되지는 않았지만 Aggregation 및 Inference와 관련한 Pilot program이 진행 중에 있다. DSCS Act에 따르면 2023년에는 필요에 의해 Aggregation과 Inference를 포함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 시사점

세계적으로 불법 의약품과 위·변조 의약품의 유통 문제가 대두됨에 따라 의약품에 일련번호를 부착하고, 의약품 유통망에서 정보 교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로 인해 현재 우리나라와 미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 일련번호 및 공급내역 보고 제도를 시행 중이거나 준비 중에 있다. AHC(APEC Harmonization Center)는 국제적으로 의약품 유통망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목표 설정과 이해 당사자의 협력이 필요하며, 국제적으로 표준화된 정보 기준의 사용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일련번호 제도는 약국이나 의료기관과 같은 요양기관이 참여하지 않고 있어 현재의 제도 운영으로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요양기관이 입·출고 과정에서 일련번호를 점검하지 않으면 최종 유통단계에서의 위조 의약품이나 불법 의약품을 차단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요양기관이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소비자 투약 및 사용 여부를 사전에 확인할 수 없다. 이는 미국의 경우 불법 의약품 및 위·변조 의약품의 근절이라는 명확한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약국 등 의약품 판매자에게 중요한 역할과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교된다.

또한, 우리나라는 유통체계 내에서 가장 중요한 이해 당사자인 유통업계의 입장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고 있다. 그동안 2D 바코드와 RFID tag의 일원화 및 Aggregation 개선 등 유통업계의 중요한 건의 사항이 반영되고 있지 않다. 이 또한 미국은 이해 당사자의 협력관계를 중요시하여 2013년 11월 27일 연방법을 통해 일련번호 및 공급내역 보고 제도를 입법화하고, 나아가 이해 당사자들이 원활하게 제도 준비를 할 수 있도록 10년에 걸친 정책 road-map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교된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당시 전형적인 과도한 규제 정책으로 평가되던 California의 “e-pedigree law”(RFID 활용) 등을 대체하고, 제약업체 및 유통업체 등 의약품 공급자와의 협력 하에 현실에 맞게 2D 바코드로 일원화했다.

의약품 유통정보의 공유 차원에서도 많은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는 제품 출하 시마다 정부기관에 공급내역을 보고해야 하는 의무가 있어 행정 부담으로 작용하는 반면, 미국은 각 의약품 유통단계마다 이해 당사자가 다음 거래 당사자에게 관련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정보 공유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특히 일선의 의약품 판매자들이 현장에서 불법 및 위·변조 의약품으로 의심되는 의약품 정보를 FDA 및 관련 이해 당사자에게 제공토록 하여 실질적으로 이해 당사자들이 불법 및 위·변조 의약품의 근절에 참여하게 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정부가 유통 당사자에게 획일적인 회수·폐기 조치를 지시하는 경우에나 공급내역 정보를 활용하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경우 유통단계별로 유통경로를 파악하여 리베이트를 방지한다는 정책 목표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 논거가 무엇인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국제기구에서도 일련번호 제도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글로벌 유통망 구축을 위해 상호 협력과 조화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일련번호제도를 선도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이해 당사자에게 행정상의 의무만 부과하고 시설 및 인원 등에서도 추가적인 비용을 부담시키면서 아무런 혜택이나 돌아오는 이익이 없어 정책에 대한 불만이 증폭되고 있다. 국제사회가 추구하는 정보의 공유와 이해 당사자의 협력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현 제도를 의무화하고 앞서가기보다는 선진 사례를 검토·분석하여 제도의 정확도를 높이는 방안을 마련하고 시행착오를 답습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국-미국 일련번호 및 공급내역 보고 주요 제도 요약 및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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